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해신 신사는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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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해신 신사는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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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 면진(綿津)은 일본 초대천황의 외조부

 
   
  ^^^▲ 대마도 상현군 미네정의 해신신사^^^  
 

일본이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 일본이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두어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학설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날조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망언을 자행함으로써 지금 우리 국회에서는 의원 50여명이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결의안을 마련 중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대마도에 있는 해신신사와 우리나라 부산과 일본 천황족의 관계를 살펴보고 또한 일본은 그들이 국제무대에서의 얼마만큼 부당한지를 하심 하는 자세로 자신을 보아야할 것이다.

대마도 해신 면진(綿津)은 부산에서 갔다

일본의 해신신앙의 발원지는 대마도 풍옥정의 와쯔미 신사와 미네정의 해신신사로서 현재 일본열도에서 바다의 신을 모시는 신사는 주길신사, 하쯔번 신사, 종상신사 같은 대(大)신사 그룹들인데 이들 신사들의 기원이 대마도의 해신신사라는 것이 일본고대 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들이다.

대마도의 해신신사에서 모시는 바다의 신은 토요타마 여신과 다마요리 여신인데 이 두 여신은 자매로서 해신의 딸이다.

일본신화에 의하면 하늘에서 천손으로 강림한 니니코 노미코도를 종조로 하고 그의 아들 히코호호데미의 부인이 도요다마 히메(豊玉姬:풍옥희)여신이고, 그의 손자 우가야의 부인이 다마요리히메 옥의희(玉依姬)여신이라고 했다.

우가야의 아들이 초대 일본천황 신무가 된다. 그러므로 신무천황의 어머니와 친 외가가 모두해신계인데 이 해신계의 도움으로 초대 일본천황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 해신은 누구인가 해신의 이름은 면진(綿津)이다. 면진(綿津)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실나리'가 된다.

'실나리'는 과거 부산의 수영강변에 즉 조선시대 경상 우수영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름이 사천(絲川)이라 불렀으며, 사천(絲川)을 우리말로 '실내'라고 하는데, 이 '실내'에 배 닿는 곳을 나리(津)라 했다.

그래서 면진(綿津)이라는 이름은 '실나리'에서 건너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면진(綿津)은 지금의 부산수영부근에서 대마도로 이주하여 일본 초대천황의 외조부가 되는 셈이다.

해신(綿進)이 우리민족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는 신대하 해궁유행(神代下 海宮遊幸)에 있는 노래 2수를 음(音)그대로 읽어보면 명확한 우리말이 된다.

 

 
   
  ^^^▲ 豊 玉 姬 之 墳 墓 대마도의 주신인 와타즈미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  
 

천손(天孫)과 해신(海神)의 노래 말

일본서기 신대하 해궁유행(神代下 海宮遊幸)에 있는 노래 2수의 배경은 이러하다.

천손 '아마쓰 히꼬히꼬호노 니니기노 미꼬도'와 선착 원주민인 '오야마 쓰미노가미'의 딸 '가무아다 가시쓰히메'와의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인 '히꼬 호호데미노 미꼬도'는 바다에 낚시질을 나갔다가 낚시 바늘을 잃어버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물가에서 한탄하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난 한 노인의 도움으로 바다 궁전에 갈 수 있게 된다.

거기서 바다의 해신(海神: 이름: 綿津) 도요다마 히꼬 의 딸 도요다마 히메(豊玉姬:풍옥희)를 아내로 삼아 히꼬 호호데미는 머문지 3년이 되자, 고국 생각이 간절하여 마침내 풍옥희(豊玉姬)와 이별하여 바다궁전을 나오게 된다.

이별할 때 풍옥희(豊玉姬)는 자기가 임신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해산은 반드시 당신이 있는 곳에 가서 하고 싶으니, 나를 위해 산실을 해변에 짓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의 말대로 히꼬호호데미노 미꼬도는 고향에 돌아와 가마우지 새(겨울철새)의 깃털로 지붕을 이어 산실을 짓기로 하고 그 지붕을 아직 다 이기도 전에 풍옥희(豊玉姬)는 여동생 옥의희(玉依姬)를 데리고 육지로 올라왔다.

지붕을 아직 이기도 전이라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풍옥희(豊玉姬)는 천손(히코호호데미)에게 “오늘 밤 산고가 있을 것이니, 내가 애기를 낳을 때 원컨대 들여다보지 말아 주시오”라고 말하고 곧 바로 산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천손(히코호호데미)이 의심스러워 가만히 들여다보니, 커다란 악어(일설에는 용)로 화신하여 기어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풍옥희(豊玉姬)는 대단히 부끄러이 여긴 나머지 원망하여 이불과 풀로 그가 낳은 아들을 싸서 아기와 함께 바다를 건너 곧바로 가버렸다.

풍옥희(豊玉姬)는 아기가 자라면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아기의 장래를 봐서도 도리에 어긋난다고 여기고 동생 옥의희(玉依姬)를 통해 아기를 돌려보내면서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阿軻娜磨 迺此軻利 播阿利 登比鄧播伊 珮耐企弭 我譽贈比志 多輔妬勾 阿利計利
(아가나마 내차가리 파아리 등비등파이 패내끼미 아예증비지 다보투구 아리계리)
아가나마 네가가라 빨리 등비등빨리 패내끼이 아이주비지 다부두고 아니가리
해석: 아기나마 네가 가서 주고와라, 빨리빨리 머뭇거리지 말고, 패내끼 달려와라, 아이는 주어 버리고, 다시 두고 아니 가도록.

그때 천손(히코호호데미)은 돌아온 여인이 풍옥희(豊玉姬)로 여기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飫企都鄧利 軻茂豆勾志磨 爾和我謂禰 志伊茂播和素邏 珥譽能據鄧馭母
(어기도등리 가무두구지마 니화아위니 지이무파화소라 이예능거등어모)
아기도둑니 고마두고지마라 니와내이니 지이미파라서라 이애는거두어마
해석: 아기도둑년! 그만 들어오지 말라. 네와 나의 아이이니, 지어미는 팔려갔나. 이아기는 내가 거두어마.

위의 노래 글 번역이 전부 옳다고 보지는 않겠지만 동양적인 윤리관으로 봐도 천손(히코호호데미)은 온당치가 못하다.

첫째는 아무리 고향이 그립다고는 해도 그렇지 아내가 그의 자식을 가졌는데 그것을 참지 못해 고향에 돌아가야 했었느냐는 것이 일본사람의 전형적인 본심이 엿보이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일본의 옛 신화 여러 곳에 약속을 어기는 곳이 많다.

즉 돌아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는 곳 등이나 너와 나의 아이니 아이는 거두고 그의 부인인 풍옥희(豊玉姬)는 아기를 훔쳐간 도둑이니 들어오지도 말고 돌아가라는 내용은 가족관계에서의 부부지간에도 지켜야할 윤리가 있을 법도 한데 매정스럽고 야비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와다도미신사표지석^^^  
 
 
   
  ^^^^^^▲ 와다도미신사표지석^^^^^^  
 

와타즈미 신사는 5개의 '도리(신사문)'가 있는데 2개는 바다에, 한개는 바다와 바로 연결 되는 곳 ,두개는 신사 앞에 있는데 5개의 도리가 일직선상으로 되어있다 하며 김해 김수로왕 무덤을 향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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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2009-02-28 10:47:27
어느곳이든 땅밟고 사는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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