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5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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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5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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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탄생

보고 듣는 방송국이 우리 땅에 처음으로 서게 된 것은 1956년 초 부산에 자리잡고 있는 미군들에 의한 AFKN 이었다. 그러나 이 방송이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기에는 너무나 큰 언어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감히 텔레비전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한 형편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 방송이 소위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방송국이 미국인들에 의해 처음 개국을 보게 되었다. 이 방송국이 1956년 6월 16일 RCA회사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이다.이 방송국은 미국인들의 기술과 자본 등 모든 방송에 필요한 유형무형의 자산을 들여 한국에 설치되고 사장은 물론 미국인이었는데 6.25전쟁 이후 미국에 건너가 텔레비전 방송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온 황태영부사장이 사실상 미국인들의 협조를 받고 우리에게 시청각적 방송을 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RCA 회사 측은 5.15선거를 앞두고 개국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못해 HLKZ라는 호출부호로 6월 16일 오후 8시 첫 방송을 시작했다. 1955년 12월부터 계획한 보람으로 개국식날에는 8가지의 다채로운 프로로 2시간 동안 방송을 했는데 약 35평 가량의 스튜디오와 영사실, 조정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2대의 촬영기와 5개의 스포트 라이트가 화신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HLKZ 방송국에 들어있는 전부였다.

텔레비전 국내 첫 상륙

한국 RCA측은 텔레비전의 첫 도입계획으로 수상기 3백대를 수입, 그 중 50대는 학교를 비롯 서울역과 교회 그리고 공공기관에 배치하여 일반 서울 시민들에게 무료로 설치하고 나머지 250대는 일반 시장에 판매 했는데 소형은 15만환, 대형은 25만환선을 상회,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서민들은 한낱 그림의 떡같은 존재였다.

제 3대 정. 부통령 선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아보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격’이란 혹평 속에 5.15 정. 부통령 선거는 야당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민주당의 장면후보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구호를 상징적으로 표현 이채를 띄웠고, 자유당의 이기붕후보는 ‘오늘의 한국 현실이 구한국시대나 일제 시대보다 못한 것이 무었이냐“로 응수. 선거 결과는 전유권자의 52.5%의 지지로 대통령에 이승만박사, 부통령에 장면박사가 당선 되었다.

5.15 선거에서 각 당의 정강 정책

자유당 통일정책-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 반공으로 국토의 통일을 완수한다.

민주당 통일정책- 국력의 신장과 민주 우방과의 제휴로 국토를 통일한다.

진보당 통일정책- 남북한에 걸쳐 조국의 통일을 저지하고 있는 극우. 극좌의 불순세력을 억제하고 진보세력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유엔보장하의 민주방식에 의한 평화통일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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