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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경호 <김시습 평전> 표지 ⓒ 돌베개^^^ | ||
해동에서 최고라고들 말하지
격에 벗어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네게 어이 해당하랴?
네 형용은 아주 적고
네 말은 너무도 지각 없구나.
마땅히 너를 두어야 하리
골짜기 속에
이 글은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 책머리에 실려 있는 김시습의 자화상에 덧붙혀져 있는 글 몇 토막이다. 이처럼, 그러니까 '골짜기 속에' 자신을 두어야 한다고 할 만큼 김시습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고려대 한문학과에 재직 중인 심경호 교수가 돌베개에서 펴낸 <김시습 평전>은 이처럼 책 표지에서부터 이야기거리로 가득하다. 왜냐하면 지금껏 우리들이 보아온 여러 초상화들은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한결 같이 근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자비스러운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사람 꼴 취하였거늘
어찌해서 사람 도리 못 다 하였나
젊어선 명리를 일삼았고
장년이 되어선 자빠지고 넘어졌네
고요히 생각하면 부끄러운 걸
진작에 깨닫지 못하였나니
후회해도 지난 일을 돌이킬 수 없기에
잠 못 이루고 가슴을 방아 찧듯 쳐댄다
('나의 삶'(我生) 몇 토막)
그랬다. 김시습의 시 또한 늘 찡그린 모습이다. "태어나 사람 꼴 취하였거늘/어찌해서 사람 도리 못 다 하였나" 처럼 그가 남긴 2200여 편의 시 속에는 자학적이라고 할 만큼 그 자신을 철저하게 옳아매는 시들이 많다. 또 50세 이후 강원도 양양 설악에서 지은 '나의 삶' (我生)이란 시에서는 자신의 묘비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써달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체 소설((傳奇體小說), 그러니까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내용을 다룬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 그는 대체 누구인가. 여러 사람들의 평가처럼 그는 조숙한 천재이자 절의의 화신이며 광인인가. 아니면 시인인가, 방랑자인가, 유학자인가, 승려인가, 도인인가.
김시습에 대한 최초의 전기 '김시습전'을 쓴 율곡 이이는 이렇게 말한다. 매월당은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깨치고 3살 때 한시를 지은 신동이었으며, 5살 때에는 세종대왕에게 시를 지어올려, 세종대왕이 이를 기특히 여겨 '오세' 라고 부르며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왕위가 단종에서 세조로 넘어가자 자신의 글을 모두 불사르고 '심유적불(心儒跡佛)했다, 라고.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 심유적불이란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다름 아닌 마음은 유가에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해 몸을 불가에 맡겼다는 그런 뜻이다. 그렇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실체를 이미 파악하고, 그 진리의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들 수 있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시습전>에서 율곡 이이는 당시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김시습의 입장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매월당은 서거정, 남효온, 정창손, 김수온 등과의 기이한 행각을 통해서 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담아냈다고. 그렇다. 그렇게 미친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어찌 마음을 달랠 수가 있었겠는가.
그 중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 당시 누더기옷에 패랭이를 쓴 김시습이 저잣거리를 쏘다니다가 서거정과 마주치자 "어이 강중(剛中 서거정의 자), 잘 지내는가?"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때 매월당보다 열다섯살이나 위였던,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서거정은 그 자리에서 수레를 멈추고 매월당과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나는 알지, 나는 알지
손뼉 치며 깔깔 한바탕 웃노라
옛날 잘난 이 모두 본질을 잃었나니
시냇가에 초가 지어 사는 것만 못하리
('깔깔대며 웃는다'(謔浪笑) 몇토막)
4여년의 긴 세월을 <김시습 평전>에 고스란히 바친 심경호 교수는 "마음은 유학자이되 겉으로는 불교도(心儒迹佛)" 이며 "행동은 유학자이면서 겉모습만 불자(行儒而迹佛)" 라는 조선시대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시습을 이렇게 평가한다. 김시습은 유학과 불교를 모두 깊이 이해하고 두 가지 사상을 모두 넘나들며 오직 진리를 추구한 '자유의 사상가'라고.
<김시습 평전>은 김시습이 남긴 시문집과 저술, 그가 만났던 인물들의 문집과 저술 등을 집대성하여 김시습의 참 모습을 꼼꼼히 밝혀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금까지 밝혀진 김시습의 흔적들을 모두 끌어모아 적당히 짜집기한 그런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또한 잘못 알고 있었던 김시습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놓은 그런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읽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700여쪽이나 되는 두툼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곳곳에 뜻이 모호한 한자말들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 하지만 어쩌랴.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시대, 어쩔 수 없이 중심에서 비껴나 변방에서 살다간 한 시대 탁월한 사상가의 참모습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쉽기만 하겠는가.
이 책에서 글쓴이가 바라보는 김시습에 대한 시각은 드넓게 열려 있다. 김시습은 인간 본연성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민본주의, 인간평등사상을 실천하려고 애쓴 사상가이며, 유.불.도를 넘나들며 몸으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또 김시습은 유학이라는 단순한 틀 속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며, 광인은 더더욱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김시습을 절의의 화신으로 평가한 것은 조선시대 유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이미지 조작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 심지어는 도가사상까지 흡수하여 인간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중심사상을 구축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시습의 광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이렇게 평가한다. 김시습은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만이 진리를 터득했노라고 자부하면서 광기를 부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김시습은 늘 인간 존재의 문제를 사색했고 그 사색의 결과를 저술로 남기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김시습이 저술을 많이 남긴 것 또한 원효대사를 흠모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시습은 원효대사가 승과 속을 넘나든 '불기'(不羈, 구속되지 않음)의 삶을 살았다는 것과 그와 더불어 수많은 불교 저술을 남겼다는 사실에 주목했단다. 또 실제로 그는 49세 때 탁발승이 되어 관동으로 향하면서도 '수기'(修己)와 '궁리'(窮理)를 아울러 행하는 문제를 고민하였다고 한다.
매월당 김시습. 그는 과연 누구였는가. 그는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한 역사의 희생양인가. 그래서 작가 현기영의 '변방에 우짖는 새'처럼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제 홀로 우짖을 수밖에 없었는가. 아니면, 그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기 위해 잠시 다녀간 내세불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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