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의 '베트남전 양민학살' 기사 -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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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베트남전 양민학살' 기사 -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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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와 참전용사들간의 화해를 위하여

<한겨레21> 최초기사와...디비기...

주제넘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먼저 월남전에서 발생했던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 토론을 하실 때에는 최대한 언어사용에 유의를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무심코 쓴 글이 파월장병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곳 토론장에서도 자주 보이는 양민학살 같은 단어는 그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한겨레 21 같은 경우, 왜 욕을 먹고 있는 지는 뻔합니다. 정정기사를 올렸다는데, 뭘 정정했는지 모릅니다. 이미 쏟아진 물이죠. 넷에 떠도는 컨텐츠는 애초에 올렸던 보도 내용이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잘못된 보도에 기초하여 미국이나 월남언론에 보도된 내용도 이제와서 한겨레가 실수였다고 정정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죠.

월남전 특수로 국가경제가 기틀을 닦았지만 정작 그들은 아직도 고도성장의 그늘 뒤에서 고엽제나 크고 작은 전상, 사회부적응 등 각종 전쟁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한국의 언론이었다면 그들의 입장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입장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했었습니다. 파월장병들 또한 베트남인 못지 않은 전쟁의 희생자였을 뿐 아니라 우리는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를 바탕으로 경제적 윤택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겨레는 최소한의 배려는커녕 공정성조차 잃은 보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전쟁이나 군대, 전장심리나 게릴라전 등에는 전혀 무지한, 군사적 지식이 전무한 일개 여자기자의 송고를 토대로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의 만행" 따위의 기사를 퍼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겨레의 보도에는 한국군은 용병이었고, 월남전은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등의 주장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용병으로 미국의 달러를 벌기 위해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자신들의 전과를 부풀리기 위해, 또는 화풀이의 대상으로 민간인을 상대로 잔학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그 여자-구수정-와 한겨레의 보도 내용이며 결론은 이제라도 양심을 회복하여 사죄와 보상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또, 교민들이 이런 내용을 본국에서 부풀려서 이슈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 하자, 이것은 죄의식의 발로일 뿐이라고 강변합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유죄가 확실하게 입증되기 전까지는 일단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한겨레는 단순한 문제제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주제넘게도 일방적인 현지 주민들의 증언만을 토대로 한국군의 몸서리쳐지는 만행, 사죄와 보상, 양심의 회복 등등을 함부로 운운하여 30만 파월장병들의 명예를 심하게 손상했습니다.

즉, 한겨레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고, 30만 파월장병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30만 파월장병들 뿐만이 아니라,대한민국의 명예와 이익에도 전혀 부합되지 않는 아마추어리즘과 선정주의에 불과합니다.

한겨레의 소영웅주의가 30만 파월장병과 대한민국의 명예와 이익보다 소중합니까?

월남전 당시 민간인 사망에 대한 월남측의 청원이 있다면 정부 차원의 합동조사단이 공식적으로 발족되어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 선결과제이며 그 결과에 따라, 정말 학살이 존재했었고 그에 따라 보상할 일이 있으면 보상하고, 사과할 일이 있음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덮어놓고 사과와 보상을 주장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죽고나서 보니 직업이 농부니까 '양민학살'이다... 여자를 죽였으니 '양민학살'이다, 어린애를 죽였으니 '양민학살'이다... 이 얼마나 웃기는 얘깁니까? 파월 초기, 멋도 모르고 단체로 시내관광을 나갔던 장병들이 탄 버스에 어린애가 다가오자 웃으면서 껌을 건네주려는 찰나 그 "어린애"가 열린 창문으로 수류탄을 까넣어 장병들이 몰살당한 얘기도 있고, 농부 차림의 할아버지 베트콩, 젊은 여자 베트콩 얘기 따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이 양민입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바, 한국군에 의한 양민의 희생자가 5,000명 정도라고 하지만, 그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베트콩이 섞여 있는 지, 이제 와서는 전혀 식별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고 나면 말이 없는 데, 이마에 '나는 VC'라고 새겨놓은 게 아니니 말이죠. 내가 보기엔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구체적인 보상 따위는 가능할 성 싶지 않습니다... 베트콩임을 입증할 근거도, 부정할 근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별이나 연령, 거주지나 직업은 베트콩을 식별하는 데, 또는 베트콩을 아님을 입증하는 데 하등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한겨레의 소위 증언담들을 보면 '학살'당했다는 사람의 조카가-당시엔 코 찔찔 흘리는 나이였을- "그들......은 선량한 농부였다, 베트콩이었을 리가 없다"라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기자는 그걸 그대로 수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죠. 나같으면 "그건 아저씨 생각이고" 라고 했을텐데.

