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밴던〉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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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밴던〉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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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 투영된 불안의 세계

^^^▲ 영화 어벤던(Abandon, 2002) 포스터^^^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집으로 오는 길. 항상 평지같이 걷던 지름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파라 보인다. 기분 탓일까. 난 잠시 오던 발걸음을 되돌려,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 곳인지 확인해 본다. 틀림없이 이 길이다. 혹시, 케이티의 영혼이 내 눈을 잠식해 버린 것은 아닐까? 평소같지 않게, 지름길을 가로지르는 것이 힘들게만 느껴진다.

졸업논문과 입사시험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학졸업생 케이티에게 나타난 2년 전 실종된 남자친구 엠브리. 엠브리에게 쫓기는 인상을 주는 케이티는 그러나 매 순간, 차분하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의 눈에 투영된 세계는 그녀가 바라는 세계인 동시에, 또 과도하게 절망적인 현실인식의 세계다. 그녀는 인식함으로서 사랑하게 되며, 사랑하게 됨으로서 불행해지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녀의 불안한 정신은 실체적인 인물과 환상의 경계지점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그 강인함은 극도로 불안한 정신의 가장 끔찍한 방어본능이다.

어디로 떠나겠다는 것인지 그녀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같이 떠날거죠? 그렇죠?"라는 말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엔 아마도 뿌리깊은 외로움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곧 단절된 자아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혹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불합리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이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를 생각해본다. 실질적으로 너무나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여행은 때로는 너무 빨리, 또 때로는 너무나 힘들게 끝이 난다. 언제나 종착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종착점은 이제 더 이상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를 청산하거나 혹은 과거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도 끝이 났을 때,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고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종착점에서 출발점을 찾지 못하고 부유(浮游)하는 삶이 있다.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의 차이는 '길'을 아느냐와 '길'을 모르냐의 차이가 아니라, 새로 시작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케이티는 너무도 오래도록 출발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출발점이 어디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한마디씩 건넨다. 그런 상황이 그녀의 착각인지, 아니면 실존하는 일인지조차 이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분간하지 못한다. 영화는 말한다. 과연, 우리 안에 존재하는 진실은 얼마나 가증스런 것인가? 불안은 이렇게 영혼을 천천히 그러나 마구마구 잠식하고 있는데, 당신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당신은 여전히, 상대의 진실을 몰라 머뭇거리는 중이 아니냐고. 당신이 지금 알고 있는 진실이 정말 믿을만한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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