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세력은 곧 공산화 세력
민주화 세력은 곧 공산화 세력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10.01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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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주화'는 '사람의 적'을 타도하는 폭력투쟁이다

▲ 5.18 자료사진, 시위대가 군용 트럭과 전차등을 탈취한 모습 ⓒ뉴스타운
이른바 민주화 운동은, 해방 직후에 발생한 전남 하의도 농민폭동, 화순탄광 폭동, 전국을 동결시킨 9월 총파업, 2개월간의 살인방화로 얼룩진 10월의 대구폭동 등과 같이 폭동과 파업의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세력은 소련의 지원과 사주를 받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이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면서 소련은 "세계 노동자 농민들은 국경을 무시하고 소련에 뭉치라"는 선동구호 아래 코민테른 기구를 설치하여 세계공산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부화뇌동하는 부나비들이 미국 일본 유럽 등 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동 출신 김두봉이 코민테른의 프락치로 서울에 침투하여 조선일보에 위장하고 있으면서 박헌영을 데리고 1924년 조선공산당을 지하에 창당하였습니다. 일본 경찰의 끈질긴 탄압으로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공산주의는 지하에서 꾸준히 자랐습니다. 해방직후 남한 인구의 70% 정도가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돼 있었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정강을 헌법에 수용한 북한은 '민주주의'를 '사람중심주의'로 정의했습니다. 이른바 주체사상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노동자 농민 등 무산계급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의 적'을 폭력으로 타도해야 하는데 그 폭력과정이 곧 민주화 과정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 개의 적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남한을 식민지화하는 미국이요, '사람'(노동자 농민)을 착취하는 자본가요, 미국의 앞잡이인 남한 괴뢰정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주화' 라는 것은 곧 이들 3개의 '사람의 적'을 타도하는 폭력투쟁을 의미합니다. 민주화를 남한의 상식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일반 국민들은 민주화 운동을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매우 순수한 운동인 것으로 해석하고들 있지만, 정작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 운동권 등 남한공산주의 세력은 북한식 해석에 따라 반미-반파쇼-반재벌 폭력투쟁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파쇼' 라는 것은, 저들이 미국의 앞잡이로 규정한, 남한 정부를 의미합니다.

저들이 민주화운동의 꽃이라 부르는 5.18은 그들 스스로 선전하듯이 '반미-반파쇼 폭력투쟁'이었습니다. 월간 노동해방문학 1989년 5월호 특집에는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전환"(이정로)이라는 제하에 45,000자의 격문 조 논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정로는 필명이며 원래 이름은 백태웅입니다. 그는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출신으로 위장취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수배생활 7년, 감옥생활 7년으로 이름이 나 있는 그는 현재 국제변호사로 변신해 있으며,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영입하려 애썼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문화일보는 2012년 2월 6일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새누리당이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 나설 영입대상으로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만든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를 지목, 접촉에 나섰다. 백 부교수 영입에 성공할 경우 백 부교수의 출신 고등학교가 있는 부산에 출마를 시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바람'에 맞서 낙동강 전선 사수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위의 기고문에서 백태웅은 "광주의 무장봉기는 민족민주혁명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이렇게 단칼로 정의하였습니다. 민족민주혁명은 적화통일을 의미합니다. 5.18에 대한 정의는 백태웅이 가장 적나라하고 가장 진솔하게 내려 놓았고, 이는 이 나라에 기식하는 공산주의자들에 바이블이 되어 있습니다. 5.18에 대한 그의 정의는 아래의 내용으로 보강돼 있습니다.

"그것은 '시민항쟁'의 차원을 넘어서서 '반란'이요 '혁명'이며, '주권탈취'의 한판 싸움이었다. 광주의 민중은 '비굴한 타협'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총공격'의 신명나는 한판을 벌였다. 그것은 '실패한 무장봉기'였다. 만약 광주지역의 승리가 전남 전체지역의 승리로 그리고 나아가 전국적 승리로 되었다면 위대한 민족민주혁명의 성취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처절하게 참혹한 실패를 정확하게 배우고 새로운 혁명의 첫걸음을 열기 위해서도 우리는 광주를 '무장봉기의 도시', 권력을 일시적으로나마 민중이 직접 소유한 소중한 경험을 가진 '혁명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민주화 운동들에는 간첩 집단이 남한의 꼭두각시를 내세워 배후 조종하였지만, 5.18에서 만큼은 600여명의 북한특수부대가 직접 참가하여 30만 도시게릴라 작전을 진두지휘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지축을 흔든 방대한 게릴라 작전은 분명하게 있었지만 지휘부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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