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해야 한다
문창극,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해야 한다
  • 석우영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06.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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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는 열릴 것이고 논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 당쟁(黨爭), 즉 당파싸움의 역사는 참으로 그 뿌리가 깊다. 역사를 보면 당파를 달리하는 정치세력에게는 타협문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끝장 싸움만 있을 뿐이었다. 정쟁에서 패배하는 세력에게는 최소한의 온정도 없었고 뿌리까지 제거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정적은 제거해야할 대상이었을 뿐, 타협의 대상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 밖이었다. 정도전이 기획하고 수립한 조선의 건국이념은 성리학에 바탕을 두었다.

만물의 본질인 이(理)와 현실적 존재인 기(氣)를 동일선상에서 해석해야 하느냐, 아니면 따로 해석해야 하느냐에 따라 정치세력 간에는 패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이 논쟁은 조선 개국 이래 40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왔다. 

소위 동인(東人)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의 ‘이기이원론’과 서인(西人)의 뿌리가 되었던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과의 마찰에서 발생한 논쟁이었다. 요즘 말로 치면 소위 이념논쟁이었다. 이처럼 우리민족에게는 논쟁의 유전자가 다른 민족보다 유난히 많은 탓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념 논쟁은 일제치하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어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각각 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 도래할 독립된 대한민국의 정국 주도권을 서로 먼저 잡기위한 두 세력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었다. 중국은 국공합작을 통해 항일투쟁을 하였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두 진영 간의 이념 논쟁은 해방 후 지금까지 치열하게 진행 중인 것이 현실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종북세력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그 당시와 다른 점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등장은 그동안 잠재하고 있었던 근대사와 민족사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청문회라고 하면 재산의 축적과정, 위장전입, 전관예우, 병역문제, 탈세와 절세, 등 주로 개인적인 사적 영역에서 불거진 흠집이 주를 이루었지만 문 후보자의 등장은 본격적인 이념과 철학, 정체성에 대한 검증으로 확대되었다.

이를 계기로 좌우 진영은 총출동했다. 좌파진영은 그들만의 일방적인 역사관으로 문 후보자를 공격하고 있고 보수진영은 보수대로 해석의 차이에 따라 늬앙스가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진영논리에 의한 치열한 논쟁이다. 

소모전 성격의 끝없는 이념 논쟁은 우리나라가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한 듯 끝이 보이지 않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설령 북한의 세습독재정권이 멸망을 해도 진영논리는 남을 것 같다. 우리 민족이 너무나도 예민하고 우수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는 영원히 제척되어야 할 적의 개념으로 보는 관념의 존재 때문인가, 이 지구상에 공산주의를 채택하는 나라는 이제 단 한나라도 없다.

그토록 공고해 보였던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는 단일화된 요소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 정치변화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대부분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1980년 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라는 걸출한 정치가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등장하자 그는 과감한 개혁, 개방 정책을 추구했다. 고르바초프가 지향하는 소련 체제의 변화는 단순히 체제 내적(內的) 변화로 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파장과 영향이 대단했다.

특히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주변 연방사회주의국가에 까지 파급력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체제를 해체함과 동시에 소련연방도 해체하여 독립국가가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동유럽에 대해 그동안 소련이 취해온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근간이 되었던 주권제한 정책을 포기하고 ‘시나트라 독트린’의 외교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고르바초프가 ‘시나트라 독트린’을 추구하자 동유럽 공산권 국가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시나트라 독트린’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해 온 소련의 동구권 국가들로 하여금 소련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 겨울, 소련의 헌법을 개정하여 복수후보자 출마를 허용하고, 주민이 직접 뽑는 직접선거제도를 도입하여 체제 변형을 시도했다. 고르바초프는 1990년 서독과 독일이 통일을 이룰 때도 일체 개입하지 않고 독일인의 선택에 맡겼고 통일독일의 나토(NATO) 잔류도 묵인했다.

동구권 공산주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서서히 붕괴해 갔다. 동구권 국가들은 공산주의를 버리는 대신 자본주의를 과감하게 도입하기 시작했다. 동구권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자본주의 확대의 여파는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주의 붕괴의 도미노 현상을 방어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 개방정책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정치체제였던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체제는 유지하되 경제 분야만큼은 자본주의 체제를 과감하게 도입하거나,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는 개혁을 단행하여 사회주의 붕괴의 사조를 미연에 방지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변화의 물결을 거부했다. 적화통일이라는 미완성의 과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변화를 거부한데는 남한에 자생하고 있는 좌파진영 속의 종북추종세력이 보여주는 맹목적 친북 충성세력을 외면할 수 없다는 현실도 한몫 했을 것이다. 

북한이 존재함으로써 종북추종세력이 자생했고, 자생한 종북세력은 정치권과 사회곳곳에 침투하여 이념 논쟁의 선봉장이 되어 국론을 분열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는 불씨로 작용했다. 종북세력은 헌법적인 제단으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 자유사상이라는 미명하에 남한의 정치권을 교란해 왔다.

지난 좌파정권에서는 좌파이념을 소유한 당사자들이 총리도 되고 운동권 출신들이 장관도 되었으며 주사파 출신들이 국회의원도 되었다. 그 당시 보수진영에서는 그 어떤 이념 논쟁도 제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보수정권 아래서는 보수인사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도 좌파진영에서는 보수인사의 등용을 적극 거부하고 있다.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아 온 것이 좌파진영이 보여준 그동안의 행태였다. 세계는 자국 이익 최우선에 목표를 설정하여 실용주의로 나가고 있는데도 이들은 아직도 이념의 진흙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여당의 지지율을 앞서지 못하고 있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과정과 절차를 거친 후에 반대할 요소가 현저히 부각되면 그때 반대를 해도 되는데도 정쟁 좋아하는 야당은 그렇게 할 생각조차 없다. 마침 새민련에서도 청문회를 열어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청문회는 열릴 것으로 보인다. 논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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