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同務)와 6.15 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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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同務)와 6.15 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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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사회 죽음에 이른 말

 
   
  ▲ 경의선 착공식에서 통일노래 부르는 소년.소녀 (2002.9.18)
ⓒ 도라산역=연합뉴스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낮에는 해 동무 밤에는 달 동무
우리들은 즐거운 노래동무

이 노래는 초등학교 적 음악 책에 나오는 노랫말이고,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나물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달이도 높이 떠 노래부른다

이 가사는 전북 장수 산골짜기에 살았던 아내가 고무줄 놀이하면서 불렀던 노래다.

어깨동무, 소꿉동무, 동무장사, 동무하다, 동무 따라 강남 간다, 동무 사나워 뺨 맞는다는 말까지 동무의 쓰임새는 넉넉했다. 동무는 정겨운 이름씨다.

[동아새국어사전]에는 ‘동무’(同務)라는 말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1.벗. 친구. ... 2.어떤 일을 하는 데 서로 짝이 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 동지(同志). ... 3.한 덕대 밑에서 같이 일을 하는 인부.

벗, 동지, 친구가 동무다. ‘동지’(同志)는 어렴풋이 자기 보다 직급이 한 단계라도 높은 고위급(高位級) 인상이 풍기는 말이고, ‘벗’은 옛 친구라는 이미지가 있고, ‘친구’(親舊)는 그렇게 까지 오랜 추억을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들린다.

동지는 동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말이 아니었고 친구라는 의미로는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보니 공산당 끼리나 쓰던 말이 되어 있었다. 대학 다닐 적엔 운동권 말로 새삼 다가왔던 조금은 낯선 말이다. 친구는 불알을 꺼내놓고 첨벙첨벙 웅덩이에 빠져 멱을 같이 감았던 추억 없이 세상사를 조금이라도 알기 시작할 때 쓰기 시작했다.

그럼 동무란 무엇인가? 어릴 적엔 동무가 한자말이면서도 친근했다. 동무라는 말을 한 번 소리내서 해 보자. “동무”하는 순간 입에서 귀까지가 아무 것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울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사람을 즐겁게 하는 말이요 소린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동무를 입에 달고 다녔다. 학교 갔다와서 조금 늦게 도착하면 엄마가 “왜 이리 늦었냐?”고 하셨다. “동무들이랑 놀았어요.”하면 더 긴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집을 나서 어디 갈 때도 “엄마, 나 동무들이랑 놀다 올게요.”하면 두 번 다시 묻지 않으시고 고이 보내주셨다. 입에 달고 다녔던 것이다. 그게 3학년까지였다.

그런데 4학년 때부터는 그 말이 자주 쓰이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또렷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번 두 번 쓰이지 않더니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는 사어(死語)가 되고 만 것이다. 그 뒤로 중학교 때는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을 수 없어 중학교가 마치 거대한 서울에 처음 내렸을 때처럼 낯설기까지 했다.

왜 그 말이 죽은 것일까?

동무와 같이 사라진 말이 하나 더 있다. ‘큰물’ 또는 ‘큰물지다’는 말인데 큰 비 한 번 오면 동네 앞 도로를 싸그리 쓸어 가는 홍수(洪水)를 이르는 말이다. TV에서는 나시찬 주연의 <전우>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불러모았을 무렵이다. 이 말도 아직 국어 사전에 버젓이 들어 있다.

동무하면 불알친구와 ‘깨복쟁이’가 생각나야 되는 오늘이 바로 역사적인 ‘6. 15선언 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얼마나 들떠서 양 정상의 만남을 축하했었던가! 나도 그에 끼어 어떤 신문에 축시를 썼던 기억이 있다.


  • <축복받은 민족>

    얼마만인가?
    가슴이 떨린다

    국방위원장의 영접
    인민군으로부터 의장 사열
    대통령과 국방위원장의 동승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지구 귀퉁이에서 세계사가 다시 씌여지고 있다.

    만세 만세 만세~
    김정일 만세
    김대중 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한겨레 만세
    만세 만세 만세~

    핍박받은 민족이라 누가 말했던가?
    냉전이니 남북대치니 누가 더 이상 말할 건가?
    정상의 감격을 누가 부러워하지 않을까?

    이스라엘의 고난이
    독일의 분단이
    예멘의 단절이
    화합으로
    통일로
    하나되었을 때
    누가 감히
    이런 희열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나도 믿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의심하고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에야 난 비로소 믿었다
    사람들이
    세상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저들은 무슨 까닭으로 축복을 누리는 걸까하며 시기한다

    위대한 한민족의 발걸음
    화해와 협력의 악수
    이제사 주변 4강이 우리를 주목한 이유를 알겠다

    자랑스럽다 우리겨레
    만세 만세 한민족
    21세기 희망의 광장
    통일조국 만세
    온 겨레 만세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맑은 정신으로
    축복 받은 나와
    가족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남북통일조국과 한겨레와
    인류의 가능성을
    떠벌리며 다니련다

    복 받은 사람들아
    얼마 만인가
    생애 처음이로다 얼마 만인가<2000. 6. 15>

그 날 나는 진종일 TV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통일이 안되어도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다. 계급간 모순 해결이 민족문제 보다 우선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일단의 사람 중 한 사람이 받았던 충격이 이러할진대 3년이 지난 오늘은 씁쓸한 역사의 순간에 내동댕이쳐진 우리를 발견하고는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각설하고 요즘 아이들은 동무란 말을 쓰지 않는다. 한자말이긴 하지만 동무는 너무나 아련하고 순진하고 무구한 친구를 말하는 것임에도 쓰지 않는다. 가끔 문학 작품에나 나오는 말이 되었으니 작가들이나 혼자서 지껄이는 말이 되었다.

동무라는 말을 보면 뿔 달린 공산당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엔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김일성이 연이어 순수한 뇌리를 파고드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세상사 모두 잊고 ‘걸음동무’(같은 길을 가는 친구로 동행을 뜻하는 말)나 하나 더 늘리는 게 낫다는 생각에 귀착하고 마는 못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오늘 하루는 영 편치 않다. 씁쓸하다. 이건 아니다.

하여튼 나에게 ‘동무’는 고향, 추억, 정겨움, 아련함, 순수함, 때묻지 않음이다.

“동무들아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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