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 선생 45주기 추모제 열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심산 김창숙 선생 45주기 추모제 열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일 오전 11시, 강북구 수유동 선생 묘역에서 전통 묘제로 봉행

^^^▲ 심산 김창숙 선생불법과 타협하는 일이 없이 강직한 성품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심산 김창숙선생.
ⓒ 뉴스타운 정영희^^^
유림의 위대한 지도자로 임시정부 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불의, 부정, 불법과 타협하는 일이 없이 강직한 성품으로 유림계를 단합시켜 민족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심산 김창숙 선생 45주기 추모제'가 10일 오전 11시 강북구 수유동에 소재한 선생의 묘역에서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중권)주관, 심산김창숙선생추모제전봉행위원회(위원장 최근덕) 주최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정종기 서울북부보훈지청장, 김국주 광복회장, 성균관 관계자 및 기념사업회 임원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신(迎新), 설소과주찬(設蔬果酒饌), 강신(降神), 참신(參神), 진찬(進饌),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유식(侑食), 수조(受胙), 사신(辭神), 철상(撤床), 준(餕), 헌화․분향 등 전통 묘제(墓祭)형식으로 봉행되었다.

경북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에서 출생한 김창숙 선생(1879. 7.10~1962. 5.10)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함께 청참5적소(請斬五賊疏)라는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린 사건으로 성주경찰서에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09년에는 사립학교인 성명학교(星明學校)를 세워 민족주의 교육에 앞장 섰다.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상해에서 이동녕, 이시영, 신규식, 김구 등과 함께 임시의정원을 조직하여 경상도의원, 교통의원, 부의장으로 당선되어 구국활동을 위해 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중화국민당과 연계하여 한․중 공동 항일운동을 추진토록하는 한국독립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1920년에는 상해에서 임복성과 함께 한국독립운동을 위한 사민일보(四民日報)를 창간하고, 신채호와 함께 독립운동기관지 천고(天鼓)를 간행했다.

1926년 일제 식민지통치 아래 점차 상실되는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결사대를 파견, 식민지기관을 파괴하기로 하고 이동녕, 김구, 김원봉 등과 상의하여 의열단의 나석주를 파견하여 그 해 12월 동양척식회사를 폭파케 하였다.

광복후에는 전국 유림을 결속시켜 유림재단을 정리한 후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하였고,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육영사업을 목적으로 성균관과 성균관 대학을 재건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민족을 위해 헌신,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핫이슈포토
핫이슈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