광주 5.18의 거꾸로 먹는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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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의 거꾸로 먹는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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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래는 기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영화에서처럼 팔을 벌리고 선 것이 아니라, 기차를 바라보며 철길에 주저 앉았다. 2003년 4월 15일이었다. 식구들은 그를 잊어버리자고 묘를 쓰지 않았다. 김응래는 한 줌 뼛가루가 되어 철길에 뿌려졌다. 총을 쏴도 문제, 총을 안 쏴도 문제, 그때 광주에 있었던 군인들에게는 과연 어느 누가 어떤 위무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영화 '박하사탕'은 2000년에 출시되어 흥행했던 영화였다. 설경구가 주연이었다. 기차가 달려오는 철길에서 팔을 벌리고 서서 '나 돌아갈래' 외치는 영화 오프닝 장면을 방송에서 하도 틀어대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좌익정권 시대에 좌익 언론에서 바짝 밀어주던 영화가 이 영화였다. 제작자인 명계남은 노사모 회장이 되었고 감독인 이창동은 노무현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그렇다면 안 봐도 뻔한 거 아닌가.

'박하사탕'은 얼핏 예술영화 같아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선동영화이다. 선동의 주제는 5.18이다. 꽃잎, 화려한 휴가, 26년, 택시운전사, 김군 등, 정기적으로 출시되는 5.18 선동영화의 고참급에 속하는 영화가 박하사탕이다. 5.18영화들이 백에 백이면 다 그렇듯, 계엄군은 악마이고 전두환 정권은 나쁜 정권, 그래서 보수우파는 악당으로 귀결되는 것들이 5.18영화들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은 철길에서 팔을 벌리고 기차에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조금씩 주인공의 과거를 한 단계씩 보여주며 먼 과거까지 돌아간다. 첫사랑의 추억과 멀쩡한 직업까지 있던 주인공은 왜 기차에 몸은 던졌는가,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였다. 주인공은 5.18 당시 광주에 갔었던 계엄군 출신이었다.

5.18의 광주에서 주인공은 발에 총을 맞고 부대에서 낙오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실수로 여고생에게 총을 발사하여 죽게 만든다. 광주에서의 발포로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고 사회생활에 정상적으로 복귀를 못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고 그런 내용에 그럭저럭의 영화였지만, 5.18 선동에 영화 제작자들의 성향에, 그래서 좌익 언론들이 잔뜩 띄어준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이 영화였다.

5.18의 트라우마를 가진 계엄군 출신의 주인공이 달려오는 기차에 자살하는 장면은 실제로 있었다. 20사단 62연대 2대대 8중대 소속 김응래 병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김응래 병장이 소속된 8중대는 1980년 5월 27일 광주 무등산 어귀 지산동에 배치되었다가 5.18폭도들의 총격을 받았다. 김응래 병장은 전남 여수의 농촌 출신으로 5.18 당시 23세였다.

김응래 일행이 무등산 어귀에서 5.18폭도들과 조우했던 것은 아침 9시였다. 김응래 병장은 폭도들을 향해 발포를 하려다가 대학생들로 보여져 총을 쏘는 것을 주저했다. 김응래 병장에게는 그들 또래만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폭도들은 군인들을 향해 발포했다. 군인 3명이 사망했다. 죽은 세 명은 김응래 병장의 옆에 있던 동료들이었다. 그때부터 김응래 병장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김응래의 가슴에는 이런 회한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자기가 먼저 쏘았다면 동료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 먼저 그들을 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김응래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를 위로해 주는 것은 술이었고 술을 먹으면 싸움을 벌였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고 정신병원에도 다녀왔다. 어느날 김응래는 동네 철길을 걷고 있었고 멀리서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김응래는 기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영화에서처럼 팔을 벌리고 선 것이 아니라, 기차를 바라보며 철길에 주저 앉았다. 2003년 4월 15일이었다. 식구들은 그를 잊어버리자고 묘를 쓰지 않았다. 김응래는 한 줌 뼛가루가 되어 철길에 뿌려졌다. 총을 쏴도 문제, 총을 안 쏴도 문제, 그때 광주에 있었던 군인들에게는 과연 어느 누가 어떤 위무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정권이 선동하는 광주5.18의 장면과 실제로 존재했던 광주5.18의 실체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권력이 국민의 뇌리에 심은 광주5.18의 모습은 '여고생에게 총격하는 계엄군'이었지만, 실제는 '폭도에게 총을 쏘기 주저하다가 전우를 잃은 군인'도 상당수 존재하며, 이들도 대부분 트라우마를 겪다가 쓸쓸히 사라져 갔다. 권력이 숨기려 했던 광주5.18의 다른 진면목인 것이다.

광주5.18은 우아하고 고상했던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총격과 살인방화가 난무하는 폭동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군인들도 악마가 아니라 그들도 대한민국의 아들들이었고, 시민들도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살인강간방화를 일삼는 폭도들의 하나였다. 공권력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채 분노와 증오에 뒤덤벅된 인간군상들이 뒤얽혀져 벌였던 폭동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권력은 국민들에게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5.18만을 세뇌해 왔다. 이제는 광주5.18의 군인들의 피해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5.18폭도들의 살인과 방화 강간에 대해서도 이실직고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길이다. 광주5.18을 선동하여 출세와 권력의 지름길을 걷는 자들은 누구인가. 폭동을 미화하고 민주화운동이라는 뇌물을 뿌리며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야말로 실체를 오도하는 사기꾼이며 선동으로 권력을 탈취하려는 폭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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