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운명 '손에 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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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운명 '손에 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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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 측 세력, '다시 결집할 가능성 높다'

^^^▲ 한나라당 화합이 불투명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이-박의 행보가 정치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진은 이명박 대선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일 대구를 찾아 대구-경북 지역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런 대규모 해단식을 개최키로 한 데 대해 박 전 대표가 '세 과시'를 통해 본격적 정치행보를 재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관례적 행사'라며 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며서도 한측에서는 박 전 대표가 TK 방문을 통한 결단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박 전대표 측 세력이 다시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한 중진급 정치인은 박 전 대표가 참석하는 이번 해단식을 두고 "지역 선대위의 해체를 하는 행사지만 다른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해단식 후 박 전대표 측 세력이 다시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측 의원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떼지 못하고 예의 주시하는 편이다. "당이 개최한 연찬회에도 불참했던 박 전 대표 측이 이번 해단식에 대거 참석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며 "인사차원의 행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날 행사는 박근혜측 핵심측근인 곽성문 의원이 경선때 이명박 후보에 비해 압도적 지지를 해준 대구-경북 선대위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 차원에서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구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선후보가 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에서 인사 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며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경선후 최대 규모의 박 전 대표의 행사 될 것

박근혜 캠프의 대구-경북 선대본부 해단식에는 대구-경북 지역 의원 및 당협위원장과 당원은 물론, 부산-경남쪽 박근혜 캠프 인사들이 대거참석할 것으로 전해져, 2천명 선을 크게 뛰어넘는 경선후 최대 규모의 박 전 대표의 행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27일 박 전대표가 참석한 서울 하림각에서 행사를 치룬 해단식에도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2천여명이 몰려 '해단식인지 출정식인지...'라는 의미있는 말들이 보도되었으며, 경선 패배에도 변함없는 박근혜계 지지력의 세를 과시한 바 있다.

박 전 대표가 가장 상징적으로 '당심 우위'를 보여준 대구-경북 지역을 찾는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향후 자신의 당내 위상과 행보에 대한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명박 대선후보는 주요 당직자 인선을 통한 '이명박 체제'굳히기에 이어 자신의 공약과 당의 정책을 접목시키는 '정책조율'을 시작했다. 이 후보는 1일 여의도 당사로 출근, 정책회의를 갖고 대선일정을 시작했다.

'박근혜 결정에 '정치권 눈' 집중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후유증에서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 지금 시점으로 보면 한나라당은 반쪽의 선원들을 태우고 격랑속으로 항해를 하고 있다. 그대로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박근혜 구조대'가 합류할 것인가에 따라 결정지어 질 것이다.

범여권도 경선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나 잡음 또한 만만치 않다. 이제 한나라당의 정권창출은 파격적인 화합이 아니면 정권창출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의 운명을 손에 쥔 박근혜 전 대표의 결정에 정치권의 눈들이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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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돛을 올려라 2007-09-02 02:34:06
    아 ! 신난다. *근혜신당* 선진한국당.....오명으로 얼룩진 한나라당,
    그래도 애지중지 감싸주고 나름대로 반듯하게 키웠건만 이제는 발길질하며 박근혜대표를 홀대를 하고 있다. .우리의 근혜사랑은 이인제때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절대로 동일시 해서는 안될것이다. 그래도 경선 끝난후 반성의 기미는 전연 없고 오히려 기고만장하여 단 안밖을 휘젓고 다닌다. 입이 무겁고 혀를 함부로 쓰지않으시는 박근혜님은 그저 인내와 침묵으로 일관 하신다. 우리의 끓어오르는 저 활화산의 용암의 분출처럼 부글 뷰글 속구처 오름을 어찌하리요......아직도 신의 도움의 손길은 떠나지않고 있다, 우리는 화끈하게 뭉쳐서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히 돛을 올려라.....근혜신당이 출항한다.
    이나라대한민국을 우리 애국애족당이 어떻게 지켜온 땅인데 결코 결코 붉은 이리때들한테 나라를 내어줄순 없다. 우리의 사명은 목숨바쳐 이땅 대한민국을 사수하는것이다. 우린 마귀 의 밥이 되느냐? 하나님이 지키시는 복받은 이땅에서 사느냐? 의 갈림길에 서있다.선택은 우리가 하되 일을 성사시키는것은 주 여호화시라.......돛을 올려라 우리 근혜신당 출항한다....................................

    4.3 대학살 2007-09-02 07:46:07
    1948년 3.1절 기념집회에 제주 역사상 최대 인파가 참여했다.
    군정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3.1절 28주년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린 제주북국민학교 주변에만 대략 3만 명의 군중이 참여했다. 그런데 집회 시작 순간, 제주경찰서장 강동효가 이끄는 기마대와 기동대가 갑자기 모여있는 군중 대열로 돌진하여 위협발포를 하면서 즉시 해산을 강요하였다.