한겨레가 올린 글에는 비단 이런 것 뿐만이 아니라, 한국군을 "남한 군대"라고 표현하는 가 하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헌법조항도 모르는지.... 우리나라에 대한민국 국군 이외에 또 다른 정식군대가 있다는 말인가? 남한군대와 북한군대는 동격인지?),

월남전은 민족해방전쟁이었으며 한국군의 파병은 이런 민족해방전쟁에 끼어든 용병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여과없이 올라가 있는데.... 그게 민족해방전쟁이면, 한국전쟁 또한 북괴가 주장하는 바대로 '조국해방전쟁'이며, UN군은 '외세의 개입'이 아닐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마 제일 첨에 포문을 연 기사라고 생각되는 데,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이라는 기사를 전재하고 그 버그를 잡아보겠습니다.

><966년 3월19일과 20일 이틀간에 걸친 ‘베트남 중부 각 성의 전쟁범죄조사회의'에>서 남한 군대의 죄악상을 낱낱이 밝혔던 응웬탄퐁을 이르는 말이다. “손에 들고 있>는 이 자료가 점점 두려워지는군요. 어쩌면 우리는 이 자료를 더 보충해야 할지도 몰>라요. 빈딘성을 중심으로 이 자료에 소개된 네 지역말고도 한국군의 학살현장이 더 >있다고 하는군요.”

당시 응웬탄퐁의 보고에 따르면 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약 한달 동안 맹호부대 3개 소대, 2개 보안대대, 3개 민간자위대에 의해 이 지역>에서만 모두 1200명의 주민이 학살됐고, 그 중에는 한명도 남김없이 몰살당한 가족>이 8가구나 됐다. >이러한 수색소탕작전은 일차적으로 융단폭격 등으로 작전지역을 공개하고, 한국군 >등 지상군이 현장에 투입되어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을 즉결처분한 뒤 집을 불사르>고 불도저 등으로 마을 전체를 밀어버리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생존자들의 한국군에 >대한 증언에서 공통되는 점은, 무차별 기관총 난사, 대량살육, 임산부 난자살해, 여>자들에 대한 강간살해, 가옥 불지르기 등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군들의 방식을 양민학살 정리해보면 몇 가지 공통된 유형이 나타난다.

>1. 주민들(대부분이 여성과 노인, 어린이들)을 한데 끌어모은 뒤 다시 몇개의 그룹으로 나눈 다음 기관총을 난사해 몰살시킨다.
>2. 주민들을 한집에 몰아넣고 총을 난사한 뒤 집과 함께 죽은 자와 산 자를 통째로 불태운다.
>3. 아이들의 머리를 깨뜨리거나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절단해 불에 던져넣는다.
>4. 여성들을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빠져나올 때까지 군화발로 짓밟는다.
>5. 주민들을 마을의 땅굴로 몰아넣고 독가스를 분사해 질식사시킨다.

> 한국군의 대량학살이 자행된 곳에는 아이들의 입에 캔디나 케이크가 물려 있었다. 노인들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마을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한곳으로 모으는 한 수단이었던 듯하다.

우선, 처음 보이는 맹호부대의 예를 보면, 동 부대와 작전을 했다는 보안대대, 민간자위대는 월남인들로 구성된 부대입니다. 병력은 맹호부대가 3개 소대에 비해 보안대대 2개, 자위대 3개로 월남인 부대가 10배 이상 많죠. 그럼에도 그 모든 민간인 희생은 한국군의 몫으로 간주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은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우기 '한국군의 수색작전방식'이랍시고 기술한 것을 보면 더 기가 찹니다. 융단폭격 --> 보병투입, 민간인 살해 --> 도저를 동원하여 마을 전체를 소멸하는 것이 한국군의 수색작전 방식이라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잘 아시겠지만 융단폭격이라는 것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소대단위 수색작전에 병행되어 실시할 수 있는 것입니까? 월남전의 융단폭격이라면 B-52가 수만 피트 상공에서 통상 폭탄을 투하하여 진행했는데, 무슨 재주로 정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손바닥만한 마을만 골라서 맞추겠습니까?

일단 융단폭격이란 전략폭격입니다. 마을같은 전술목표를 타격하는 것이 아니죠. 그 공산당원과 한겨레의 철부지 여자기자는 전술폭격과 전략폭격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무지가 자신들의 주장이 근거없는 날조임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색작전이란 말 그대로 적정을 수색하는 것이고, 그 결과 적이 확인이 돼야, 폭격을 하든, 포격을 유도하든 하지, 일단 수천 발의 폭탄으로 마을을 깡그리 날려 버리고 거기에 뭐가 살아서 남아있다고 수색을 나가는지 모르겠군요. 융단폭격이 실시되어도 살아 있는 양민들이란 또 도대체 뭔가요?

