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판자촌. 붉은 벽돌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이 산 꼭대기까지 뒤덮었다. /카라카스=전병근특파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좌파 혁명’의 진원지로 꼽힌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와 자유시장경제를 거부하고, 에너지를 무기로 국내에서는 ‘사회주의’를, 국제적으로는 ‘반미 연대’를 외치고 있다. 차베스 ‘좌파 실험’의 실상을 들여다 본다. “보다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 당신이 사회주의자라면.”
수도 카라카스 시내 곳곳에는 차베스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혁명 구호가 나부끼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한쪽은 판자촌 행렬이다. 붉은 벽돌로 다닥다닥 지은 집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자 파란 잔디밭의 골프장이 눈에 들어온다. 누적된 빈부 격차를 상징한다.
“월수입이 100~120달러 선인 빈민층에게 1999년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은 구세주나 다름없었지요.” 친정부 매체인 ‘디아리오 베아’의 기제르모 가르시아 편집국장은 ‘차베스 돌풍’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내 어딜 가나 ‘차베스에게 다시 한번 1000만표를’이란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당의 홍보물이다.
집권 7년간 ‘좌파 혁명가 대통령’이 몰고 온 변화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은행 앞에 늘어선 연금 행렬. 주민 오마르(51)씨는 “76세 노모가 월 40만볼리바르(약 18만원)를 받는다”며 “여자 55세, 남자 60세가 되면 누구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심에서 서쪽으로 30㎞쯤 떨어진 외곽. 혁명가의 이름을 딴 ‘파브리시오 오헤다’ 협동센터. 이곳에는 서민들을 위한 무료탁아소·도서관·병원 등이 모여 있다. 할인상점인 ‘메르칼’에서는 옥수수가루·기름·마요네즈·세제·우유 등을 시중보다 30% 싸게 판다. 검은 콩 봉지를 집어 든 주부 안드레아(54)씨는 “덕분에 생계비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공동작업장에서 신발을 만드는 주민들은 똑같이 48만5000볼리바르(약 22만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인기정책’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59.7%에 달한다. 차베스 정부는 최근에는 카라카스 시내 3개 골프장을 허물고 거기에 서민주택을 짓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시범단지’를 벗어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쯤에 해당하는 사바나 그란데 거리. 차도나 인도나 노점상들로 뒤덮혔다. 대통령이 ‘그들도 먹고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 뒤 벌어진 현상이다.
청바지 가게를 하는 A(29)씨는 “상권은 엉망이 됐고, 소음이며 치안불안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며 “세금 내고 장사하는 사람은 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점상들은 그들대로 볼멘 소리였다. 액세서리 장수 윌리엄(30)씨는 “정기적인 단속만 풀었다 뿐이지 노점상이란 신세는 바뀐 게 없다”며 “그 많은 석유수익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여기 노점상들이 다 대통령을 지지할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실업률은 10.19%(정부발표)지만, 주민들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해졌다고 현지 언론인은 말했다. 고급 쇼핑몰의 위스키 전문점 ‘워킹 존’은 밤이 되자 손님들로 북적댔다. 바텐더 안드레이스(24)씨는 “고급 위스키를 찾는 손님이 요즘 들어 느는 추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배럴당 70달러를 웃도는 고유가에서 나오는 국부(國富)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지 ‘베네코노미아’의 로베르트 보토미 편집장은 “수출의 80%, 재정수입의 50%가 석유에서 나온다”며 “고유가로 인한 수익이, 장기적인 성장과 고용을 낳는 생산적인 설비투자보다 서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시혜성(施惠性) 정책에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령 빈민구제 프로그램으로 공공지출이 70%나 늘었지만, 정작 일자리는 2%도 증가하지 못했다. 또 정부가 주무르는 돈이 많아지면서 고위층의 부패는 더 심해졌다. 현지의 한 기업인은 “정부와 수의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20~30% 커미션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의 요직을 차지한 ‘차비스타’(Chavista·차베스 지지세력)의 국정 미숙도 도마에 오른다. 정부에 정책자문을 한다는 G(40)씨는 “회의에 가보면 현실적 정책 마인드 없이 정치적 의욕만 앞세운다”고 꼬집었다.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감정을 털어버리고 이성적으로 평가할 때가 됐습니다. 10년 동안 박 대통령을 측근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김성진(金聖鎭·75)씨가 자신이 목격한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기록한 ‘박정희를 말하다’(삶과꿈)를 펴냈다. 김씨는 동양통신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던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고, 동양통신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이던 1970년 12월 청와대 공보비서로 임명됐다. 그는 이듬해 청와대 대변인이 되어 1975년 12월까지 근무했고, 이어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1979년 12월까지 재직했다. 1979년 10·26사건 다음날 중앙청기자실에서 박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처음 발표한 사람도 김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마디로 현대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지도자였습니다. 관념과 이념의 세계보다는 생활과 현실을 중시했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을 먼저 해야 한다고 봤지요.”
김씨는 1960년대의 한국 사회가 지식층과 대중이 크게 괴리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중산층을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자신이 길러낸 중산층의 반발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反) 민주적이라고 비판 받으면서 중산층을 강화한 박정희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중산층을 무너뜨린 노무현 중 어느 쪽이 진정 민주주의에 이바지했는지 묻고 싶다”고 김씨는 말했다.
이 책에서는 당시 정치인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혐오감을 확인할 수 있다. ‘국회는 국민의 여론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여야 간에 신뢰도 없으며, 야당은 무책임한 비판만 하고 있어서 국정 운영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박 대통령은 보았다는 것이다.