    한편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발포사건(사망6명, 중상 8명)이 발생하였다. 구경하던 사람이었다. 경찰은 발포는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덕정 발포사건의 경우 시위군중이 현장을 지나간 다음에 일어났다. 초등학생과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 등이 숨진 피해현장은 경찰서와 상당히 떨어진 은행건물의 처마밑, 골목 모퉁이였다. 또 총탄에 쓰러진 피해자를 검안한 결과 한 사람을 빼고는 전부 등 뒤쪽을 맞은 것이 판명되었다.

    이날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발포사건이 모두 일주일 전에 제주에 들어온 조병옥이 파견한 외지 응원경찰들에 의해 자행됐다.

    경찰 발포에 항의하여 대규모 파업사태가 전개되었다. 미군정은 조사반을 파견, 파업 원인을 "무모한 경찰발포로 인하여 증오심, 이 도민감정을 남로당에서 선동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남로당 선동"만 침소봉대하여, 강공책을 채택한다. 그 후속조치가 바로 조병옥 경무부장과 응원경찰대 파견이었다. 조병옥이 전면에 등장한다.

    경찰은 3.1절 시위사건 이후 약 2,500명의 청년을 구금하고 이 중 3명을 고문해 죽였으며 후에 시체를 강에 던져려다 주민에게 들켜 도민을 격앙케 하였다. 일부러 폭동을 부추킨 듯하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그때까지 조용했던 제주사회를 들끓게 된다.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도에 도착함과 동시에 서북청년단의 파견이 이루어졌고 곧바로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 검거선풍으로 이어졌다. 조병옥은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므로 3광작전으로 섬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정말로 미국 네이팜탄이 제주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3.1사건 직후 경무부 관리들이 공공연히 "제주도민 90%가 좌익이다"고 발언하고 떠들고 다녔다.

    4월 3일 봉기가 일어난다. 그 후, 민중무장대는 경찰과 서청 등 살인 단체들만을 골라 제한적으로 공격하였다. 경비대는 물론 행정기관은 공격대상에서 제외되었다. 4월 3일 제주도 봉기는 무차별 폭동이 아니라, 자신들을 탄압하는 조직과 인간들에 대한 제한적이고 방어적인 저항의 표시였다. 그럼에도 미군정과 조병옥은 유독 제주도만을 자신들이 추진하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으로 몰아갔다.

    민중무장대와 경찰의 충돌이 점차 유혈사태로 격화되자, 미군정과 민중무장대 양측에서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한다. 그 일환으로 4월 28일에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과 제주도 주둔 국방경비대 제 9연대 연대장 김익렬 사이에 평화회담이 열렸다. 이로써 제주 전역에 일시 평화가 회복되었다. 봉기가 발발한지 25일 만이었다.

    4.3 봉기는 여기서 원만히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군정 조병옥의 응원경찰은 국방경비대를 좌익으로 의심하기 시작했고. 4월 28일의 합의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군정 경찰은 이 합의를 깨기 위하여 5월 3일 미군과 국방경비대 9연대 병사의 안내로 귀순 중이던 일군의 귀순자들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
    결국 4.28합의는 깨졌고, 상대방 때문에 합의가 깨졌다는 비난성명전에 뒤이어, 귀순한 사람들이 살해되는가 하면 귀순 중이던 유격대와 민중들이 다시 입산하였다. 제주도에 다시 살인과 방화가 재연되었다.

    조병옥의 군정 경찰은 사태 원인을 국제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사전에 계획된 폭동으로 몰았으며, 따라서 강경진압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삼았다. 미군정에서는 곧바로 강경진압 방침을 실행했다. 이는 광주학살을 김대중 내란음모로 몬 전두환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강력한 토벌은 계속되었으며 4.3 민중항쟁이 유혈 사태로 치닫자 서울의 많은 사회단체와 정당들은, 민심수습을 통해 무력공세가 아닌 사태의 정치적이고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주도의 저항은 정부 수립 직전 한 달간 소강상태에 접어들다가, 정부 수립 후 다시 격화되었다. 많은 주민들이 청년단과 경찰의 탄압, 경비대의 토벌을 피해 입산했고, 일부 관리들조차 입산자들의 편에 가담하였다. 8월 14일 군은 2개 중대를 증파하여 토벌작전을 준비하였다.

    10월 8일 정부는 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어 10월 11일에는 제주도 경비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본격 토벌을 위해 본토의 군병력(여수 주둔 제10연대)을 투입하고자 내린 출동명령에 일부 병사들이 출동 직전인

    친일후예들 2007-09-02 07:55:32
    조병옥의 아들 조순형이 민주당 유력한 대선후보랍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조순형은 아버지의 건국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출마 선언에서 말합니다. 참으로 끔찍하다 할 것입니다. 친일파!! 여기저기 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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