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이루어진 5.18 광주폭동 사건 재조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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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에 이루어진 5.18 광주폭동 사건 재조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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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폭동은 광주와 북한, 김대중과 김일성이 야합한 적화통일 시도였다

현 대한민국을 북한과 연결된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유

5.18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와 국가 사이에 발생했던 10일간의 무력충돌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18일 09:30분경, 전남대 정문 앞에 서있던 20명의 공수대원들과 250여명의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시작됐고, 5월 27일 새벽 05시 23분 주영복 국방장관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시가 수복되었음을 보고한 순간에 종결됐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5.18 광주시위는 국가를 상대로 한 '반국가폭동'으로 인식 됐고, 당시의 법관들도 그렇게 판결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때 아닌 '민주화'라는 광란의 쓰나미를 맞는 불운을 당하게 됐다. 광란이 휩쓸고 간 사회는 전과는 단절된 딴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사회 인식도 대법원 판결도 모두 거꾸로 뒤집혔다. 문명이 사라진 원시림 사회에 김영삼 정권의 사생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이라는 흉측한 괴물이 탄생했다. 헌법에서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과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능멸하고, 헌법이 불법으로 규정한 관심법과 마녀사냥에 의한 인민재판까지 동원하여 5.18에 대한 정통역사관을 뒤엎고 좌익세력과 '양아치로 대표 되는 무산계급'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극시켰다.

반역을 저지른 5.18 세력이 오히려 '대한민국 역사에 화려한 획을 그었다는 민주화 운동'으로 등극하여 대한민국을 깔고 앉아 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호령해오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오직 '5.18 민주화 역사'만 존재하고 '이승만의 건국 역사와 박정희의 산업화 역사'는 악의 축인 것으로 짓밟혀왔다. 한반도 역사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고, 김일성 만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역사관을 대한민국 국민과 학생들에 강요해 왔다.

예전의 '내란세력'이 '헌법수호세력'이 됐고, '내란'을 진압한 국가는 '헌법파괴세력'이 됐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 동지'로 모시는 용공세력이 충신세력이 되고, 반공세력이 역적세력으로 전락한 것이다. 5.18 이 하나가 국가의 정통성을 뒤바꿔 놓은 원흉인 것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국가기관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너무 많이 포진해 있다.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총본부는 전라도이고, 전라도 사람들로 구성된 한국의 제1야당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국회를 마비시키고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지금 나타난 객관적 분석 결과와 사진 증거들에 의하면, 이 엄청난 파라독스 뒤에는 북한이 있었다. 5.18 폭동은 광주와 북한, 김대중과 김일성이 야합한 적화통일 시도였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 되자 김일성은 "지금이 결정적인 시기"라고 판단하고 소규모의 특수군을 꾸준히 남파시켜 1980년 5월에는 특수군 집단만 600명, 그리고 그들에게 군수물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등 수를 알 수 없는 고정간첩들이 확보됐다. 이들 600명은 한국의 계엄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 아니라, 광주와 국가 사이를 이간하고 국가전복을 위한 무력폭동을 주도하기 위해 왔다.

이간 수단은 두 가지, 하나는 유언비어였고, 다른 하나는 북한군이 광주사람들을 총과 살인도구로 살해해놓고 이를 계엄군의 소행이라고 선동하는 것이었다. 유언비어는 "정부가 전라도 사람 70%를 죽이기 위해 전라도를 미워하는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 보냈다", "전두환이 계엄군에 환각제를 먹여 마구 죽이고 있다", "공수부대원들이 여자들만 보면 옷을 벗기고 유방을 칼로 도려내서 청소차에 던졌다"는 등의 허황된 것들이었지만, 광주의 개념 없는 계급들은 이에 넘어가 북한군에 동조했다. 북한은 침량행위를 한 것이고, 광주는 적과 내통-합세하여 여적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북한은 해마다 5.18 사건을 남한보다 더욱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 결론은 2002년부터 2014년 9월까지 만 12년 동안 한 시스템공학자의 끈질긴 연구 끝에 비로소 도출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15년 5월, 이를 증명할 시각적 증거들이 몇몇 반공 전문가들에 의해 수집됐다는 사실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장내란을 주도했던 북한군사 47명이 3,4,5성 장군들이 되어 북한정권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북한에 생존하는 8명의 '차수' 모두가 광주작전 참전자들이다. 또 다른 3명의 광주 폭도는 2010년 5월 17일 평양에서 거행된 5.18 제30주년 기념식장 로얄석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해마다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기념하고, 북한군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총질을 한 5,700명의 광주인들을 국가유공자라며 보상금을 지불하고, 매년 최상급의 연금을 지불하며, 그 자식들에는 각종 시험과 취직에서 총점의 10%를 가산점으로 부여하고 있다. 5.18은 확실히 대한민국을 점령한 점령군 사령부인 것이다.

