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라는 이름은 광수네 할아버지가 지으신 것이다. 광수아빠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십사고 청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광수는 내 이름과 비슷한 멋있고 기품 있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광호는 광수네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첫 아이를 친가에서 지었으니, 둘째 아이의 이름은 외가에서 짓는 것이 옳다는 게 역시 광수아빠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항상 부끄러운 듯이 입가에 미소만 띄고 웃는 광수아빠의 가슴속에 그런 깊은 생각들이 들어있었던 것을 알고는 나는 탄성을 지을 정도로 놀랐다.
나도 광수 네와 마찬가지로 아들만 둘이다. 나도 아이들의 이름을 아버님께 부탁드려서 지었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배가 서서히 불러 올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별별 이름들이 오가곤 했다. 하지만 산달이 다가 올 즈음이 되어서야, 아이의 이름은 아버님께 부탁드리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큰아이인 ‘정진’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바를 정’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괜히 “정진아” “정진아” 불러보곤 하였다. 아이가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의 뜻대로, 밝고 곧은 성품의 아이로 커주는 것 같아서 고맙기만 하다.
둘째 아이의 이름도 아버지께 부탁드렸었다. 아버님은 아이의 이름을 당신께 부탁을 드리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신 모양이었다. 둘째 아이의 이름은 첫째인 정진이보다 한참을 더 기다려서야 지어졌다. 그래서 그때까지 둘째아이는 이름이 없이 “둘째야!”라고 부르면서 지내야 했다.
둘째 ‘길진’이란 이름은 오랜 산고 끝에 나온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자꾸만 촌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사내의 이름은 멋있어야 좋은데 어쩐지 부르기에 어색하고, 발음도 불편했다. 이름의 뜻도 아무리 생각해도 좀 구식인 듯했다. 뜻은 좋았다. ‘길할 길.’ 좋은 일이 많고 잘 살란 뜻이다. 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그만큼 좋은 뜻도 없을 것이다.
바르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잘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사람을 표현하는 이름으로 삼기에는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미쳐 못다 간 길을 내 아이들이 대신 멋있게 걸어주기를 바라는 내 기대에, 어쩐지 조금 못 미치는 이름인 것 같기도 했다.
“길진이” “길진이” 그렇게 어색한 느낌으로 몇 년을 부르다 보니 이젠 이름이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의 그 어색한 느낌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오히려 좀 고상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길하다’는 뜻도 꼭 복을 바라는 미신적인 뜻으로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여겨졌다. 정진이와 길진이가 짝을 이루어 올바르게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게만 열려준다면, 그보다 더 이상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긴 사설을 푸는 것을 보니 이름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보다. 하긴 이름에 따른 고민이 또 한번 있었다. 내 직장의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 아내는 ‘소망’이란 이름을 그렇게 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뜻을 따라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직장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 아내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는 했는데,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내가 소망이란 글자를 이마에 붙이고 다니려니 좀 부끄러웠다. 그래서 메일 주소에서는 somang에서 'o' 자를 빼고 smang 로 아이디를 만들었다.
예전의 인터넷 동호회에선 모두가 아이디로만 이름을 올리곤 했었다. 그래서 모두들 나를 ‘스망님’이라고들 불렀다. 어감이 왠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훨씬 낫지 만약 사람들이 나를 ‘소망님’이라고 부른다면 그 이름과는 한참이나 동이 떨어진 삶을 사는 나는 닭살이 돋을 일이 아니겠는가. 아이디를 그렇게 정한 것은 나의 기지가 순간적으로 반짝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름은 한 사람을 규정짓는 역할을 한다.
나는 내 아들들의 이름을 아버지께 부탁을 드린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꼭 좋은 이름을 얻어서 만은 아니다. 그렇게 아버님의 뜻을 통해서 내 아들이 불림으로써, 우리가족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살아도 내 아들은 내 아버지가 이름을 지은 그의 손자가 되는 것이다. 꼭 그것이 아니라도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가족으로 묶어 놓겠지만, 이름을 아버지께 부탁드리고 또 사양 끝에 이름을 지어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족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둘째 광호의 이름을 외가에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두 아이의 이름을 다 친가에만 부탁했던 것이다. 역시 나는 가부장적인 고지식한 남편인가 보다. 세상은 자꾸만 변해 가는데 나는 변화를 허급지급 세상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지식한 면이 그대로 남은 내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내 속의 어려움과 하나씩 싸워가면서 나는 조금씩 더 나은 가장이 되어갈 것이다.
아버님이 성실한 삶을 사신 후 조용히 연세가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또 내 아들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착하게 자라가는 것을 바라본다. 나도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오늘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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