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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 표지 ⓒ 책 만드는 공장^^^ | ||
"모든 그림의 밑바탕이 흰색인 것처럼,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든지 자영업으로 여러 식솔들을 거느렸다든지 그 시절이 그립고 위세가 당당하였지만, 장돌뱅이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는 마음부터 빈 여백으로 새 출발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세계에서 또다시 퇴출되기 십상이었다"
1981년 <시조문학>을 통해서 시조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배민호(46)씨가 장돌뱅이 실화소설이란 부제가 붙은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 책 만드는 공장> 상, 하 2권을 펴냈다. 이 소설은 인쇄사업을 하던 저자가 IMF로 인해 회사가 부도난 뒤, 지난 6년간 전국의 장터를 떠돌며 겪은 이야기를 다룬 자전소설이다.
하지만 언뜻 읽으면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와 장돌뱅이는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장돌뱅이와 거상은 같은 장터를 떠돌지만 제각기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돌뱅이는 거상들이 난전을 펼쳐놓은 그런 장터에 빌붙어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좀 더 꼼꼼하게 읽어보면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 때 드는 그런 의문, 즉 지금껏 우리가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장돌뱅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장돌뱅이는 한때 사업실패로 인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에서 잠시 밀려난, 그런 현대판 장돌뱅이기 때문이다.
"장바닥은 동전 양면과 같습니다. 장바닥 사람들 중 절반은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사회로 복귀한 이들도 있지만, 절반은 그냥 그렇게 눌러 살고 있으니까요. 저 또한 아직까지도 6년 전 부도의 늪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상태지요.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장바닥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한번 사업에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업 실패 뒤에 따르는 그 엄청난 고통과 눈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가족들이 누울 단 한 평의 집도 절도 없는 그런 상태에서도 끝까지 따라붙는 그 지독한 빚독촉을, 또 그로 인한 가족 간의 불신과 갈등을, 가장으로서의 무능력함과 삶에 대한 회의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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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배민호 ⓒ 책 만드는 공장^^^ | ||
사업 실패 후 6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돌뱅이가 되어 전국의 중소기업상품박람회장, 지방의 축제 행사장, 야시장 등을 떠돌아 다니는 배민호. 그러나 아직까지도 부도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작가의 말을 들으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진다.
몇 년생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이는 일아서 뭐하겠느냐, 는 장돌뱅이 배민호. 그는 한때 서울에서 3~4개나 되는 인쇄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던, 잘 나가는 중소기업체 사장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IMF란 괴물은 그와 그들 가족들에게조차도 예외가 없었단다.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에는 지금은 비록 거친 장돌뱅이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대박을 꿈꾸는 현대판 장돌뱅이들의 끈질기고도 소박한 삶이 배어있다. 이 소설 곳곳에서는 금방이라도 장돌뱅이들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빗줄기 같은 눈물이 주루룩 쏟아질 것만 같다. 하지만 난전 한곳에서는 배를 째는 웃음소리도 가끔 들린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실패, 인생실패를 헤쳐나가기 위해 장터를 떠돌며,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우리 주변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사연도 갖가지다. 작가처럼 부정수표법 위반으로 기소중지자가 되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사람들에서부터 자신이 지은 농산물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나온 농사꾼, 생계를 위해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유명가수의 부인 등...
이 소설을 펼치면 읽는 이 또한 자신도 모르게 왁자지껄한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가 된다. 하지만 장돌뱅이라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땅이 꺼지는 한숨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다. 장돌뱅이들은 비록 동쪽에 가서 식사를 하고, 서쪽에 가서 잠을 자는, 그야말로 전국의 장터가 안방일지라도 대박을 향한 그들의 야무진 꿈은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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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배민호 ⓒ 책 만드는 공장^^^ | ||
하지만 장돌뱅이들의 그 야무진 꿈처럼 그들이 떠돌아 다니는 장터는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난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도 의리와 모사, 배반과 우정, 사랑과 시기가 엄연히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기 때문이다.
"대박을 찾아 떠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대박이 '눈 먼 돈'을 찾아다니는 것이라면 그것은 대박이 아니다. 말 그대로 뜬구름을 잡으려는 허망한 꿈일 뿐"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는 대박을 찾아 장돌뱅이가 간다는 그 말이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가 모두 대박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은 극소수다. 하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 비록 장돌뱅이일망정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질갱이처럼 끈질기게 살아간다는 데 있다.
이 전 저 전을 다 버리고 아저씨 전으로 돌아와
오늘 장에 재수는 천 냥 만 냥 재수요
이리 천 냥 남으시고 저리 천 냥 남으시고
억 십만 냥 남으시고 유리 같은 인생들 돈 한푼만 주시오
한 일 자 들고 봐 이 저리 성성 해성성 밤중대전이 완연하다
두 이 자 들고 봐 두 별이 자두치
관전육방 나려올 제 편지나 한 장 전해 주
석 삼 자 들고 봐 삼월이 신령 두 신령 신령 중에는 어른이라
넉 사 자 들고 봐 사시장천에 바쁜 길 점심참이 여기로다
다섯 오 자 들고 봐 오관찰창 관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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