북한특수군이 광주에서 보인 위력

전국계엄령 발동으로 광주는 물론 나라 전체가 공포로 얼어붙었던 1980년 5월 18일 아침, 젊은이라면 멀리에 나타난 경찰들만 보아도 오금을 저리며 꼭꼭 숨던 그 시각에 북한특수군 200여명이 계엄군의 집결지인 전남대학을 찾아가 돌을 던져 7명의 공수대원에 큰 부상을 입혔다. 광주에서는 200여명의 대학생이 모일 수 없었고, 이런 배짱과 능력을 가진 대학생들도 없었다. 그동안 광주-전라도 지방에서 암암리에 북한과 연계하여 반정부활동을 벌이던 이른바 운동권의 리더들은 모두 숨거나 잡혀갔다.

300명의 북한특수부대는 광주 톨게이트에 20사단 지휘부가 5월 21일 오전 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해 매복했다가 공격해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해 지휘부 차량 14대를 빼앗았다. 지프차를 먼저 빼앗은 목적은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그들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다. 사단장 차 등을 본 아시아자동자 직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4대의 장갑차와 374대의 군용트럭에 키를 꽂아주었다. 아침 9시, 아시아자동차에는 총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집결했다. 이들은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4시간 만에 털어 5,408정의 총기를 탈취했다. 그리고 80-85명의 광주시민을 쏘아 이를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뒤집어 씌웠다. 6회의 교도소 공격도 단행했다. 이런 작전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엔테베 작전을 능가하는 세계 최정상급의 특공작전에 해당할 것이다.

드디어 그들의 싸움 상대인 공수부대가 구사일생으로 광주시 외곽으로 도망을 갔다. 광주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계엄사령부의 조치였다. 이때까지 계엄군에는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당시 1성 장군인 제11공수여단장 최웅은 지프차를 타고 철로를 건너다 스나이핑을 당해 운전병을 잃고, 병사 5명의 호위를 받으며 밤새내 무등산을 헤매다가 무등산 정상에 주둔한 방공포대가 깔아놓은 지뢰밭을 용케도 통과하여 방공포대에 3일간 머물다 본대와 합류했다. 13세 때부터 세계 최정상급 살인기계로 훈련된 북한특수군이 아니라면, 공수부대 3개 여단 10개 대대 총 4,000명 정도의 공수부대를 이렇게 몰살 지경으로 몰아 넣는 작전을 펼 수는 없었다.

5월 21일 밤, 이들은 2,700명의 수용자가 들어 있는 광주교도소를 6회에 걸쳐 공격하였다. 북한으로부터의 무리한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느라 죽은 것이다. 여기에서 490명에 이르는 북한군이 죽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북한군은 8톤 규모의 TNT에 뇌관과 도화선을 연결해 2,100발의 폭탄을 전남도청에 조립해 놓았다. 담뱃불만 던지면 히로시마가 되는 것이었다. 전라도에 민주화 시위는 없었다. 북한특수군에 내통-영합한 내란 행위가 있었을 뿐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2014년 10월에 발행된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명쾌하게 분석돼 있다.(계속)

▲ 5.18 광주폭동 북한특수군 일명 '광수'들 1에서 13까지 자료 사진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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