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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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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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급 장성들 즉시 제 506부대 본부로 즉시 비상 소집

^^^▲ 대한민국의 자주경제 위해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 당시 박정희 대통령(우)1950년 6.25 전쟁후 더더욱 배고픔과 가난을 대물림 하며 절망했던 대한민국(좌),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자주경제 재건을 위해 1961년 5월16일 군사혁명 당시 육사 생도들의 혁명 지지 시위를 시청앞에서 보는 박정희 대통령(우)
ⓒ 뉴스타운^^^
실패한 저지 명령

치밀한 계획과 조직을 완료하고 5월 16일 0시를 기하여 혁명의 거사를 강행할 것을 기약하고 긴장과 초조 속에 거사 준비를 하고 있던 군사 혁명의 주모자들은 거사 5시간을 앞둔 긴박한 순간에 그들 중의 일부에 의한 배반으로 거사 계획이 폭로되어 일대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서울 서방 수색에 위치한 혁명군의 주동 부대의 일익이던 제 30사단에서 전투단장으로 출동할 박상훈 대령과 이갑영 대령은 동 사단 작전참모이며 혁명군 핵심멤버와의 연락을 전담하여 오던 이백일 중령이 혁명 주동자들과 접촉을 시켜주지 않으며 또 거사의 전체 규모를 알려 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여 5월 15일 아침부터 충돌이 야기되었던 것이 양성화되어 마침내 오후 6시 30분경 두 사람은 사단장에게 혁명 모의 사실을 보고하기로 합의하고 사단장 이상국 준장에게 사건의 전모와 함께 출동 준비 중의 병력이 혁명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고 하였다.

격노한 사단장이 고함을 지르며 이외의 사실에 당황한 나머지 그들과 함께 시내로 달려나와 삼희정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비책을 강구한 끝에 그들은 서울 지구 방첩대(506 cic)로 달려가 이철희 준장에게 혁명 계획의 전모를 보고하였다. 이에 급박한 사태를 확인한 방첩대장 이철희 준장은 즉시 육군참모 총장 장도영 중장을 그가 식사하고 있던 요정 ‘은성’으로 찾아가찾직접 구두 보고를 하였다.

이와 같은 혁명군의 출동 보고에 놀란 장 참모총장은 급히 506방첩대로 달려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직접 박정희 소장의 행방을 확인할 것을 엄명하였다. 그러나 시간은 혁명군의 출동 개시 1시간 전인 밤 10시 40분이 지났던 것이다. 이리하여 혁명군 진출 저지를 위한 지휘소로 변한 506방첩대에는 장 참모총장의 직접 지휘로 그 저지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실패한 장 참모총장의 저지책

1. 제 30사단장 이상국 준장에게 헌병의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백일 중령의 체포를 엄명하여 체포 활동의 보조자로서 이철희 준장에게 유능한 수사관의 협조를 지시하는 한편 헌병감 조흥만 준장에게 이백일 중령의 체포 및 30사단 장악을 위한 병력 지원을 명령하고

2. 제 6관구 사령관 서종철 소장에게 제 6관구 사령부의 상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헌병감에게 현재 제 6관구 사령부에 집결중인 혁명 주동자 20여명을 즉시 체포할 것을 명령하고

3. 제 506방첩대 대령에게 박정희소장의 현 거처를 파악하여 그를 미행하여 수시 보고할 것을 명령하고

4. 그의 비서실장인 김병삼 준장에게 육본의 수뇌급 장성들을 즉시 제 506부대 본부로 즉시 비상 소집하도록 하였으며

5. 혁명군의 행동 개시 시간이 다가오자 행동 주력부대로 알려진 김포 주둔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에게 일체의 훈련을 중지하고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부대를 장악하도록 지시하고 직속상관인 육군본부 특전감 장호진 준장을 급파하여 부대 장악에 임하도록 하였으며 육본의 비상소집으로 오인하고 사단예하 장병의 출동 준비를 독려하고 있던 소사의 제 33사단장 안동순 준장에게 장 참모총장의 육성 이외에는 어떠한 지시와 명령에도 응하지 않을 것과 집결중인 병력을 즉시 해산 취침시킬 것을 엄명하였으며

6.헌병감에게 방송국의 헌병 배치를 지시하고 제30사단 이상국 준장에게 믿을 수 있는 정예 부대를 편성하여 시청 앞에 출동 대기할 것을 명령하고 5월 16일 0시 40분에는 마지막으로 제 7헌병 중대장에게 비상 대기병 1백명을 출동시켜 한강교 위에서 혁명군의 진격을 저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청와대의 윤대통령과 장면 총리 및 미8군사령부에 군의 구테타 발생을 보고하는 등 안일과 데모의 만성에 젖은 정부 당국과 군고위층은 혁명 발발 겨우 두 시간 전에야 사실을 알고 경악과 당황 속에 우왕좌왕하며 긴급 저지책을 구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어 국민들의 사활을 책임진 그들의 무력과 무능을 웃어버리기엔 너무나 슬픈 사실이었다.

