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사우디 시대
저물어 가는 사우디 시대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20.09.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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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는 “미국과 트럼프 자신이 MBS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난관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MBS
알자지라는 “미국과 트럼프 자신이 MBS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난관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MBS

사우디의 권력은 쇠퇴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동안 적대관계였던 이스라엘조차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피살 사건 2주년이 다가오면서 사우디가 걸프만과 중동 지역에서 방향과 영향력을 상실하며 퇴로를 이어가고 있다고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이 21일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이슬람 협력기구(OIC, Organization of Islamic Cooperation)의 주도국으로서 지역과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우디 왕국은 꾸준한 쇠퇴의 길을 걸어 왔고 그 길로 가고 있다.

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장소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매장지의 본거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잘못된 정책은 수년간 축적된 종교적, 재정적 영향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게 알자자리의 지적이다.

사우디에 있어 지난 5년은 특히 고통스럽고 파괴적이었다. 다소 마키아벨리와 같은 왕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MBS, Mohammed Bin Salman)의 유망하고 야심찬 추진력으로 시작된 것이 곧 무모한 모험으로 바뀌었다.

그의 멘토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다른 마키아벨리적인 왕자인 모하메드 빈 자예드(MBZ, Mohammed Bin Zayed)에 의해 주로 지도된 MBS는 왕국을 땅바닥까지 달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 시시(Abdel Fattah el-Sisi),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처럼 리비아와 튀니지에 간섭하고 독재자와 전범을 지원하는 등 후배와 같은 두 나라가 호전적인 지역 강국으로 급부상하는 것 자체가 사우디의 쇠퇴를 증언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가 자초한 마비된 상황에서 아부다비(UAE)가 앞뒤 재지 않고 앞 다퉈 사우디를 끌고 있다.

이는 또한 MBS가 걸프 보안과 이스라엘 안보를 그들의 통치와 지역적 영향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MBZ의 묘수(?)을 지지한 것에서도 명백하다.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생기기도 전인 1960년대 후반부터 지역적,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역할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우연의 힘도 있지만, 중동지역에서의 최근 변화는 과연 우연의 힘에 의한 것일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일찍 부상한 것은 1967년 참혹한 전쟁 이후 이집트의 범 아랍 프로젝트가 몰락하고, 이후 1970년 지도자인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가 사망하면서부터다.

이미 OPEC의 주도적인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세속적이고 소비에트 친화적인 정권들 특히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에 의해 지배되었던 아랍 리그를 넘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1970년에 OPEC의 첫 회의를 조직했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난 후 석유수출국기구(OPEC) 불매운동 이후 석유 붐으로 인한 오일 머니(oil money)의 축적은 사우디를 더욱 더 부유하게 만들었고, 사우디의 석유 달러(Petro dollars) 외교와 영향력에도 자금의 역할이 막대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기로 한 것은 거의 이 나라의 지역적 성장을 보장해 주었다. 1978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리야드(사우디)를 이슬람 세계에서 미국의 없어서는 안 될 전략적 동맹국으로 격상시켰다.

사우디는 1980년대에 8년간의 파괴적인 전쟁으로 이라크와 이란이 힘을 잃으면서 지역 입지가 더욱 강화되었고,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레바논의 수렁에 빨려 들어갔다.

사우디와 미국의 동맹은 1980년대에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는데, 리야드가 소련과 그 고객들을 상대로 미국을 지원했고, 특히 1989년까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끝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에 대한 은밀한 지원을 통해 미국을 지원했지만, 또한 10여 년 후 2000년의 9.11 테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같은 사람들이 지역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동구권과 걸프전 해체 이후 미국이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 이란과 이라크 모두에 대한 이중 봉쇄 정책을 추진하면서 리야드는 지역적, 국제적 입지를 더욱 개선시켰다.

1991, 승리한 미국은 마드리드에서 최초의 아랍-이스라엘 국제 평화 회의를 소집했다. 사우디가 초청된 반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공식적으로 제외됐었다.

