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엘리사벳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가 향년 87세에 뇌졸중으로 타계했다
영국의 유일한 여성 총리로서 강인하고 속내를 숨기지 않은 대처 여사는 보수당을 세 번 연속 총선 승리로 이끌면서 19세기 초 이래 영국 사상 최장기인 1979년부터 1990년까지 20년 동안 집권했다.
세계는 엘리자벳 대처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가족들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는 식료품 가게의 딸에서 영국 정치의 거인이 됐다. 대처 전 총리가 노조를 궤멸시키고 광대한 산업 부문을 민영화하면서 그녀는 사랑과 증오를 거의 동률로 받았다.
대처 여사가 정계에 있는 동안 어떤 사람은 영국을 확 바꿔놓은 현대화의 기수로서 숭배했고, 어떤 이는 빈자와 부자 간의 격차를 한층 깊게 했다고 비난했다.
그녀의 과격한 우파 시각은 영국 정치의 틀을 깨트렸으며 현상 유지의 무사안일을 철저히 타파해 그녀를 이은 반대당 노동당 정부마저 그녀의 주요 정책 상당수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집권했던 대처 전 총리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반 공산주의의 강력한 동맹을 결성해 1989년 비록 통일 독일의 유럽 지배를 우려하면서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쾌거를 선사받았다.
대처 여사가 총리직에 있는 동안 광산 노조와 대치하고 흰 스카프를 휘날리며 탱크를 타고 있는 여성 총리, 결국에 세금 폭동으로 무너졌다.
대처 전 총리는 1925년 영국 중부 랭커셔주 그랜덤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그랜덤에서 식료품점을 경영했고, 학력은 짧았으나 성실히 일해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이후 그랜덤 시장을 지냈다.
대처 전 총리는 부친의 성실함과 책임감, 남다른 정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옥스퍼드대학의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 195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 1959년 보수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1961~1964년까지는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 교육.과학장관을 거쳐 1975년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로 선출됐다.
이어 1979년 총선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자리에 올랐고 이후 세 차례 총선에서 이기며 1990년까지 재임했다.
그녀의 투쟁적인 자세는 유럽의 여러 동맹국들을 적대 관계로 돌아서게 했으며 그녀의 불 관용적 태도는 결국 그녀의 몰락을 재촉했다.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대처는 순전한 자신의 개성과 성격으로 서방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됐다. 하루 18시간 씩 일하는 강행군을 마다않는 일 중독자인 그녀는 위스키 한 잔으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하곤 했다.
1979년 5월 3일 선거에서 승리한 대처 여사는 산업의 날개 없는 추락, 해만 끼치는 세금 및 도를 넘는 관치 등 비판해온 현상들을 종식시키는 경제 및 사회 개혁에 착수했다.
인플레 유발의 급여 인상과 싸우고 경제 체제를 현대화, 1982년 아르헨티나 침입군에 의해 점령된 포크랜드에 해군 전함을 급파해 여러 척의 전함을 잃긴 했지만 영국은 74일 뒤에 이 남 대서양 섬을 탈환하며 649명의 아르헨티나 인과 255명의 영국인이 죽었다.
1981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처는 전 시대 통틀어 가장 싫어하는 총리라는 등급이 매겨졌다. 그러나 2년 뒤 포클랜드 전쟁 승리가 불러일으킨 애국심 바람에 힘입어 그녀는 재선에 성공, 1987년 세 번째 총선 승리를 안았다.
대처 총리는 또한 영국인 68%를 주택 소유자로 끌어올리고 20%를 주식 주주로 만드는 "대중 자본주의"의 시대를 도래시켰다.
그녀는 가스, 석유, 철강, 전화, 공항 및 항공사 BA 등 정부 독점사업을 민영화로 전면 개혁을 시작하고 상수도 및 전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대처리즘으로 많은 이들이 보다 잘살게 되긴 했으나 실직자가 1980년대 중반 300만명 이상으로 두배나 급증했고 1930년대 이후 반대자들은 대처가 잘사는 남부와 못사는 북부로 영국을 양분, 양극화했다고 비판했다.
대처 총리가 "철의 여인"이란 이름을 갖게 된것은 소련 공산당 프라우다 기관지였으며 그녀는 이 별명을 아주 즐겼다.
이라크가 1990년 쿠웨이트를 침략했을 때 대처 총리가 당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사담 후세인과 대적하는 데 "줏대없이 흔들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는 일화를 남겼고 대처가 11년동안 재임 중 전후(戰後) 복지 자본주의 모델인 케인스주의와 결별하고 복지 축소,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를 과감하게 밀어붙여 영국병을 치유하고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인 대처 여사는 2002년 뇌졸중 증세가 나타나 투병해 왔다, 이후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방광이 부풀어 수술을 받은 바 있었다.
대처의 오랜 측근인 팀 벨은 "대처 전 총리는 뇌졸증으로 투병중이었으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힌 뒤 "그는 가장 위대한 총리 중 한명으로 국민들의 삶을 바꿔놓는데 한평생을 바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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