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 주장하는 일본에 우리의 옛땅 ‘대마도’ 돌려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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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유권 주장하는 일본에 우리의 옛땅 ‘대마도’ 돌려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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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로 정치권과 국민 모두 관심과 힘의 축적에 동참을 촉구

지난해 12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출범한 후, 한국과 중국을 향해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망언을 일삼고 있어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을 하고도 못 배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는 격언이 무색하게 일본의 총리와 각료들은 인품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통박(痛駁)하기에 앞서 분노마져 느끼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3일 국회에서 1995년 8월 15일 전후 50주년 종전기념일에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일본군 위안부 보상 등에 관한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에 대해 “침략에 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어느 쪽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부인하면서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마져도 외면 각료들까지 A급 전범자(戰犯者)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여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또다시 외교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했으며, 독일정부 또한 나치 전범자를 끝까지 추적해 법적 책임을 묻고 있을 뿐아니라, 현 메르겔 총리도 똑같은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아베 내각은 그들의 전 세대가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식민지 시혜라며 왜곡, 부정하는 교과서를 수정하여 국민 여론을 조성하고, 제일 인접한 한국에 대해 반한(反韓), 혐한(嫌韓)은 물론 과거사 문제에 대해 역사 및 정치적인 충돌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어 쌓아 온 경제력에 비해 인성(人性)은 독일을 비롯한 세계인으로서 한참 모자란 ‘속 좁고 옹졸한 섬나라 근성’에 함몰(陷沒)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아베 내각은 ‘아베노믹스’로 일본경제에 활기가 솟고 지지율이 높아가자 한국 영토인 독도에 대해 지난 2월 시마네현(鳥根縣)의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에 정부관리를 파견하는가 하면 4월초에는 외교청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등 그들로 인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정치, 외교적으로 심각한 균열상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일본정부와 우익들이 역사적으로 명백하고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독도에 대한 시비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우리의 옛땅이었던 ‘대마도’(對馬島. 일본명 쓰시마)의 역사적 진실을 감추기 위해 독도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본에 역공(逆攻) 전략을 펼쳐 그들의 예봉(銳鋒)을 꺾어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학계에서 역사적으로 대마도는 기원 전부터 주로 한반도와 무역을 하고 살았고, 1419년 조선 세종때 정벌로 우리 영토화 됐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 정부 수립 사흘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므로 속히 반환하라”고 요구했으며 1949년 1월 8일 연두회견에서 “350년 전 일본인들이 섬에 침입하여 도민들이 민병을 일으켜 싸웠으며,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여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뽑아다 도쿄박물관에 갖다 뒀다.”며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그해 12월 31일 연말기자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해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대마도를 다년간 연구해 온 김상훈 전 관동대학교 학군단장(육군 소령)은 1750년대 제작된 해동지도에 ‘백두산은 머리, 대관령은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와 호남의 탐라를 양 발로 삼는다’(以白山爲頭 大嶺以脊 嶺南之對馬 湖南之耽羅 爲兩趾)라고 기술되어 있다고 밝히면서, 일본의 개항직후 미.일간 영토분쟁에서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1785년에 작성한 일본지도를 번역한 1832년 프랑스판으로 협상에 성공해 1868년 대마도를 일본 영토로 귀속했는데, 그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855년 영국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대마도와 이끼섬은 일본왕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1945년 한국에서 발행된 조선해방기념판 최신 조선전도에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표기해 놓았다고도 밝히면서 2차세계대전 패전국 일본과 미국간의 전후처리를 위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고 했으며, 이 문안에 독도와 대마도는 명시되지 않아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가 무산됐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협상에 참여할 수 없었을 뿐아니라, 6.25전쟁 중에 있어 외교적 제약이 많아 이 대통령은 1952년 독도를 포함하는 평화선을 설정했으며, 이때 대마도를 염두에 두고 ‘이 경계선은 장래에 규명될 새로운 발견.연구 또는 권익의 출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신정세에 맞추어 수정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해 여지를 남겨뒀다고 밝혔다.

일본이 다오이다오(釣漁島, 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도분쟁에는 저자세를 취하면서 독도 영유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조정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명백한 한국의 영토이며, 우리 조상들이 지키지 못하여 일본에 대마도를 빼앗긴만큼 역사적, 지리적으로 우리의 땅을 찾기 위해 도리어 국제재판소에 조정을 신청해 침략의 죄의식을 깡그리 저버리고 있는 일본의 못된 국민성을 세계인들에게 명백히 알려야 한다. 최근 대한민국해양연맹과 부경대학교 대마도연구센터가 학계 및 관계의 인사들과 심포지엄을 여는 등 대마도의 반환을 위한 공론화의 불을 짚히고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앞으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궁극적으로 대마도를 일본으로부터 반환받는데 관심과 힘의 축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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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11:05:21
三国志魏書東夷伝倭人条
(原文)從郡至倭循海岸水行歴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 始度一海千餘里至對馬國。

三国志魏書東夷伝韓条
(原文)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為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 辰韓者古之辰國也馬韓在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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