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전 동양챔피언 황복수, 공주 송곡지 엔학고레 가든 운영 ‘대성공’ 소문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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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전 동양챔피언 황복수, 공주 송곡지 엔학고레 가든 운영 ‘대성공’ 소문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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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진감래 복서들에 귀감…옛 동료와 오랜 펜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식사대접 ‘빈번’
- 가든 가족 모두 사업으로 경영, 국민연금은 모두 지인들 애경사 등 펜들에게 ‘보답’

황복수(전 OBF 페더급 챔피언)가 공주 반포면 송곡지(구,불장골저수지)공주시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우산봉산자락이 담긴 신비로은 작은 호수에 엔학고레가든을 운영하면서 대성황을 이뤄 비운의 복서가 고진감래로 말년에 성공함으로서 복싱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펜들의 사랑이 더 깊어졌다고 알려졌다.

그가 운영하는 엔학고레는 구약성서에 부르짓는 자의 샘(히브리어)이라는 뜻으로 2017년 TVN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프로에 방영돼 ‘야외에서 즐기는’ 엔학고레로 널리 알려져 더욱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의 가든이 위치 한곳은 옛 명칭은 불장골 저수지다. 현재는 충남공주 반포면 송곡리의 송곡지 또는 송곡소류지라 불리고 있다. 가든 건너편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2구루가 호수에 비춰져 장관을 이루며 이 광경을 즐기려 가족과 연인들이 자주 찾고 있고 현재도 사진작가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엔학고레는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로,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삼손이 블레셋인 1천명을 나귀의 턱뼈로 죽인 후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은 것이 응답돼 생겨난 우물을 기념한 곳에서 유래됐다. 이는 ‘레히’ 지방에 있었다고 한다. 구약성서 ‘사사기’ 15장에 나온다.

엔학고레의 전경, 손님들이 항상 많으면 아래 호수에 비친 배경이 경이롭다

황복수의 ‘엔학고레‘는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고기를 굽던 집이다. 이로 인해 더욱 알려져 연인이나 가족의 관광객이 호수의 절경을 즐기며 식사하기 위해 이곳을 많이 찾는다. 행정구역은 공주시이지만 거리상 세종시민들이 즐겨 찾는 신비로움이 숨겨진 곳이다.

그는 1954년 1월 7일생(초기 이름 황정윤)으로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1,2등의 순위를 벗어나지 않을 만큼 심폐와 지구력이 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1960년도 영등포 필승체육관(관장 이영원)에서 운동(권투)을 시작해 지난 1970년에 신인대회 플라이급 준우승자로 등극했다. 이어 1971년 프로로 데뷔했으며 당시 이름을 황복수로 개명했다.

한편, 복싱계는 가장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던 선수를 꼽으라면 황복수(전 OBF 페더급 챔피언)가 제1순위라고 말한다. 그는 OBF 챔피언을 지내면서 WBC 1위(당시 챔피언: 대니 로페즈)로 있으며 한참 잘 나갈 때는 44전 41승(14KO) 3패를 기록했다. 그러던 그가 1978년 1월 한 체급 아래인 한국챔피언에 불과했던 정순현에 다운당하고 완패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 이후 동양참피언도 잃었고 연패를 기록하면서 은퇴했다.

지난 1980년 6월까지 9번 싸워 단 1승을 기록하고 2무 6패라는 참혹한 전적을 남기고 통산 53전 42승(14KO) 2무 9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말년에 이대환(당시 14전 6승 3무 5패)이라는 10년 후배에게도 패할 정도로 그 명성이 너무 허무했다.

왼쪽부터 아들 황상두, 배우자 정기우, 황복수, 딸 황윤희

다른 한편, 그의 에피소드(일화)를 소개하자면 첫째는 동양 페더급 챔피언이자 WBC 페더급 세계 1위에 오르며 1970년대에 과거 이름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그와 7차례나 겨뤄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하고 짧은 권투인생을 마감한 한 복서가 있었다. 현재는 대한민국 원예무역의 대부로 꼽히는 배형환(54년생 김천)회장 그는 복싱 은퇴 후 경농 화훼 종묘 회사를 설립해 눈부신 성공신화를 이뤘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지난 1972년 1월부터 1974년 12월까지 만 3년 동안 7차례를 싸웠던 숙명적인 인연이다. 첫 대결은 황복수(1971년 프로 데뷔)는 6전 전승에 3KO승이었고, 배형환은 프로 첫 경기였다. 둘은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함께 동문수학한 친구다. 그러나 당시부터 7차례나 연속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두 사람의 관장들이 친분이 두터운 동갑내기 친구였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경기가 끝나면 서로 웃으면서 다시 어깨를 나란히 서울로 상경하는 등 서로 우정을 보였다고 한다. 승패가 일방적인 것은 배형환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워낙 황복수의 경기력이 출중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그 당시의 복싱인들의 평가다.