‘그의 개혁 정치, 그리고 과잉충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김성진씨는 박정희 정권의 권력기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과 가족에게 책임감과 죄송한 마음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그 대부분이 박 대통령 본인보다는 이후락·박종규·차지철·김재규 등 2인자 자리를 노리던 군인 출신 권력자들의 과잉충성에서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남북대화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던 이후락, 월권 행위와 무모한 강경책을 밀어붙이던 차지철을 비판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과잉충성’을 막지 못한 책임은 결국 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김씨는 이에 대해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박 대통령은 패기와 결단력이 많이 약해졌다”며 “‘지도자로서의 사명감’과 ‘개인·가족의 삶’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그 틈을 개인적 야심을 가진 측근들이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성진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1983년 하야(下野)’ 결심을 하고 있었다고 이 책에서 주장했다.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고, 중화학공업 건설이 본 궤도에 오르면 임기만료 한 해 전에 국무총리에게 정권을 물려주려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70년대 후반 어느 날, 박 대통령이 갑자기 ‘앞으로 내가 초야로 돌아가 자서전을 쓰게 될 경우 임자가 와서 도와주겠나?’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인기영합 과도한 복지에 경제만 멍들어”
현장 르포 "21세기 좌파혁명" 베네수엘라를 가다
석유팔아 연금·무료병원에 퍼붓고도 빈부격차 여전
“먹고살게 해준다더니…” 국정미숙·부패에 불만 팽배
▲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판자촌. 붉은 벽돌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이 산 꼭대기까지 뒤덮었다. /카라카스=전병근특파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좌파 혁명’의 진원지로 꼽힌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와 자유시장경제를 거부하고, 에너지를 무기로 국내에서는 ‘사회주의’를, 국제적으로는 ‘반미 연대’를 외치고 있다. 차베스 ‘좌파 실험’의 실상을 들여다 본다. “보다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 당신이 사회주의자라면.”
수도 카라카스 시내 곳곳에는 차베스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혁명 구호가 나부끼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한쪽은 판자촌 행렬이다. 붉은 벽돌로 다닥다닥 지은 집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자 파란 잔디밭의 골프장이 눈에 들어온다. 누적된 빈부 격차를 상징한다.
“월수입이 100~120달러 선인 빈민층에게 1999년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은 구세주나 다름없었지요.” 친정부 매체인 ‘디아리오 베아’의 기제르모 가르시아 편집국장은 ‘차베스 돌풍’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내 어딜 가나 ‘차베스에게 다시 한번 1000만표를’이란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여당의 홍보물이다.
집권 7년간 ‘좌파 혁명가 대통령’이 몰고 온 변화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은행 앞에 늘어선 연금 행렬. 주민 오마르(51)씨는 “76세 노모가 월 40만볼리바르(약 18만원)를 받는다”며 “여자 55세, 남자 60세가 되면 누구나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도심에서 서쪽으로 30㎞쯤 떨어진 외곽. 혁명가의 이름을 딴 ‘파브리시오 오헤다’ 협동센터. 이곳에는 서민들을 위한 무료탁아소·도서관·병원 등이 모여 있다. 할인상점인 ‘메르칼’에서는 옥수수가루·기름·마요네즈·세제·우유 등을 시중보다 30% 싸게 판다. 검은 콩 봉지를 집어 든 주부 안드레아(54)씨는 “덕분에 생계비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공동작업장에서 신발을 만드는 주민들은 똑같이 48만5000볼리바르(약 22만원)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이런 ‘인기정책’으로 대통령 지지율은 59.7%에 달한다. 차베스 정부는 최근에는 카라카스 시내 3개 골프장을 허물고 거기에 서민주택을 짓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시범단지’를 벗어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쯤에 해당하는 사바나 그란데 거리. 차도나 인도나 노점상들로 뒤덮혔다. 대통령이 ‘그들도 먹고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 뒤 벌어진 현상이다.
청바지 가게를 하는 A(29)씨는 “상권은 엉망이 됐고, 소음이며 치안불안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며 “세금 내고 장사하는 사람은 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점상들은 그들대로 볼멘 소리였다. 액세서리 장수 윌리엄(30)씨는 “정기적인 단속만 풀었다 뿐이지 노점상이란 신세는 바뀐 게 없다”며 “그 많은 석유수익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여기 노점상들이 다 대통령을 지지할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실업률은 10.19%(정부발표)지만, 주민들은 “그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해졌다고 현지 언론인은 말했다. 고급 쇼핑몰의 위스키 전문점 ‘워킹 존’은 밤이 되자 손님들로 북적댔다. 바텐더 안드레이스(24)씨는 “고급 위스키를 찾는 손님이 요즘 들어 느는 추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배럴당 70달러를 웃도는 고유가에서 나오는 국부(國富)를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지 ‘베네코노미아’의 로베르트 보토미 편집장은 “수출의 80%, 재정수입의 50%가 석유에서 나온다”며 “고유가로 인한 수익이, 장기적인 성장과 고용을 낳는 생산적인 설비투자보다 서민의 인기에 영합하는 시혜성(施惠性) 정책에 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령 빈민구제 프로그램으로 공공지출이 70%나 늘었지만, 정작 일자리는 2%도 증가하지 못했다. 또 정부가 주무르는 돈이 많아지면서 고위층의 부패는 더 심해졌다. 현지의 한 기업인은 “정부와 수의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20~30% 커미션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의 요직을 차지한 ‘차비스타’(Chavista·차베스 지지세력)의 국정 미숙도 도마에 오른다. 정부에 정책자문을 한다는 G(40)씨는 “회의에 가보면 현실적 정책 마인드 없이 정치적 의욕만 앞세운다”고 꼬집었다.
카라카스=전병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