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강행, 가상 시나리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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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강행, 가상 시나리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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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후폭풍은 미국의 9.11테러보다 더 큰 충격

200X년 9월 새벽 4시

북한은 기어이 동해상을 통해 핵실험을 강행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시각은 통이 한참 트기전으로 모든 국민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모든 정부 및 정보기관도 입가에 침을 흘리고 콧구멍속에서 풍선이 불어나오고 있던 무렵이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던 때였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모든 기관이 비상사태에 돌입했으며, 잠에서 덜 깬 각료들도 전원 회의에 들어갔다. 미국도 일본이 각료회의에 들어가던 시간에 및추어 국방장관을 비롯해 모든 군 장성들을 백악관으로 집결시키고 대책회의에 돌입하였으나 우리나라 정부는 아침뉴스를 통해 보고를 받는다.

이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을때 한.미.일의 대응이었으나 사실상 북한의 핵실험 후폭풍은 미국의 9.11테러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조간신문마다 <北 끝내 핵실험 강행>이라는 메인기사가 집채만하게 개제되었고 당일 모든 드라마와 오락프로등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가 종일방송되었다.

예상대로 핵실험 당일 국내의 상황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쨉도 아니었다.

핵실험 여파로 인해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았으며 이로인한 제한송전이 실시되면서 전국의 지하철과 자동차운행이 중단되고 각 가정과 공공기관마다 전력과 가스공급이 중단되면서 불편을 겪는다.

상점마다 사재기현상으로 혼란을 빚었고 도심 곳곳은 순식간의 야만으로 돌변하는 아비규환의 모습이 연출되었다.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으며 모든 금융기관이 마비되는 공황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시기 북한에는 핵실험 성공과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일 경축행사에 맟추어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러한 상상도 해서는 안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로 그칠만한 현실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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