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 | ||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단상에 올라섰다. 그 순간 함보른탄광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차츰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목멘소리로 변해갔고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가사를 대신해 버렸다.
대통령내외와 300여명의 우리광부와 그리고 50여명의 우리간호사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였다. 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더니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대통령의 준비된 연설은 여기서 몇구절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구석 저 구석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연설원고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광원여러분, 간호사여러분, 가족이나 고향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결국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통령 본인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광부들에게 파고다담배 500갑을 선물로 나눠주고 광부들의 개인 기숙사를 일일이 방문하고 격려하며, 돌아갈 차에 올랐다. 차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박정희 대통령을 보고 곁에 앉은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 루르탄광지역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죽 나라가 가난하고 급했으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차관을 얻으려 다녔겠는가, 42년전의 이 사건을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직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쥐고 흔들었다는 단병호 민노총 위원장은 그때 열네살, 이남순 한국노총위원장은 열한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배우 문성근과 명계남, 신계남, 천정배. 정동영이 각각 열 살, 열두살 무렵이다.
그러니 386세대들이 당시에 으쌰으쌰를 잘했는지는 몰라도, 이 눈물젖은 역사는 알턱이 없다. 하기야 독일에서 사는 박사들 중에서도 유식하고 남달리 배웠다는 박사중에서도 뚱딴지 같은 소리 하는 사람도 있는 것 을 보면 당시 광부들의 사회와 국가의 위기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어이없는 처사들로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우리 광부의 역사를 모르니, 그 역사속에서 숨쉬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리가 없다. 애국가를 부르며 흐느끼던 광부들도 사실은 1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어 오게 된 사람들이다. 1963년 당시 파독광부 500명모집에 4만 6천명이 지원하였고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등의 고학력자들 이었다.
당시 남한인구 2400만명중에 정부공식 통계에 나타난 실업자 숫자만도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시절에 우리들은 먼 바다에 수영이라도 해서 외국으로 나가는 심정이었음을 그때 당시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매월 600마르크(약 160달러)의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 드는게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루르탄광지하 1000미터와 3000미터 사이 막장(도굴)에서 1미터 파들어 갈 때 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1966년 12월, 3년의 고용기간을 채우고 142명의 파독광부 제 1진이 귀국했을때 거의 전원이 1회 이상의 골절상 병력을 안고 있었다. 사망자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다. 간호사의 사정도 비슷했다. 1966년 1월 128명이 독일로 떠날 때의 고용조건은 월 보수 440마르크(약 110달러)였다. 독일 땅에 도착한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콜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1970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다 1966~19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 30명, 광부들은 1963~1978년까지 7800명이 건너갔다. 우리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단병호, 이남순, 문성근, 명계남, 신계남, 천정배, 정동영씨와 현 정부에 있는 386세대들,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해찬, 서울시장을 지냈던 이명박씨는 이 숨가쁜 역사와 당시의 눈물젖은 빵을 모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라를 벼랑으로 떠밀고 매스컴을 통한 현대사 비틀기를 계속 한다면, 옛 시절용어로 비 국민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386세대들은 기억이라도 하는가? 1960년대에 한국은 지금 안산공단 부근에서 곧잘 마주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국 파키스탄으로 제철소 건설과 운영의 노하우를 물으며, 배우러 시찰단을 보냈던 우리나라다.
올라가는 역사만 기억하고 내려가는 역사는 잊고 사는게 우리나라다. 그런 국가는 잊고 싶은 역사의 바로 그 대목을 되풀이 하게 되있다. 그것이 제멋대로의 선택적 망각에 대해 역사가 내리는 벌이다.
애국가 마지막 구절을 통곡으로 대신 할 수밖에 없었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설움을 까맣게 잊고 사는 오늘의 내나라 한국의 정치인이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세계에 여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걸중의 여걸 박근혜의원. 여걸 박근혜의원은 좋은점, 나쁜점 다 받아들이고, 국민들과 함께 나라지키며 잘살아 보자는게 박근혜의원의 희망. 홀로 넘어선 세계의 얼굴, 자랑스러운 박근혜 의원을 위하여 우리 모두 뭉치고 일어서 전진합시다!
[독자투고] 2007년 02월 01일 독일지부 박사모 Deutschland.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