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의 가족들은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하게 살수가 있었다. 그러나 광호는 예외였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자꾸만 비뚤어져 갔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어머니는 형을 사랑하고 무조건 용서했지만 그것이 형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려고 했다.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려고 했다. 하지만 형은 점점 나쁜 짓만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형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는 날이 많았다.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해 있는 것처럼 전부를 주고 살았지만 형은 그러한 것을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 역시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바르게 교육시키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인간의 올바른 양육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광호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양육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나쁜 쪽으로만 갔다. 아버지는 그것을 한탄하셨다. 마지막 죽음으로 가는 마당에서도 광호를 바르게 양육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광호는 아버지의 뜻을 마지막까지 거역했다.
아버지는 형에게 바르게 살라는 말을 남기고 싶었지만 그것조차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성호는 인생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을 아귀다툼하며 사는 것이 슬펐다.
많은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허둥대고 살다가 죽는다.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도 잊고 산다. 자기만이 죽지 않을 것으로 믿으며 남에게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고 산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형제들이 그러한 면을 보일 때가 제일 괴롭고 힘이 들었다. 가족관계는 한 울타리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산다. 그러한 공동체 내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고 살수는 없다.
아버지가 죽어 가는 마당에 자식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해관계로 그런 일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성호는 그것을 안타까워했다. 아버지가 죽음으로 가고 있는 마당에서조차 형을 걱정했지만 형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성호는 그것이 화가 나서 장례식에 나타난 다른 가족들에게 화풀이 같은 어깃장을 놓았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다가 죽을 것이냐가 문제다. 예고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목사님은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이제 죽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물었다. 언제나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너무 혼탁하며 부패하고 더러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식에 왔던 많은 사람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성호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이별하는 것이다. 세상을 이별하면서 준비 없이 비참하게 죽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며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아파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몇 달을 사는 동안이 인생을 사는 전부처럼 보였다.
가족들조차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가 빨리 세상을 떠나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한 것이 돌아가신 후에는 죄책감이 되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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