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영국의 고질병이 치유된 사례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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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영국의 고질병이 치유된 사례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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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행동을 치유하는 가장 원칙적인 처방전은 강력한 공권력의 행사다

▲ 철도노조파업 모습
대처가 영국의 총리로 등장한 시기의 영국은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였다. 인플레이션은 20%에 육박했고 복지 비대화는 극에 달하고 있었으며 공기업의 만성적인 불법파업은 난치병에 가까울 정도로 극심했다. 대처는 이러한 영국의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대변혁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동안 노동당이 추구하던 복지국가의 근본부터 바꾸기로 결심한다.

대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부상한 석탄, 통신, 항만, 교통 등 국영기업을 개혁하기로 결심하고 석탄, 통신, 항만, 교통 등 국영기업의 개혁을 통해 점차 민영화로 추진하고 금리 인상과 공공지출의 제한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집권 초기 당장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경기 침체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며 사회 불만세력들의 반정부 시위에 불을 댕기는 도화선이 되었다.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그랬다. 일각에서는 대처의 정치적 생명이 단명으로 끝날 것으로 기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반정부 세력의 이런 기대는 일장춘몽으로 끝나게 된다.

집권 초기의 상황이 이러하자 대대적인 파업과 시위로 이어졌다. 마거릿 대처는 1984년 대대적인 광산노조파업이 일어나자, 처음부터 강경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심지어 단식농성을 벌이던 시위자가 사망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대처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영국의 탄광노조는 일 년에 13억 파운드의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으면서도 전체 탄광의 75%가 적자상태였다. 당시 탄광노조는 석탄의 씨가 마를 때까지 탄광폐쇄는 있을 수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끝장 투쟁을 호언장담했다. 이와 같이 개혁을 거부하고 대처 정권에 맞선 광산 노조의 파업은 일 년 내내 계속되었지만, 대처 정부는 강력한 법치로 단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결코 물러서지도 않았다.

광산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은 극에 달하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는 대처 정부의 단호함으로 인해 탄광노조의 파업은 점점 힘을 잃어갔고, 파업이 시작한지 일 년 만에 끝이 나게 되었다. 파업이 종료되었을 때는 전체 노조원 20여만 명 중, 1만 2천여 명이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중에서 8392명이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그중 최고형은 징역 9개월 이었으며, 이 기간 중 부상자는 다수가 발생했고 사망자는 6명 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뉴스 시간에도 주요 뉴스로 방송되었던 1984년 5월 29일에 있었던 불법폭력 시위에 가담한 5천여 명은 극렬한 저항으로 유명했던 시위였다. 진압 경찰들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자 경찰기마대가 출동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69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경찰기마대가 진압하는 이 장면은 뉴스 시간을 통해 영국 전역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대처는 그 이튿날 발표한 대국민 성명에서 “영국 국민들이 보신 어제 시위는 광산노조가 폭치(暴治)를 통해 법치(法治)를 누르고자 했던 저들의 책동”으로 규정했고, 의회에 출석해서는 “민주주의에 의한 통치를 폭도들에 의한 통치에 맡겨둘 수 없다”고 하면서 공권력의 집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특히, 대처는 불법파업에는 강경한 진압을 하면서도 일을 하고자 하는 노조와는 대화와 타협도 병행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탄광노조의 파업이 일어나 대립이 점차 격화되자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는 노조 시위대를 향해서는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는 순간, 그 즉시 경찰기마대가 출동하여 강경진압을 하도록 방침을 세웠다.

이런 방침으로 인해 폴리스 라인을 살짝 넘은 노조원 몇 명이 기마대의 진압에 의해 부상을 입게 되었고 부상자들이 경찰의 진압행위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자 대처 수상은 “어제 시위진압은 잘못됐다. 다음부터는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는 시위자에겐 기마대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겠다고 하면서 노조든, 누구든, 법질서를 어기는 것을 방치하면 민주주의가 사라지게 된다”고 초강수의 선언으로 영국 국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처는 불법시위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원칙주의를 고수했다. 영국 국민들은 대처의 강경진압을 법치의 차원에서 용인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영국을 지켜본 세계 선진국들은 어느 국가라도 대처에게 공안탄압이니 노조탄압이니 하는 비판을 하지 않았다. 고질병이었던 영국병은 이렇게 치유되었다. 불법 행동을 치유하는 가장 원칙적인 처방전은 강력한 공권력의 행사만이 가장 확실한 치료약이라는 것이 증명된 사례였던 것이다. 대처가 몸소 그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정부는 참고하기 바란다.

글 : 장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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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13-12-27 09:33:03
대한민국이 복지병에 걸린 영국과 같은 상황인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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