한마디로 아랍의 실패는 채무불이행이든 뭐든 사우디아라비아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

2001년 뉴욕과 워싱턴에서 알카에다의 911테러로 사우디와 미국인의 신혼여행은 급물살을 탔고, 리야드는 10년 전 알카에다의 사우디 출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추방했었지만, 19명의 납치범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국적자였다.

이 후, 다시 한 번 리야드는 상황에 의해, 또는 또 다른 미국의 어리석음에 의해 구제됐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한 부시 행정부(아들 부시)의 결정은 사우디를 다시 한 번 빼놓을 수 없는 동맹국으로 만들었다. 부시의 무모한 대중동(對中東)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며 이라크 침공을 감행 하는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힘든 전쟁을 치렀다.

20024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소유의 텍사스 목장에서 사실상의 사우디 지도자 압둘라(Abdullah) 왕세자를 접견했는데, 이는 어느 외국 지도자에게도 특권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 한 달 전, 압둘라는 아랍 연맹이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기본적으로 평화 공식을 위해 그 땅에 약속하는 그의 조작된 평화 이니셔티브를 채택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년 후, 사우디 정권은 미국이 거짓된 전제하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년간의 전쟁과 점령으로 인해 나라가 파괴되고 미국 국고가 고갈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행운의 항아리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0년대 들어 상당히 지쳐있던 후원자 미국이 이 중동 지역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취약해졌다. 반면에 미국은 셰일혁명(shale revolution) 덕분에 세계 유수의 석유 생산국이 되었고, 따라서 사우디나 걸프 안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더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이란의 영향력이 이라크의 희생으로 커지기 시작했을 때, 부유한 고객을 대신하여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은 2015년에 국제 핵 협정을 체결하여, 국제 제재를 해제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대담하게 하고 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당시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감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반란은 사우디 왕국과 사우디의 위성 권위주의 국가들을 경계로 몰아넣었다. 오바마 정부의 초기 민주화 개혁과 정권 교체 지원은 사우디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완전히 정신 나간 사우디 왕정은 살만 국왕과 새 국방장관에 임명된 야심으로 가득 찬 아들 모하메드라는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서면서 압둘라 국왕의 사망 이후 적극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aking Saudi Arabia great again)가 시작됐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멘토 빈 자예드(MBZ)가 이끄는 동안, 사우디의 MBS는 테헤란의 동맹으로 여겨지는 반항적인 후티(Houthis)반군 세력을 떠맡는다는 핑계로 예멘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데 시간을 쏟아 넣었다.

사우디는 몇 주 만에 승리를 약속했지만,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채 몇 년째 질질 끌고 있다. 옛 소련이 지원해주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지리멸렬한 전쟁을 치르다가 끝이 보이지 않자 철수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사우디가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MBSMBZ20176월 자신들의 지시를 준수하는 새로운 유연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이웃 카타르와 '테러'와 외국의 간섭에 대항하자는 가짜 체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당초 계획했던 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번복했고, 빠른 승리를 위한 것이었던 걸프전 통합에 큰 균열을 초래해 수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MBS201711월 레바논-사우디 국적의 사아드 하리리(Saad Hariri) 레바논 총리를 리야드로 유인, 그의 연합 파트너인 이란이 후원하는 헤즈볼라를 비난하게 하고, 그의 사임서를 사우디 TV에 생중계했다.

이 조치는 국제적인 분노를 야기시켰고, 사우디 정권을 더욱 어리석게 보이게 했다.

MBS는 이런 추악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실패 때마다 무대에 올라 2017년 황태자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왕국에 있는 권력과 사업의 모든 기둥을 물려받으며 갑작스런 감금, 굴욕, 심지어 고문까지 동원해 다른 왕자들과 관료들을 숙청했다.

이후 전직 관료, 종교계 인사, 학계, 언론인, 인권운동가 등 모든 야당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끊임없이 이어져 201810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카슈끄지라는 굴지의 언론인 암살과 같은 끔찍한 사건으로 세상을 들끓게 했다.

