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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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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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규 교수
하봉규 교수

한국은 1960-80년대에 걸쳐 남북대치, 지하자원의 결핍, 군사정부 등에도 산업화에 성공한 희귀한희미한 사례이다. 한국의 성공은 불과 30년만에 이루어진 압축성장이었고, 같은 기간 최빈국으로 전락한 북한과 대비되어 많은 주목을 받게된다.

문제는 소위 산업화 이후 찾아온 민주화였다. 국가경쟁력의 절정기에 찾아온 민주화는 소위 성장과 질서를 잠식하고 방황과 혼란으로 치닫게 된다. 민주화 10년만에 IMF를 맞게되었고  직후 정권교체는 치명적 국론분열과 반역으로 이어졌다. 민주화 초기 소위 '한국병'이란 총체적 국가지도력의 실종속에 단임제 대통령제는 정치의 무책임성과 무목표(적)성으로 나타났고 마침내 친북(친공)세력의 연이은 집권으로 귀결된 것이다.

30년이 경과한 시점을 맞이해 한국  민주주의는 일련의 "상실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첫째의 상실은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이었다.  근대세계의 대의로 정립된 자유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취약점을 보완한 것이다.  다시말해 자유민주주의는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이란 이종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무엇보다 충성에 대한 보상과 반역에 대한  처벌이 관건이 된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국가안보를 정치의 목적으로 정립시키고, 프랑스의 경우 퀴리부인의 뒤늦은 사인(부상병 치료를 위한 사망)  확인으로 판테온에 안치한 것이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분단기 독일의 경우엔 현직 수상이 참모의 간첩죄 확인과 함께 즉각적 사임으로 이어졌었다. 반면 한국은 전ㆍ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반역자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방종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둘째, 역사의 실종이다. 일찍이 역사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자유민주국가들은 하나 같이 국가정체성을 위해 역사를 중심한 정치교육에 중점을 두어왔다. 그러기에 남북전쟁 당시 독재자, 거짓말장이로 돌변한 링컨의 과오를 잊고 최고의 영웅으로 인식한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당시 시대상을 체계적으로 인식하여 현재와 미래의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반역사적인 것은  정치교육으로서 역사교육  뿐 아니라 세계화와 철학의 관점에서도 몰각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5천년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성공과 비전을 보여준 위대한 이승만ㆍ박정희대통령을 독재자로 폄하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문제는 두대통령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기적을 이룬 같은 세대들을 폄하하여 조지 오웰이  말한 "국민을 파괴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 역사를  폄하하는 것"이란 사실을 입증한 좋은 예이다.

셋째, 목표의 실종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과정과 절차를 의미하지 않고 경제적 성과(경제발전)과 상응한다. 간전기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를 사상 초유의 4선대통령을 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30년전 국제정치경제의 대변혁에서 신흥산업국인 한국에 놓인 과제는 기업가정신의 재발견, 장기적인 계획과 공약개발, 인적 자원의 개발과  운영, 보다 창의적인 교육,  보다 건설적인 정부ㅡ기업관계  등 6가지로 압축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1990년대 이후 민주화의 미명하에 단임제 정권들에게  선진화에 필요한 국가경제발전과 성장은 실종된 신화였던 것이다. 

넷째, 지성의 실종이다. 현대 탈산업사회는 지식의 시대이다. 이미 50년전 [제3의 물결]이 트렌드가 된 이후  지식사회의 명제는 세계화된 지 오래다. 무엇보다 불과 2-3년 사이클로 배증하는 지식팽창(폭발)의 시대에 세계각국은  베드사이드 스토리, 독서도시,  도서관국가로  나아갔다. 소위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동화에서 러시아소설까지"로  대체된 것이다. 

한국도 산업화 당시 독서국가로 나타났다. 독서대회와 독서신문  나아가 삼성문화문고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와 위대한 한글의 나라를 재생한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원칙과 방향이 결여된 집권편의주의와 사회주의정권은 포퓰리즘에 쉽게  빠져들었다.  독서와 지성은 이제 주류사회와 멀어진 한계적 마이너리티에 불과하다. 

다섯째, 국가지도력의 상실이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원래 지도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구한 것은  페르시아와의 전쟁 영웅 페리클레스였다. 영국의 민주주의를 구한 것도 처칠이었고, 미국의 경우도 독립전쟁에서 남북전쟁, 1-2차세계대전에서 보여준 대통령들의 지도력이었다. 

한국의 민주화가 반지도력인 것은 역설적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집착했으나 정작 절차가 실종되었으며 만나면 정치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나이와 출신에 집착하며  목적은 사라진 것이다. 실지 정치인의 주요과업은 타 정치인의 인식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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