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성의 종말
한국 지성의 종말
  • 하봉규 논설위원(부경대 교수)
  • 승인 2021.01.0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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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중 하나는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대학가의 풍경이다. 1990년초 유학한 독일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되었고 이듬해인 여름  월드컵마저 우승하여 독일의 세기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통일독일은 거대한 수렁이었다. 불과 분단 45년이었고 동독의 인구는 서독의 1/4(서독 6,600만, 동독 1,700만)에 불과했으나 통일의 짐은 너무나 컸다. 독일은 통일비용으로 잃어버린 30년이 흘러간 것이다. 

반면 한국은 민주화와 미증유의 경제호황으로 서울은 사치품이 넘쳐나는 국제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은 천박해 보였다. 무엇보다 대학가는 대자보가 널려있는 지저분한 모습이었고 서점에서 원서(영서)와 독서하는 모임이 사라졌다. 물론 지적재산권이 문제라고 했지만 지적 국제화는 심각한 손상으로 보였다. 

어린 시절 독서를 좋아해 수업과 과외공부 보다 도서관에서 각종 책들에 빠졌던 시절이 준 아픔  즉 한국제도권 교육의 폐해를 겪었었다. 결국  대학진학에서 어려움으로 주경야독의 기나긴 터널을 겪어야 했다. 어쩌면 필자에게 대학원진학은  어린 시절 독서가로의  복귀였다. 

다행하게도 대학도서관은 오아시스였다. 전면 개가식에  쾌적한 시설은 가난한 학생에게 대학원수업  뿐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이란 소위 인문학을 병행케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학원은 '초원의 빛' 처럼 짧게 끝났다. 

대학원시절은  짧게 끝나고 유학을 선택했었다. 가난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학비가 없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다는 독일이 대안이었다. 

준비가 전혀 안된 독일유학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대학이 요구하는 독일어 수업은 힘들었고 참관한 대학수업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국회연구장학생으로 자존심은 분발케 하였다. 

다행하게도 독일유학 2년차가 되니 글을 쓰게 되었다. 경상도식 독일어 발음으로 경멸을 받았지만 문장을 보고 어학원장님과 학생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대학원)에서 부터 시작된 박사논문준비는 계속되고 있었다. 마침내 지도교수님을 만나 박사과정으로 등록할 수 있었고 이후 성공(?)가도를 달렸다. 

귀국후 강사를 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정치)기획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한국지도자, 엘리트의 천박함을 알게되었다. 고졸출신 미국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유명한 명언 "모든 독서가가 지도자가 될 수는 없지만 지도자는 독서가여야 한다"는 한국에서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진정한 대학은 없었다.  대학은 시설이나 출세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한 진리의 전당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참전자를 모신 대학교회와 수많은 도서를 비치하는 아이보리 타워인 것이다. 

대학교수가된 필자는 한국지성의 한계를 도전코자 하였다. 무엇보다 정치학자로서  인접학문인 경제학과 경영학  뿐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 예술을 공부하고자 하였다. 공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10여권의 책을 쓰게되었으나 여전히 빈약했다. 그리고 어느새 세월은 흘러 은퇴를 앞두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생 시절 미국의 핵잠수함에는 장병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고, 시저(J. Caesar)는 참전중에도 독서하고 글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동서양 격차와 한국의 지적 빈곤을 새삼 떠올린다. 21세기 한국의 대학과 대학생들은  조선시대처럼 열린 지성을 포기하고 (진로)학습에 매달린 서당과 유생과  닮아있다. (교육)문제는 수많은 고전을  읽지 않고  졸업한다는 사실이다. 500년전 하멜의 기록이나 150년전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세계(역사)와 가치(진리) 개념이 없는 조선의 빈약한 교육(컨텐츠)은 자체가 절망을 대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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