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6월, 그리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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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6월, 그리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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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용기없는 나의 '기도'였습니다.

하얀 안개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자 동료들이 갑자기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목이 매캐하게 막혀왔다. 이 아름다운 시절에 왜 이리 슬픔이 내 가슴에 자리 잡은 것일까.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름과 흰색이 섞인 하늘에 동료들의 함성이 가득 섞여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보도블록을 더 깨 줘.’ ‘누구 손수건 없어요.’ ‘여기 피가 나요’

그러다 지쳐 잠시 뒤로 밀려 나왔을 때, 지친 사람의 무리들 틈에서 후배를 만났다. 후배의 얼굴에도 눈물과 땀과, 분노가 잔뜩 배어 있었다. 거친 호흡을 밷으며 후배의 어께를 두드려주었다. “고생이 많다.” “형. 형도...”

나에게서 조금의 독서지도를 받았다고 할까. 나와 함께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할까. 별로 해준 것은 없지만 나를 선배라고 깍듯이 대접해 주는 후배중의 한사람이었다.

나는 원래 가르치는 것을 싫어했다. 어제부턴가 절대적인 진리라는 게 희미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확신이 없는데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그렇다고 무엇인가 요청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잉여’된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들과 몇 권의 책을 같이 읽었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비판의 의견을 같이 들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총명한 그들의 눈빛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내 삶이 잉여되지 않은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기쁨을 느꼈다. 나는 결코 결론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결론을 내리고, 나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신앙은 고백이다.” 독서가 끝나고 학교근처 주점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나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각각 스스로 결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옳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실천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 동아리는 종교동아리였고, 나는 학내의 수많은 종교 동아리 중 유일하게 그런 말을 수용해주는 동아리를 같이 만든 창립멤버였다. “예배(service)란 단순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란 자신이 신앙하는 대상에 대해 헌신하는 것이다.” 나는 또 그렇게 이야기 하곤 했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눈물을 자아내게 할 때. 동료들이 분노에 받힌 고함을 질러댈 때 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신앙의 고백이고, 나의 신앙의 대상에 대한 내 몸을 바쳐서 드리는 헌신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나는 하늘을 향해 팔을 크게 내지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었다. 내가 던진 돌맹이는 장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시커먼 장갑차를 향하여 날아가곤 했었다.

사실 두려웠다. 친구들이 잡혀가는 것도 두려웠고, 다치는 것도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훗날, 젊은 날 인식의 오류에서 빚어진 행동으로, 한낱 잘못된 치기에 의한 것으로 판명이 나진 않을까 하는 것이 두려웠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은’ ‘너무 소심한’ 창백한 독서광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상황’ 속에 있었고, 내 신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부도덕한 것이라고, 비 신앙적인 것이라고 자꾸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희랍인 조르바’처럼 자유로운 존재이고 싶었지만, 상황에 응답하지 않는 삶은 잉여된 것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정확히 확신을 가지기 위해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날마다 흔들리고 있었고, 시시각각 의심하고 있었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동아리 성경공부를 끝낸 후 ‘세평조통(세계평화와 조국통일)’을 외쳐대던 호기롭던 후배들이 나의 신앙을 이끌어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여전히 생각 많은 나약한 존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라크 전 때는 그래도 무엇이 옳은지 자신이 많이 섰었는데, 다시 시작되는 북핵문제는 판단하기가 더 어렵다. 나는 여전히 ‘상황’에 서 있고, 나의 나약한 신앙은 미약한 힘이지만 무언가를 위하여 어떻게든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무엇을 ‘고백’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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