한편 5월 15일 밤 12시 출동을 앞두고 신당동 박정희 소장의 사저에서는 혁명 주동 장교들이 작업복에 무장을 갖추고 제6관구사령부로 출발하려던 밤 10시 30분경 뜻밖에도 제 6관구사령부 김재춘 대령으로부터 혁명의 사전 누설로 당국의 저지책에 봉착, 위난에 처하고 말았다는 전화 연락이 도착하여 경악과 흥분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은 시간이 절박하였으므로 출동 부대에 계획의 변경을 연락할 수 없어 결국 그들이 계획한 제2안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운명의 대결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11시 30분 박정희 소장과 한웅진 및 장경순 준장은 2대의 지프에 분승하여 신당동 박 소장의 자택을 빠져나와 제 6관구 사령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였을 때 감시 중이던 506방첩대원이 2대의 지프로 미행을 시작하여 무서운 속도 경쟁이 벌어졌으며, 박 소장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장 준장은 다른 길로 유인을 꾀하는 동안 박 소장은 쏜살같이 제6관구 사령부로 달려갔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뜻대로 실행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제6관구 사령부는 밤 10시경 제30사단에서의 혁명 계획 누설로 말미암아 제506방첩대 본부에 위치한 장도영 참모총장의 혁명 저지 명령이 하달되면서부터 혁명 주동 세력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장교들 때문에 수라장과 같은 일대 혼란에 빠진 6관구 사령부에는 위기일발의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밤 11시 제 6관구 사령관 서종철 소장의 비상소집명령이 하달되어 동 사령부의 3개 출입구와 외곽지대는 완전 무장한 병력에 의하여 삼엄한 경비가 시작되었으며 사령관의 비상소집명령을 받고 달려오는 참모들과 함께 계획에 의한 혁명 주동자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하여 금방이라도 총성이 울리며 유혈극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쌍방이 같은 동료인 군인들이므로 서로의 마찰과 유혈을 피하려는 정분과 사령관 서소장이 참모장 김재춘 대령이 혁명 주동자의 한사람이란 것을 모르고 그에게 사태 수습을 일임하였으므로 숨막히는 긴장과 흥분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 참모총장의 명령에 의하여 출동한 헌병들이 외곽지대를 포위하기 시작하고 때를 같이하여 헌병차감 이광선 대령이 70여명의 범죄 수사대원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다시 사태는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박 소장은 이러한 험악한 분위기 속에 도착하여 사태 진전을 파악한 후 장애물을 제거하면서라도 쿠데타의 강행을 기도하는 혁명의 제2안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유선에 의한 장 총장과의 대담에서 옥신각신하던 끝에 저지선을 뚫고라도 혁명을 강행하겠다고 통고하는 한편 장 참모총장의 협조를 청하기 위한 서한을 그의 부관을 시켜 전하게 하고 그는 출동부대를 직접 독려하기 위하여 해병대와 공수단을 향해 지프로 김포가도를 달려갔다.

한편 박 소장 출발 후 뒤늦게 도착한 헌병감 조흥만 준장과 서종철 소장 등의 도착과 함께 박 소장의 특사로 장 참모총장에게 다녀온 송찬호, 윤태일 준장과 이원엽 대령이 도착하여 사태 수습을 위한 협의 끝에 그들은 혁명에 동조내지 방관할 것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은- 혁명의 첫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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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 2007-04-29 11:08:20
    박정희 대통령의 부활을 꿈꾸며...
    그러나 이땅에서 독재자들은 지구를 떠나라...


    익명 2007-04-29 11:08:36
    경제 성장부분만 칭찬하자!!!


    통일은 2007-05-03 06:24:41
    안녕하십니까? 김제에 있는 통일은입니다.systemclub.co.kr 에서 님의 성함을 알고 평양에 태극기를... 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몇일전 google.com 을 통하여 미국 올란도에서 기자회견하는 장도영을 보고 님의글을 읽으니 많은부분이 일치함을 느꼈습니다.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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