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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회 스웨덴 월드컵(1958년) ⓒ 뉴스타운 | ||
1958년 6회 스웨덴 월드컵, 국내사정으로 예선 불참
처녀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서 헝가리와 터키에 가슴 아픈 2연패를 기록한 이후 한국 축구는 오랫동안 월드컵 본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찾아온 제6회 월드컵은 스웨덴에서 열렸다. 우리나라가 국내 사정으로 예선전에 불참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대만,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키프러스, 수단, 시리아 등이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편성돼 예선을 치렀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월드컵 지역 예선 참가 희망국이 많지 않아 아프리카나 유럽 지역 국가들이 함께 편성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었다.
2차 예선에 진출한 인도네시아, 이집트, 수단의 기권으로 이스라엘이 아시아 대표로 최종 예선전까지 진출해 유럽의 웨일즈와 경기를 치렀으나 두 차례 경기 모두 0-2로 패해 아시아 지역에서는 단 한 팀도 스웨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현재 유럽축구연맹 소속으로 월드컵 지역 예선에 참여하고 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 예선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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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회 칠레 월드컵(1962년) ⓒ 뉴스타운 | ||
1962년 7회 칠레 월드컵, 8년만의 본선진출 꿈 아쉽게 날려
60년대에 들어 국제축구연맹(FIFA)은 아시아 지역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동구의 강호를 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시켜 지역예선을 치르게 해 월드컵 본선의 길은 더욱 더 험난해졌다.
칠레 월드컵은 본선 진출 16개국을 확정하기 위해 지역 예선전을 유럽국가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묶어 10개 그룹으로 편성하고 남미지역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들 중 각 그룹 1위 팀과 북중미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1개국, 그리고 개최국 칠레와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 이렇게 해서 모두 16개국이 본선에 올랐다.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 그리고 일본과 함께 10그룹에 편성되어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 했다. 일본과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펼쳐 이겨야만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 전 승자와 대결하는 최종 예선전에 나갈 수 있게 되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일본과 2차례 치른 동부아시아지역 1차 예선전에서 2-1, 2-0으로 두 경기 모두 통쾌하게 승리해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전에서 유고슬라비아가 1차전 2-1 승, 2차전 1-1 무승부를 통해 1승1무로 최종예선전 진출)와 겨루는 최종 예선전 진출권을 따냈다.
유고슬라비아만 꺾으면 제5회 스위스 월드컵에 이어 8년 만에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한국 축구. 하지만 유고는 한국 축구가 넘어서기에는 높은 벽이었다.
1961년 10월 8일 4만여 관중이 모인 가운데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국립경기장에서 월드컵 최종 예선 1차전(원정경기) 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전반 42분까지 유고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선전했으나, 전반 종료 3분을 남기고 선취골을 내줘 0-1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쳤다.
한국 팀은 후반전 들어서도 열심히 뛰었으나 유고에 계속 실점을 허용, 결국 1-5로 크게 패해 11월 16일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질 홈경기에서 크게 이겨야만 본선 진출이 가능한 처지에 몰렸다.
1차전에 대패했기 때문에 2차전(홈경기)에서 한국은 공격 일변도로 강하게 유고를 밀어붙였으나 오히려 유고의 날카로운 역습 공격에 2실점해 0-2로 뒤졌다.
하지만 공세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인 한국은 후반 18분 유판순 선수가 헤딩슛을 성공시켜 1-2로 따라붙었다. 효창운동장을 찾은 축구팬들은 열광했으나 후반 종료 2분을 남기고 다시 1점을 유고에 실점해 결국 1-3으로 2차전도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1, 2차전 모두 유고슬라비아에 대패한 한국은 칠레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내주면서 다음 월드컵을 기약해야만 했다. 유럽 축구와의 실력 차이를 절감하게 한 최종예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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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1966년) ⓒ 뉴스타운 | ||
1966년 8회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전 출전 포기한 한국
칠레 월드컵에 이어 4년 후 다시 찾아온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전 출전 문제를 놓고 대한축구협회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한번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북한 축구와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부담과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참패(체코, 브라질, 이집트에 연속 패함)로 인한 국제대회 자신감 결여가 문제였다.
한국은 예선전에 출전하기 위하여 FIFA에 출전신청을 했으나 도쿄 올림픽에서의 충격적인 패배와 맞물려 침체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예선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예선 대진이 결정된 뒤여서 FIFA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벌금 5천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지역예선에 참가한 북한 축구는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함과 동시에 본선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킨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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