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재판에 함몰된 총리라는 자리
여론재판에 함몰된 총리라는 자리
  • 석우영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4.06.27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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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총리 자리는 가문의 영광에 먹칠하는 자리로 전락

 
60 여일 전, 사임의사를 표명했던 정홍리 총리가 결국 유임됐다. 야당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비판하고 새민련의 안철수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영선은 총리도 임명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이라고 지적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정 총리 유임이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는 앞으로 두고 보면 알 것이므로 섣부른 예단은 이른 감이 없지도 않다.

정홍원 총리가 이미 두 달 전에 사임의사를 밝혔던 이유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임을 분명히 밝혔고, 또 정 총리의 후임으로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지명되었지만 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하게끔 자진사퇴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한 세력이 바로 새민련이었다는 점에서 안철수의 주장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안철수나 박영선의 말대로 하자면 인사권자는 총리 후보자를 반드시 지명해야 하고 새민련은 후보자가 지명될 때마다 무슨 트집이라도 잡아 자진사퇴하라고 하는 다람쥐 채 바퀴 돌리는 식으로 정쟁만 일삼을 게 빤한 일이었으므로, 적임자 발굴도 지난(至難)하고 또 물망에 오른 사람 중에서도 막상 총리를 하겠다는 사람도 없었으니 고육지책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고육지책은 상수(上手)가 아니다. 차라리 하수(下手)에 해당 되는 수임은 틀림없다.

일반 기업에서야 사직서를 제출한 직원의 퇴사를 만류하기 위해 사표를 반려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총리라는 막중한 직책에 국한해서 본다면 이미 사의를 표명했던 총리를 다시 그 자리에 유임시키는 일이 초유의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총리와는 달리 사의를 표명한 장관들에게 사의를 반려하는 행위는 역대정권에서도 간혹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굳이 설명하자면 사직서 반려가 장관은 되고 총리는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도 경계해야 하는 카테고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사의를 표명한 총리에게 사의를 반려하는 일이 헌정사에 없었다고 해서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또한 없다. 역사란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처음 일어난 일이 바로 최초의 관례가 되고 시간이 지나가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총리 후보자 물망에 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족의 극렬한 반대에 의해 손사레를 쳤다고 하니 이제 총리라는 자리는 가문의 영광을 빛내는 자리가 아니라 가문의 영광에 먹칠하는 자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만약 먼 장래에 야당이 집권을 해도 이와 같은 현상은 반드시 재현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인 인물에서 명 정승을 꼽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황희 정승일 것이다. 하지만 황희 정승도 흠결이 많은 재상이었다. 황희는 무려 24년간이나 정승 직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황희정승은 영의정 18년,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 등 무려 24년을 정승 직에 있었다. 한사람이 이렇게 오래 하고 있었으니 요즘 같았으면 난리가 나도 엄청난 난리가 났을 것이다. 황희를 보면 그 시대에도 총리감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정승을 지낸 황희에게도 별로 아름답지 못한 역사들이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후계자로 지명된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충녕대군으로 왕세자를 교체하려고 했을 때, 정세 판단을 잘못한 황희는 태종의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양녕대군을 두둔하다가 파직을 당한 사실도 있었으며, 세종 때는 황희 정승의 사위였던 서달이 살인을 저질러 처벌을 받게 되자 사위를 구명하기 위해 맹사성과 짜고 이 사건을 은폐하려다가 세종에게 들켜 파직을 당한 일도 있었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명 정승으로 이름을 떨쳤던 황희에게도 별로 아름답지 못한 흠결이 있었던 것이다. 황희는 파직, 복직, 이라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겪은 인물이었다. 수백 년 전, 청렴 재상이라고 알려졌던 황희도 이랬는데 하물며 요즘 세상에 모두의 입맛에 다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 아무리 찾아도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고육지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고육지책 때문에 환경이 변해지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태호 의원은 한 라디오 대담프로에 출연했다. 김태호는 문창극 사퇴와 관련하여 성경의 말을 인용했다. 예수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했다고 치자, 저 한 구절만 보면 저 여자는 무조건 죄인이 되지만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되 죄가 없는 사람만 던지라” 는 다음 구절을 들었다면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문창극의 사퇴를 이렇게 비유했다. 물론 김태호 자신도 청문회 문턱에서 좌절을 겪어본 장본인이라 누구보다 문창극이 처했던 환경을 누구보다 더 절절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안대희 후보자의 변호사 과다수임료 문제는 자신이 총리가 될 것으로 전혀 예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처신에 대한 자의적인 문제였다면, 문창극의 사퇴는 마녀사냥에 나선 여론재판에 의해 낙마한 타의적인 문제였다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다. 문 후보자의 지지자들이 격노하는 이유도 문창극의 개인적인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왜곡되고 조작된 여론재판에 의해 문창극이 위기에 몰렸을 때, 아무도 방어해 주지 않았던 집권세력의 엉성한 보호막에 대한 울분이자 분노의 표시라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였지만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킴으로서 총리공석이라는 장기 공백은 매워졌다. 이 조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예단은 아직은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가 있다. 연속해서 추락하기 시작하는 지지율은 여간해선 반등의 동인(動因)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지난 정권 모두가 그랬다. 그리고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조기 레임덕이었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총리라는 자리를 없애고 부통령제를 신설하여 대통령 후보와 런닝 메이트로 동시에 선출 받게 하는 것이 청문회를 돌파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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