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잠든 한국인, 77년 지나도 반환 안 된 유해 275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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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잠든 한국인, 77년 지나도 반환 안 된 유해 275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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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24일 우키시마호 폭발 침몰
- 77년 지난 2022년 현재 남아있는 유해 275구, 한국 귀환 못하고 있어
도쿄의 매구로구(東京都目黒区) 유텐지(祐天寺) / 사진 : 일본 도쿄신문 해당 기사 사진 캡처
77년이 지나도 반환이 안 된 한국인 275구 유해가 남아 있는 일본 도쿄의 매구로구(東京都目黒区) 유텐지(祐天寺) / 사진 : 일본 도쿄신문 해당 기사 사진 캡처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824일 한반도로 귀향하려던 강제노동자 등 수천 면을 태운 수송선 우키시마(浮島丸)호가 교토부 마이즈루(京都府舞鶴) 앞바다에서 폭발하면서 침몰했다.

그곳에서 숨진 한반도 출신자 가운데 275구의 유해가 도쿄의 매구로구(東京都目黒区) 유텐지(祐天寺)라는 사찰에 남아 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21일 보도했다. 신문은 종전직후인 1945년으로부터 77년이 지난 현재 한국 유족이 원하는 유해 반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우키시마호 사건(浮島丸事件)은 한반도에서 (강제) 징용 등으로 동원되어 귀환하려는 한국인 등 수천 명을 태우고 아오모리현(青森県) 오오미나토항(大湊港)에서 현재의 한국 부산으로 향하던 일본 해군 소속의 4,730t 규모의 수송선 우키시마(浮島丸)1945824일 교토부 마이즈루(京都府舞鶴) 앞바다에서 폭발하면서 침몰했던 사건으로 조선인(한국인) 524명과 선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도쿄신문은 해설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한국 남서부 전주 전주에 사는 전승열(80)씨는 2006년 유텐지 사찰을 방문해,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상자에 담긴 유골을 만났다. 안주머니를 열어 딱딱한 뼈의 감촉도 확인했다. 일본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고향에 묻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북받쳤다.

전주에서 주조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전시 중에 동원되어 아오모리현 오오미나토의 해군 시설에서 일했다. 종전으로 귀향하려고 우키시마에 탔다가 사건에 휘말렸다.

그러나 전 씨가 대면한 유골은 아버지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우키시마호의 침몰 이후 바닷 속에서 일부 시신을 인양해 한꺼번에 화장했기 때문이다. 유골은 누구의 것인지 특정되지 않은 채 상자에 나눠졌다. 폭발 원인에 대해서도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한 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생존자들의 증언 등으로 미뤄 일본 측이 고의로 폭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에 한국 유족들은 오랫동안 일본 정부의 재조사나 사과가 없으면 개별 유골 반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령화된 유족에게 감정의 변화가 보인다.

* 유족들은 일본의 사과를 원했다.

전 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아버지는 전시 중 한 살쯤 되던 전 씨를 안은 아내에게 잘 키워 달라고 말해 일본인 경찰관에게 끌려갔다. 일본 때문에 일하다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씨 등 유족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를 원했다, 전씨 등 유족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사죄나 손해배상 등을 요구, 교토 지방 법원에 제소했다. 1심은 일본 정부에 배상을 명령했지만, 오사카 고등법원은 원고의 요구를 모두 물리쳤고, 대법원도 고등법원 판결 그대로 확정했다.

도쿄신문은 고등 법원 판결 당시의 신문은 전씨가 회견에서 일본에의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는 모습을 전했으나, 전 씨는 지금으로선 그때 분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키시마 사건의 유족 단체 대표인 한영용(78)(경남 거창)유족들은 고령이 됐다. 부모에게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죽기 전에 유골을 조국으로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측이 524명으로 지목한 조선인 사망자 수는 한국에서 수천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텐지 사찰에 있는 유골함에 부모 이름이 없는 유족도 있다. 한 씨는 마이즈루(舞鶴) 앞바다 해저에 남아 있을 시신을 찾아 DNA 감정으로 유골의 신원을 밝혀냈으면 하는 마음이 지금도 있다. 그러나 우선 반환을 우선시하겠다는 생각으로 쏠린다.

* 한일 관계가 냉각된 10

일본 정부는 국내에서 수집한 한반도 출신 군인 군속들의 유골을 유텐지 사찰에 위탁해 보관해 왔다. 2008~2010년에는 한일 정부 간 협의 끝에 유텐지에 있던 423구의 유해가 4차례에 걸쳐 한국에 반환됐다. 전후 77년인 지금도 남는 것은 일본과 국교가 없는 현재의 북한 출신 425명분과 우키시마호 관계의 유골뿐이다.

한일관계가 경색된 지난 10년간 반환 협의는 멈춰 있다. 유족들의 조바심은 대단하다. 지난해 4월에는 청와대와 주한 일본대사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원을 국내에 정비한 뒤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전 씨는 함께 유골을 맞이하는 자리가 있다면, 유족들은 부모의 유골 조각이라도 들어 있다는 마음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의의를 호소했다. 역시 한 씨도 한일 사이가 나빠도 두 정부는 유해 문제에 인도적 차원에서 대응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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