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여성은 거세된 존재"
스크롤 이동 상태바
프로이트, "여성은 거세된 존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물학적 성-사회학적 성 논란 현재까지도 논쟁 거듭

사람은 태어나면서 양성 중에 하나의 성을 부여받고 자연에 뿌리를 내린다.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성에 대해 루소는 '수컷은 어떤 순간에만 수컷인 반면에 암컷은 평생, 적어도 젊었을 동안 내내 암컷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양성의 본능적, 신체적 차이를 만한 것으로,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성간에 어떤 논점을 가지고 서로간에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반대하여도 그것은 불필요한 일이 된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의식, 의지, 정신, 초월 같은 것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를 정립하려고 한다면, 여성은 분해, 비독립적, 무의식적, 수동적, 육체적 차이 같은 것으로 자기를 정립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이러한 점을 극복하는 길은 양성간에 고집을 꺾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실을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하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성별에 덧붙여진 사회적 성차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삼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하였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의해서 촉발된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학적 성(gender)의 논란은 현재까지도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남성들은 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근육질이나 야성적인 남성관을 갈망한다. 하지만 부드럽고 섬세하며 다정다감한 사람이 왜 진정한 남성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약함이 남성의 결함이 아니고 모든 인간의 특성이며, 여성적이라는 말 자체가 편력이라는 걸을 알아야 한다. 남성 공포증이나 여성 혐오증은 편견이며 협력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서부터 양성 평등은 이루어진다.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다는 견해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여성은 나약함, 비일관성, 지배력 결여, 남성보다 약한 저항력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적 조건에 매달리지 않고 남성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 성공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발전은 남성의 발전에 기인한 것으로서, 여성은 필연적으로 결핍된 것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여성이 거세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여성이 된다고 했다. 여성은 남성의 희망과 공포가 투사되어 있는 표면으로서 남성에게 기여한다. 남성은 여성을 자연과 연결시켜 주는 중계자로 보았다. 이때에 여성은 내재성으로 조용히 자기 속에 쉬고 있는 잠재적 존재이고, 현재와 실재 속에서 나타나는 육체로써 규정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결국 양성의 차이를 음과 양의 신체적 차이로 한정지어서 보는 견해다.

여성 편력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들 특유의 의존성으로부터 탈피해야 하고, 결핍으로 정의되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남성들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서부터 양성간의 불평등이 시작된다.

'여자가 되라'는 훈계를 듣는 경우보다는 '남자가 되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네가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는 말은 은연중에 남자가 씩씩하고 무엇인지 여성보다 다른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또한 남자다운 남자를 지칭하기 위해 '진짜 남자'라는 말이 우리 일상 언어에 쉽게 등장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강하고, 더 명석하며, 더 용감하다. 책임감이 더 있고 더 창조적이며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남성우월주의로 빠진다.

'남자가 되는 것은 권력을 쥐고 있는 위치에 쉽게 들어앉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별로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말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남성들은 무모한 일을 한다. 하지만 여성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말 모두가 편력이다.

남성의 생식기는 외부에 있고, 여성의 생식기는 내부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양성 모두 같은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차이를 들면 음낭이 밖으로 쳐져 있다는 것과 안으로 향해 있다는 차이가 있다. 남성이 된다거나 여성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지위, 문화적 역할에 의한 것일 뿐이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이고 대치되는 존재는 더욱 아니다.

여성이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남성의 완벽한 척도에 의해서 평가를 받지만, 신체적 특징으로 남성과는 다른 반대의 성을 가졌기 때문에 각자가 서로에 대해서 완벽할 할 수가 없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양성 평등은 이루어진다.

남성의 가장 명확한 특징의 하나는 어떤 것이든지 소유하고 탈취하며 침투해서,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뚜렷이 하려고 한다. 반면에 여성은 유순하고 수동적이며 굴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인 면이나 정체성을 남성이 지배하려고 하는 테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의 우상적인 모델은 지금까지도 변하고 있지 않다. 남성은 여성적인 것은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진정한 남성은 세도가 있는 저명인사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강해야 하고 나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양성간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남성우월주의나 여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편력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