한국군이 도저를 운용했다고 하는데 소대급 수색작전에 공병이 따라 다닌다는 얘긴지..... 월남전에서 싸웠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민간인을 죽였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융단폭격을 하고 도저로 깔아뭉갰다는 소리는 한겨레에서 첨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장비는 파월 한국군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장비가 아니기 때문이죠. 폭격기나 전투공병은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럼 우린 소대급 수색작전에도 항상 미공군과 미육군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을 정도로 한미간에 원활한 지원-협조체계가 존재했다는 얘긴지...? 그랬으면 고엽제 피해도 없었을거고, 전사자도 5000명씩이나 안나왔겠죠.

또, 주민들을 사탕이나 케이크로 유인해서 동굴 속에 몰아넣고 독가스로 처치했다는 부분은 상당한 소설적 상상력이 동원되어 각색되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월남에서 케이크를 어디서 구했다는 얘긴지 알 수가 없습니다. C-레이션에 초컬릿이나 껌은 있었으니 차라리 그런걸로 꼬셨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고 하고 넘어가련다만, 케이크.... 이거 참, 월남에서 밤이면 밤마다 파티 하다 온 줄 아는 것 같습니다.

독개스는 또 뭔가요? 한국군이 화학전을 했다는 얘긴데, 기가 찹니다. 66년 맹호면 그들이 어떤 장비를 갖고 있었는지 한겨레는 모르고 있나 봅니다. M1 개런드 소총에 X밴드, 수류탄에 구형전투복.... 한마디로 한국전쟁 때, 백마고지 전투에서 뒹굴던 그 장비 그대로였는데 B-52 융단폭격에, 도저에, 독개스 화학탄, 기관총-M16을 얘기하는 듯- 난사?????

한국군이 신형 자동소총인 M-16을 첨 받아본 건 67년 2월, 백마부대였고 그것도 1개 중대당 10정씩 밖에 안돌아습니다. 당시 이 M-16을 신형화기라고 본국으로 보내자 연발로 사격이 되니까 기관총인 줄 알고 철책 GP에 기존의 BAR 대신 M-16을 거치해 놓았었다는 웃지못할 얘기가 나오는 그런 실정이었습니다.

하얀 전쟁에 나오는 병사들의 복장... 미군전투복에 M-16 들고, 방탄조끼 걸친 모습은 빨라도 1968년은 되어서야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한국군이 66년에 융단폭격을 하고 도저로 마을을 뭉개고, 기관총을 난사하다니? M1이 기관총처럼 난사가 되는 물건입니까? 미군의 작전방식을 보고 우리한테 뒤집어 씌운 것이 아니라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M1으로 기관총 쏘듯 쏠 자신이 있으면 그 사람들 보고 쏴보라고 합시다.

백마부대 1진으로 파병된 한 백마부대 소대장의 회고록을 보면 월남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나서 병사들이 파월을 기피하고, 밤마다 탈영사고가 나서 하사관들이 밤새 지켰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저녁 때 겨우겨우 소대인원을 맞춰놓으면 아침에 상급제대에서 전출명령이 내려와서 병력을 몇 명씩 빼가는 바람에 허탈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분은 이런 고충 때문에 양평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진하여 한강 가운데 있는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고 잠을 편히 잤다고 합니다.

파월장병들은 그들이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응해 그곳에 갔었던 이유만으로 충분히 배려를 받아야 할 자격이 있는 분들이십니다. 일부에선 불가피했든,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이었든, 아니면 정말 극히 이상한 일부 병력에 의한 비인도적 행위가 있었든, 그건 일부의 일입니다. 그 일부로 인하여 30만 주월사 병력 전체가 용병이나 잔인한 살인자로 매도당하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월사의 공식적인 지침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일명의 민간인을 보호하라는 것이었고 이것은 일선 부대에서 강력하게 시행되었습니다.

현충원에 가보세요. 줄지어 서있는 하얀비석들... 병장 이 OO 196X년 월남에서 전사, 상병 김 OO 월남에서 전사, 월남에서 전사, 월남에서 전사, 전사, 전사, 전사...... 그 앞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디펜스코리아에서 허가없이 퍼왔습니다.>
작성자 심광웅 (panzervor) 작성일 2001-05-23 오전 1:05:28

[프롤로그] 한겨레와의 만남 - 한겨레와 참전용사들간의 화해를 위하여

년전... 한겨레21의 기사를 처음 접하고... 그 오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21이 어떻게 이문제를 다루는지 지켜봐왔습니다. 그동안.. 참전용사분들과 만나기도 했고...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일을 벌였습니다...

한겨레와 참전용사들간의 화해를 위해 시작한 일... 결국.. 한겨레에 대한 실망으로 끝났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겨레를 맹목적으로 믿고, 그들의 실수와 삐뚤어진 태도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빠진 것이 있다면..pc통신 넷츠고에서... 구수정기자와 공개토론을 벌이기로 하고... 날까지 잡아놓았으나... 참가하지 않은일...이 있군요... 하여간...단 한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았으니.. 객관적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 심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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