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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방 한구석에 마련된 파우더룸마치 신부 화장이나 무대 화장이라도 하는 곳 처럼 거창하다, 주부에게 과연 이런 공간이 필요한가 ⓒ 서윤영^^^ | ||
그 후로 나는 이런 말을 꽤 여러 번 들었다. 주문한 책상을 우리 집에 배달하러 온 택배회사 직원으로부터, 구입해 간 책상을 사용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묻는 친절한 판매회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책상은 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지, 아줌마가 자기 자신이 쓸 책상을 구입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는 우리 사회 주거문화의 한 단면이 드러난 예라 하겠다.
내 석사논문의 주제는 주거 건축의 근대화였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전통 주거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대적인 주거로 변화하였는가를 조사한 것인데, 단언해서 말하자면 한국 주거문화의 근대화는 곧 여성 해방의 역사였다. 보일러, 전기, 수도 등의 모든 설비는 여성의 가사 노동을 대폭 감소시켜 주었고, 허리를 굽힌 채 일해야 했던 어둡고 축축하던 전통 부엌이 최신식 가전 제품이 갖추어진 아파트 주방으로 변한 것이다. 여성의 전반적인 지위 향상과 함께 가정 내 주부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아파트 마케팅의 주된 공략 대상은 주부가 되었고 아파트 설계 또한 주부의 눈 높이에서 하게 되었다.
요즘 아파트 설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주부의 공간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안방에서 잠을 자고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 외에, 무엇인가 주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만한 공간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그래 중대형 아파트에서는 안방에 파우더 룸과 드레스 룸을 따로 설치하고 있다. 또한 여성 잡지나 인테리어 잡지에서는 주방 한구석에 작은 책상을 놓아 주부 전용의 공간을 만들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파우더 룸은 화장대가 붙박이로 설치된 공간이고, 드레스 룸은 붙박이 장이 설치되어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이런 공간을 설계할 때마다, 그리고 이런 공간이 설치된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를 둘러볼 때마다 참으로 서글퍼진다. 주부의 공간은 기껏 파우더 룸과 드레스 룸인가.
파우더 룸과 드레스 룸을 따로 설치한다는 것은, 주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책을 읽고 일기와 가계부를 쓸 공간을 마련되지 않아도 좋지만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공간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중요한 일은 지적 활동이 아니라 몸 치장이라는 잘못된 편견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혼수용 가구 품목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옷장과 화장대이지, 신부의 책상이 포함되는 예는 보지 못했다.
요사이 여성 잡지나 인테리어 잡지에서는 주부 전용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이 소개되곤 한다.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 대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라는 모토 아래 제안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주방 한구석에 주부의 책상을 놓는 것이다. 주부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에는 공감하겠으나, 그 것이 하필 주방 한 구석에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씁쓸하다.
고대 그리스의 주택에서 현대식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모든 주택에서 노동의 공간 옆에 마련된 공간은 언제나 하인의 방이기 때문이다. 마구간 옆에는 그 말들을 지키는 마부의 방이 있으며, 부엌 옆에 있는 방은 언제나 부엌 일을 책임지는 하녀의 방이다. 주방은 대표적인 가사 노동의 공간이다. 그러한 주방 옆에 주부의 책상이 놓여 있다는 것은 주부는 주방을 책임지는 하녀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부엌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주부이기에 그녀의 공간 또한 부엌 옆에 있어서 언제라도 부엌 일을 돌볼 수 있게 하라는 뜻이다.
오늘날 주부의 공간이 안방 한 구석에 마련된 파우더 룸과 드레스 룸 기껏해야 주방 한구석에 마련된 책상이라는 것은, 주부는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소비의 주체이며, 주방 일을 책임지는 하녀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값비싼 가전 제품이 잔뜩 갖추어진 주방에서 ‘여자라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느 가전제품 광고 방송을 보면 이것이 더욱 확실해 진다. 자신의 노동을 대신해 줄 기계들이 가득 들어차 있으니, 그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하녀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최첨단 설비를 자랑하는 최고급 아파트가 있다 해도, 주부의 공간이 고급 가전 제품이 갖추어진 주방과 화려한 드레스 룸, 파우더 룸이라면, 다시 말해 주부를 소비 문화의 주체로 인식시킨다면 아직도 주거의 근대화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 곳에 사는 주부는 기계에게 자신의 노동을 할당해 주고 있는, 보다 우아해진 하녀일 뿐이다.
제안을 하고 싶다. 드레스 룸을 없애고 차라리 아내의 서재를 꾸미자고. 여성은 결코 겉치장에만 신경을 쓰는 소비의 주체가 아니다. 집안에 있는 주부도 얼마든지 지적 활동을 할 수 있으며, 화장을 하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대가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부라면, 화장대 대신 책상을 준비하는 것은 어떠한가. 화장을 하는 아내, 보다는 ‘책을 읽는 아내’가 더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드레스 룸 보다는 ‘아내의 서재’가 훨씬 더 근사하지 않은가.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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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대한 해방인지 궁금하네요.
해방이라면 구속, 속박, 박탈, 저지, 감금등의 반의 되는 말로 씌었을 텐데
역사는 투쟁의 논리만으로 풀릴수 있는건 아닐텐데요.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