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축제, 그리고 화재
왁자지껄한 가게 내부. 분위기상 술집인 듯. 모두들 들떠 있는 그곳에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솟아 오른다. 실내는 순식간에 연기로 꽉 찬다.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필사의 몸짓들. 그러나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답답해올 뿐이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기진하여 쓰러진다.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애를 써보지만, 목을 타고 들어오는 건 뜨거운 열기 뿐이다. 호흡기가 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마지막 몸부림도 잠시, 곧 눈앞이 아득해진다.
어디선가 봤음직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쯤으로 여길 수도 있는 이 장면은 그러나 실제 상황이다.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던 엄연한 실제 상황 - 인천호프집 화재사건의 현장이다.
삼 년전 인천의 한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대참사였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씨랜드화재참사와 함께 한동안 우리를 경악시킨 사건이었다.
제1편 : 끝나지 않은 인천화재학생참사
이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삼 년. 그럼에도 아직껏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젠가 기자는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천호프집화재참사 유가족 합의금타결"
이 기사와 더불어 이 문제는 기자의 뇌리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희생자 유가족들 또한 합의금 타결과 함께 자연스레 이 사건에서 멀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상자들의 경우는 달랐다. 화재 참사와 함께 시작된 현실적인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여기 중풍으로 몸져누운 노인보다 더한 식물인간 상태의 한 젊은이가 있다. 음식물은 복부에 주사로 주입해야 하며 호흡은 목에 구멍을 낸 호스에 의지해야 한다. 관절이 굳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일정시간마다 마사지를 해야 한다.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의 집도 찾지못하는 또다른 젊은이가 있다. 바로 집앞에서조차 경찰에 의해 경찰서로 가야 하고 그래서야 부모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인천화재참사 부상자들이다. 이런 부상자 가족들이 식당 하나를 얻어 대책위 사무실을 열고 재판을 진행 중이다.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이미 잊혀져버린 사건을 두고 여전히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5월에 있은 1심 패소 판결에서 보듯이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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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식당에 마련된 '인천화재 학생참사 부상자 대책위원회' 사무실 내부. 부대위 회장을 맡고 있는 노익환(53세/가운데)씨가 기자에게 부대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뉴스타운 윤동일 기자 | ||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한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그 사건에 대한 큰 관심을 우리는 보고 있다. 하지만 3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인천화재 부상자 가족들에 대한 시민단체의 관심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부대위의 한 관계자가 인천시나 가해업주 축에 미군이 한 명쯤은 끼어있어야 했던 게 아니냐는 발언을 할 정도이다.
취재를 시작한 첫 날, 기자는 부상자 가족 중 한 명으로부터 부상자 가족들 간에 상당한 이견이 있음을 들었다. 시발점은 1심 재판의 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부대위와 인천시 사이에 2000년 3월20일 합의된 합의서 이행을 구하는 재판에 대해 지난 5월 법원이 내린 기각 판결의 요지는, 인천시의 합의 불이행이 합의 파기로 볼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고 따라서 부대위가 인천시에 이행을 요청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상자 가족들은 이 판결로 동요하게 되고 서로를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부대위를 탈퇴하여 독자행보를 걷게 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질 이유가 없는 재판에서 졌다는 것이 가장 큰 반목의 이유였다.
이에 대해 재판 과정을 지켜본 부상자 가족 중 한 사람인 박상열씨(45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본 느낌이다." 도무지 질 이유가 없는 재판에서 지고 나니 남는 건 허탈감 뿐이었다면서 하는 말이다.
부대위를 탈퇴한 사람들은 부대위와 변호사 양쪽에 대해 모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부대위에서도 재판부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기각 후 관련 서류를 요구하자 재판부 쪽에서 고법갈테니까 조심히 다뤄달라며 이미 항소할 것을 미리 예상할 정도로 의도적인 재판이었다는 것이다. 부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익환씨는 이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재판부가 시와의 합의사항이나 각종 회견 등의 자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인천시와 부상자 가족들, 그리고 부대위와 부대위를 탈퇴한 사람들은 각자 상당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갈갈이 찢긴 가슴들이 서로 만나 한 목소리를 내도 모자랄 판에 서로 분열되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나가 되어 슬기롭게 재난을 극복해야할 민과 관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가 하면, 하나가 되어 서로 의지해야 할 부상자가족들 또한 패로 나뉘어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현재의 상황과 각각의 입장을 정리해보자.
(1) 부상자 보상금에 대한 협상 결렬 - 인천시를 상대로 부대위 소송 제기
(2) 2002년5월21일 원고 패소 판결
(3) 부상자 가족들의 분열
(4) 부상자 가족들 따로 항소 준비
부대위와 부상자가족들은 현재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 부대위 :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끝까지 간다.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다. (회장 노익환/53세)
- 위 51명중 25명 : 변호사에게 협상권을 일임한다. 항소중 타협점을 찾기를 바란다.
- 정윤용(48세) : 혼자서라도 끝까지 간다. 안되면 헌법소원이라도 내겠다.
* 탈퇴회원들이 새로운 변호사를 선임한 반면, 정윤용씨는 현재 변호사 없이 홀로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변호사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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