복서 시절의 황복수 선수 모습
복서 시절의 황복수 선수 모습

두 번째로는 황씨가 상대 중 가장 강한 이는 첫 원정 경기인 1975년 2월 태국 현지에서 동양 밴텀급 타이틀 매치를 벌인 베니세 보코솔(전 WBC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57전 49승 36ko 8패)이라는 강타자였다. 그는 보코솔의 펀치를 맞을 때마다 둔기로 맞는 것 같은 큰 충격이 왔다고 평가했다. 베니세 보코솔에 당시 30승 1패를 기록한 황복수는 9회 KO패했다,

그 다음 일본의 전설적 대학생 세계 챔피언으로 유명했던 로얄 고바야시(43전 35승 27ko 8패)다. 황 씨는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로얄 고바야시의 고향인 아오모리에서 1-2로 판정패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라고 회고했다. 높은 승률과 90%에 가까운 KO율(23전 21승 2패18KO)을 자랑하는 강타자로 한국선수 킬러로도 악명이 높았다. 동양챔피언을 지낸 황복수는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했으며 그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명의 선수가 그의 희생양이 되면서 한국선수 킬러라는 별칭을 갖기도 했다.

세 번째는 황복수와 파나마의 복싱영웅 헥트로 카라스키야와의 일전이다. 지난 1978년 8월 19일 카라스키야와 장충체육관에서 맞대결한 황복수는 그를 그다지 강펀치를 보유한 위협적인 복서는 아니었고 턱보다는 배가 약한 복서라 평가했다. 이어 다른 한편은 지난 1977년 11월 11전 11승 11KO 무패를 자랑하던 헥트로 카라스키야를 파나마 적지에서 홍수환 선수가 4번다운 당하고 일어나 KO로 승리하면서 4전5기신화로 국내 복싱펜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1978년 카라스키야와 일전을 치르는 황복수(오른쪽)
1978년 카라스키야와 일전을 치르는 황복수(오른쪽)

그런 한편, 39년이 흘러 카라스키야는 파나마 국회의원 신분으로 한국의 홍수환(한국권투위원회 화장)과 황복수를 지난 1916년 9월 9일 서울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에서 재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엑토르 카라스키야(당시 파나마 국회의원)는 ‘지는 것은 다음에 다시 이기기 위한 것” 이라며 “저는 홍수환 선수와의 경기에서 졌지만 그때 패배가 정치인으로서 성공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8년 당시 카라스키야 전에서 황복수는 당시 파이트머니로 350만 원을 받았다. 그 돈이면 서울 외곽에 집 한 채를 살 수가 있는 돈이었다. 당시 황복수는 1-2 판정으로 지면서 ‘역·편파판정’ 시비가 있었다.

한편, 기라성 같은 복싱계의 거장들이 최근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사례들이 언론에 소개되는 반면 전 동양 챔피언 황복수는 송곡소류지를 만나 대 성공을 이뤘다고 알려졌다. 그는 1918년 전 배우자(정기우)의 고향에 정착하고자 미리 토지와 가옥을 매입했다.

그는 1972년부터 삼립식품소속으로 프로복싱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전역 후 다시 삼립식품에 취업해 10년을 근무했다. 그 당시 배우자는 미용기술이 있어 원하지 않았지만 이곳을 정착을 위해 1991년 공주치료감호소로 전업해 근무했으며 숫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1996년 경 이곳을 매입했다. 2002년경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외식업으로 결정했다.

왼쪽부터 황복수, ,카르스키야. 홍수환 재회한 기념 촬영 모습
왼쪽부터 황복수, 카르스키야. 홍수환 재회한 기념 촬영 모습

배우자는 미용기술 이외 외식업소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었고 조리법도 몰랐다. 개업이 다가왔으나 앞이 캄캄했는데 전일 급히 조리법을 습득하고 경황없이 모두 해냈다. 당시는 볼품없던 이곳이 점점 알려지면서 제법 영업이 잘됐고 작가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방송에 식사하는 장면이 나가면서 유명해져 더욱 손님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죄송한 말이지만 예약이 넘쳐 방문하려는 손님에 전화 못 받을 때가 너무 송구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다 예약제라고 한다. 그리고 토요일은 일하는 분들과 휴식을 위해 휴일로 지정했다. 현재 외식업에서 차를 마시고 서양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으로 전업을 고민 중이다.

그러나 지인은 커피나 베이커리판매점(체인점)을 권한다. 주변 경관을 보러오는 손님들께 꼭 식사만 권할게 아니라 가벼운 차와 다과로 경관을 즐기는 편이 더 공익적이라는 점에서다. 그리고 황씨는 이제 성공해서 오랜 세월 함께한 복싱인과 체육인이나 성원해준 펜들에게 성공한 답례로 국민연금수령액은 대접하는데 전액을 쓴다고 자평했다.

그런 한편, 전 동양챔피언 황복수 선수의 지인들은 “그가 성공한 것만도 행복한데 자주 자리를 만들어 만남을 주선해 대접하고 지인들의 애경사도 잘 챙기니 더욱 행복하다”며 “황씨의 가족이 더욱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며 가족의 행복과 엔학고레의 발전을 기원했다.

황복수 부부가 지인들을 초청해 대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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