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근대 사상가들이 동서양 사회를 비교하여 발견한 확연한 차이점의 하나가 개성의 유무였다. 동양의 전제정이 가져온 폐해로서 동양의 정체는 한편으로 유럽과 달리 획일성이었다. 반면 유럽인들의 성격과 교양에 놀랄만한 다양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해부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한편으로 동양성의 해부를 문헌으로 남긴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동양인은 (서양에 비해) 덜 호전적이고 수동적이며 그 이유를 아열대성 기후와 비자주적 사회제도로 들었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사회의 영원한 대칭이며 타자(the other)는 한편으로 광폭했으나 비교양적이었던 것이다.
'자유론'의 저자 J. S. 밀은 각 개인의 개성이 다양하게 발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문제가 되는 경우, '그가 무엇을 무엇을 이룰수 있는가'라는 점 뿐 아니라 '그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한 점 역시 중요했다. 벤담과 달리 인간에게 행복을 기져다주는 행위 뿐만아니라 인간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함을 인식한 것이다.
그리스 철학사를 쓴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서양의 우위는 동양과 다른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으로 보았다. 즉, 서양은 관념론과 유물론,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성선설(지도자론)과 성악설(제도론) 등의 창조적 파괴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밀의 시대 19세기는 한편으로 유럽사회의 세속화와 대중사회화의 현장이었다. 정치적 개방화와 탈신분 사회화로 인간을 둘러싼 세계가 점차 동질화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밀은 여기에 일반적 흐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그의 자유론의 첫 구절이 독일의 교육자 훔볼트의 글 "인간이 가장 풍요롭게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것이야 말로 절대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로 시작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밀은 한편으로 프랑스 백과사전파와 연관된다. 실지로 밀은 프랑스에 머물면서 이들과 교유하며 자연스럽게 일치되어 갔던 것이다. 디드로, 콩도르세, 루소 등 백과전서파에게 구 체제(앙시엥 레짐)의 순응은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지성들은 진정한 교육은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을 새로운 지각을 키우는 것으로 인식하고 확산시켰다.
밀과 백과전서파를 뒤이은 학자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였다.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서구세계의 기술합리성에 맹종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했었다. 기술합리성이 과학의 종결자가 아니라 이를 맹종하는 사회적 태도가 경악스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연전 일본의 지성이라는 다치바나는 '동경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시험 성적에 몰입하고 교수님들에 복종하는 시류를 비판한 바 있다. 최근엔 일본의 차세대 지성인으로 떠오른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세계 고전을 통한 지성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암기식 교육을 맹종하는 한국 교육에선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 상아탑이란 본질적으로 사회의 질정을 위해 의도적 차단(고립)인데 한국의 대학들은 너무 사회화된 것 때문으로 보인다. 소명의식과 개성이 사라진 절망의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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