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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 월드컵 ⓒ 뉴스타운 | ||
일제시대, 압박받던 우리 민족의 울분을 달래주던 축구는 광복 후에는 한민족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며 온 나라를 하나로 이어주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아 왔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간 힘 겨루기 성격을 갖고 있는 월드컵엔 한국 축구의 염원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의 축구사는 곧 월드컵을 향한 도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몇 회 연재로 우리나라의 월드컵 도전사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필자 주>
월드컵에 도전하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은 우리 축구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극동지역 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꺾은 한국이 아시아 대표로 첫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당시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일본과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벌여 아시아 지역에 배정된 1장의 본선 티켓의 주인을 가릴 예정이었으나 반일 감정을 지닌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 선수들이 한국으로 입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2경기 모두 일본에서 어웨이 경기로 치르도록 했다.
1954년 3월 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한국은 긴장한 탓인지 초반에 0대1로 뒤졌으나 이후 총반격을 개시해 5대1로 대역전승을 거둔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이어서 벌어진 2차전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선전해 2대2 무승부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은 1승1무로 스위스행 티켓을 따게 됐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의 본선 대결 상대는 헝가리, 터키, 서독 이렇게 3팀이었다. 본선 대회 출전을 위해 54년 6월 9일 서울역을 출발한 선수단은 부산까지는 열차로, 부산에서 일본까지는 배를 타고 간 후 11명은 프랑스 항공기를 타고, 나머지 11명은 미공군기를 탄 다음 서울을 출발한 지 일주일 만인 6월 16일(스위스 월드컵 개막일 저녁) 밤에 겨우 대회 장소인 스위스에 도착했다.
쉴 틈도 없이 바로 다음날 경기를 치른 한국의 본선 첫 상대는 우승 후보 헝가리! 헝가리는 1950년대 초반 32전 무패의 기록을 보유한 천하무적의 팀이었다. 게다가 64시간의 장거리 비행 끝에 도착하자마자 시합에 나선 한국 선수들은 피로한 모습이 역력했다.
천하무적 헝가리를 맞아 죽을 힘을 다해 뛴 한국 선수들은 후반에 들어서는 기진맥진, 거의 대부분 선수가 발에 쥐가 나 쓰러졌고 마지막 5분 간엔 연달아 세 골이나 허용했다. 결과는 9대0. 한국의 대패였다.
패인은 무엇보다도 피로 때문이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도 어려운 판에 피로한 몸으로 출전한 한국이 질 것은 뻔한 일이었고, 강호 서독도 헝가리에게 8점이나 빼앗긴 것과 비교하면 9대0이라는 점수차는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헝가리의 구스타프 감독 또한 '한국팀은 사자처럼 용감했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1차전의 대패로 사기가 저하된 한국은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7대0으로 패배, 2전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탈락하고 말았다.(마지막 서독과의 경기는 서독의 진출이 확정되고 한국의 탈락이 확정됨에 따라 치러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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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회 스위스 월드컵 기록 ⓒ 대한축구협회 | ||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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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력도 멋지고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기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