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붕 일가는 25일 밤 서대문 자택에서 마지막으로 밤을 새우고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이기붕의 일가가 행방을 감췄던 날이 자유당의 마지막이 되었고 자유당의 아성이 무너지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의 행방은 전 국민의 화제였지만 그는 26일 새벽 부인 박마리아와 강욱군을 데리고 경무대로 향하였던 것이다.
이날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큰아들 강석군은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여 이제 마지막 주어진 자유뿐인 죽음으로써 세상에 많은 죄과를 사죄할 것을 스스로 결심했다. 독재자가 실각했을 때의 마지막 도피행이었다.
정국은 더욱 악화되고 마지막 수습 방책으로 대통령이 하야하여 경무대를 떠나야 될 것으로 선포되자 1960년 4월 28일 새벽 5시 45분 강석군은 두자루의 권총에 실탄을 장진하고 이승만 박사에게 최후의 인사를 마친 후 경무대 36호실에서 자살을 단행했다.
이대통령 망명 -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1960년 4월 28일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고위 공직자들은 물러났다. 그는 오후 2시 30분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사저 이화장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도보로 이주할 뜻을 세웠었다. 그는 비서를 비롯한 측근자들이 만류 하였지만, 끝내 듣지 않고 걸어서 이화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12시 40분경에는 허정 외무부장관이 매카나기 주미대사와 함께 이승만을 찾았다. “경무대가 비어 있으니 4, 5일만 더 머물러 주시오”라고 말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오후 2시 25분 관 1호차에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대동하고 앞에는 헌병과 경찰 지프차에 호위를 받으면서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향했다.
이화장에서 김포 비행장으로
김포 공항은 미리 연락이 되어 있어 한번도 차의 검열을 받지 않고 승강장 입구에까지 도달했다. 그곳에는 CAT 4발기가 한 대가 있었고 허정 수석 국무위원이 혼자 서 있었다. 이박사는 아래 위 검은 양복에 검정 구두를 신고 진회색 코트에 모자를 쓰고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짙은 고동색 투피스에 갈색 코트를 입고 검은 하이힐에 검은 핸드백과 누른테 안경을 끼고 있는 검소한 차림새였다.
허정의 부축을 받는 이 박사에게 다가선 기자는 ‘무슨 남기실 말씀이라도...’하고 묻자, 이박사는 흘낏 한번 돌아다보며 손을 약간 흔들었을 뿐이었고 프란체스카 여사가 “He always respects the people" 그는 언제나 국민을 존경한답니다,라고 함축성 있는 말을 하였다.
비행기는 방향을 돌리고 활주로를 벗어나 상오 8시 45분에 이륙, 독재로 12년간을 집권하던 노구의 이 박사는 드디어 망명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망명생활 5년만인 1965년 7월 19일 오후 7시 35분 하와이에서 90세를 일기로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23일에 그의 영구가 서울로 돌아와 27일 가족장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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