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는 참으로 가벼운 몸놀림으로 천천히 춤을 추며 하늘 위를 지나고 있었다. 옆집 슬레이트 지붕을 넘고, 그 옆의 기와지붕도 지나서 높다란 전봇대 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그 반짝반짝하는 경이로움은 동사무소의 태극기와 산허리를 가로지른 고압선을 지나서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길에 멍하니 서서 그 비닐봉지가 사라져간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노란 택시가 지나갔다. 뽀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면 하늘이 온통 하얗게 물이 든다. 택시의 괘적을 쫒아 일어난 안개처럼 고운 흙먼지가 하늘을 감싼다. 택시가 뿌옇게 먼지를 남기고 지나간 뒤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남았다. 그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 몹시 부러웠었다. 안개처럼 화려한 먼지를 휘날리며 나도 저렇게 달려가고 싶었다.
나는 어려서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작은 발길로 마을 뒷산에 올라가고, 산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산을 올라가 보았다. 그리곤 다음날은 아침에 밥을 일찍 먹고 저 산 너머에 있는 산의 뒤에도 또 다른 산이 있는지 가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그랬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집 뒤의 조그만 언덕에 올라가면 바다가 보였다. 그곳에는 배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배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배는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배는 참으로 잠 긴 잠을 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붕--- 길게 우는 울음을 울며 떠나버린다. 한순간에 사라져 간다. 배가 닺을 접고 오랫동안 머물던 자리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배를 곪으며 긴 시간씩을 기다리곤 했었다.
지나가는 것들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많은 것들은 나의 곁을 스쳐지나가 버린다. 찰나의 인연을 남긴 채 저 멀리 사라져 간다. 순간 내 곁에 있던 것이 어느새 저 먼 곳으로, 다시는 같이 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내 곁에 다가와서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모든 것이 떠나간다. 삶도, 열정도, 눈물도, 젊음도, 절대 잊지 말자고 굳게 약속한 맹세도... 모든 것은 건듯 부는 바람에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저 비닐봉지와 같다. 그것과 같은 가벼움으로 사라져간다.
남아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리에 남아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무엇인가. 나도 사라지고 싶다. 저 멀리, 푸른 자유의 바다로 가고 싶다. 어딘가 아득한 곳으로 옷자락을 휘날리며 떠나고 싶다. 나는 사라져 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내 가슴에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 가슴이 저려온다.
그렇다. 언젠가 나도 떠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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