따라서 살만 국왕이 집권하고 어린 아들을 왕좌의 길로 세운 지 불과 몇 년 만에, 사우디는 관대한 자선과 실용 외교보다는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고 무모한 왕정국가로 알려지게 됐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나라가 붉은 초승달의 상징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뼈 톱의 이미지로 대표되게 됐다.

MBS의 맹렬한 모험은 그의 권력 장악력을 강화시켰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왕국을 엄청나게 약화시켰다. MBS의 사우디는 수천억 건의 무기 구매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난인 예멘과의 5년 전쟁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의 아프가니스탄인 셈이다.

예멘 후티 반군 세력들이 사우디 왕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확대함에 따라, 사우디는 전쟁으로 인한 역습이 제대로 감지되고 있다는 점은 사우디에 있어 아주 나쁜 징조이다.

한때 사우디의 주요 성과였던 걸프협력회의(GCC)MBS의 근시안적인 정책 때문에 이제 완전히 마비됐고, 한때 지역 실용주의와 안정의 기둥이라고 자부하던 사우디 왕국은 호전적이고 불안정한 세력으로 바뀌게 됐다.

경제 변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주요 정치 개혁에 착수하는 대신, 경험이 부족한 젊은 MBSUAE의 전철을 밟았지만, 재치가 별로 없다는 MBS는 겉으로는 사회적 자유화를 내세우면서 안으로는 가식적 정책 등으로 억압적인 경찰국가로 만들었다.

나아가 소비자 역동성은 사라지고, 프로레슬링과 팝 콘서트와 같은 오락적인 서커스도 사라지면서, 사우디 왕국은 예산적자와 국내의 불만들로 가득한 국가로 돼가고 있다.

사우디는 경제개혁과 더불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경제 대국이 교착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29%에 이르고 있다. 또 여성의 사회적 이동성과 권한 강화에 대한 초기 낙관주의와 흥분은 곧 비관주의와 절망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지금 사우디 왕국은 혼란에 빠져있으며, 사우디 정권은 아라비아 반도와 그 주변 지역 전체와 그 너머에서 완전히 혼란스럽고 경시되고 있다는 게 알자지라의 진단이다.

또 이란과 터키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MBS는 이러한 실패에 대처하거나 앞으로의 도전에 응할 수 없다. 그는 리야드가 주최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재기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MBS의 그동안의 행보는 낙관을 불허하고 있다.

그의 미국인 후원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미국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는 매우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드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MBS도 어느 정도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MBS에게는 최후의 피난처로서의 이스라엘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사우디 왕세자 MBS는 자신의 파괴적인 정책을 뒤집고, 예멘에서 전쟁을 끝내고, 카타르와 화해하며, 걸프만과 아랍의 단결을 강화해, 이란을 무력화시키는 대신 이스라엘과의 은밀한 동맹관계를 공고히 해 아랍 영토 점령자와 완전한 정상화의 길을 열어왔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MBS는 사우디 정상화의 서막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것을 촉구했지만, 아버지의 동의는 받지 않았다. 살만 국왕은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국가가 등장한 뒤에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해 좋은 경찰, 나쁜 경찰(good cop, bad cop)’을 연기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든 간에, 이스라엘과의 외교적이고 전략적인 화해가 사우디에 어떤 먹잇감이 될지는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게 알자지라의 전망이다.

그러면서 알자지라는 이미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걸프 지역 안보에 이스라엘이 관여하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노하우, 기술, 무기의 측면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세계 강대국들에 의해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UAE 반민주적 동맹에 가입하기 위해 행복하고 열심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그것이 유발할 수 있는 아랍의 혐오감을 고려할 때 역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억압한 이스라엘은 이 지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국으로 남아 있으며, 아랍인의 절대 다수는 이 지역을 지역 안보와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워싱턴, 특히 미 의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우디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주의를 완전히 묵인하는 것을 포함해 많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MBS의 도박은 그의 다른 도박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자산보다 더 많은 부담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알자지라는 미국과 트럼프 자신이 MBS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난관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이스라엘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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