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얀 웨스터호프(Jan Westerhoff)의 글로 그는 영국의 더럼(Durham) 대학 및 런던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동양 및 아프리카학 연구학교)의 철학자이며, '현실(실제)에 대한 매우 간단한 소개'란 뜻의 저서 'Reality: A very short introduction'(옥스퍼드 대학 출판사, 2011)의 저자이다. 앞으로 8차례에 나눠 발췌 정리해 보겠다<필자 주>
글의 순서 :
1. 정의
2. 입자물리학 표준모델: 모든 것의 기반
3. 물질 : 물질은 진짜 있는 것인가?
4. 수학 : 모든 것은 수로 이루어진 것인가?
5. 정보 이론 : 정보의 세계
6. 의식 : 우리에게 어떻게 의식이 들어온 것일까?
7. 인식론 :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8. 시뮬레이션 : 미래
하지만 현실이란 무엇인가? 깊이 파고들수록 현실을 이해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 주변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 보자. 먼저 현실의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현실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이 그러리라 여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끝맺을 것이다. 어쨌거나 놀라지 마시기를!
인식론 :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현실을 착각이라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고 제시하기란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철학자들이 우리들 대부분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접근 방식을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 매도한다고 해도 무례한 것은 아니다. 자기들도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관찰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적 현실(실제)'이 있다고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철학자들이 연구실에 출근하고 나면 이렇게 묻는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실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소박한 실재론, naive realism. 외적 세계를 지각하는 그대로 인정하는 상식론.
달리 말하자면 "무엇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철학적으로는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축소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2400년 전에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신념"이라고 '맹렬하게' 정의했다. 그러나 정당화 혹은 참된 신념을 테스트하려면 우리의 '인식'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인식'이 우리를 기만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천년 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혀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커다란 난로 위로 올라가 홀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데카르트가 품은 의심의 논리적 결론을 유아론(唯我論)이라고 하는데, 자기 자신의 의식이 모든 것이라는 확신을 말한다. 이는 반박하기 어려운 사상이다.
'객체의 현실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이 내놓은 악명 높은 반격이 있다. 그는 돌멩이를 차면서 말했다. "난 그걸 이리 반박한다네!". 하지만 거기엔 철학적 영역이 없다. 데카르트가 한 세기 전에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도 정신과 물질이 구분된다는 이원론을 이해하는 행운을 갖지 못했다. 한 가지 반응은 물질만 존재한다는 것이며 의식은 '머릿속의 뉴런이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중에 일어나는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는 범심론(汎心論)으로 모든 물질에 정신적 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천체물리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 1928년에 표현한 것처럼 "세상의 것(stuff)들이란 정신적인 것들로... 이는 우리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전적으로 다른 별개의 것들은 아니다."
이와는 한참 별개로, 하버드 대학의 윌라드 밴 오만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같은 엄격한 논리학자들은 현실(실재)의 근원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정합론자"(coherentist) 입장을 취한다. 지식의 층층 피라미드 같은 개념은 버려두자고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뗏목' 대신, 뗏목이 떠 있는 물 속에는 '인지(perception)에 대한 표현'과 '그 표현 자체에 대한 표현'으로 구성된 해초가 엄청나게 뒤얽혀 있다. 어떤 것에도 기반을 두지 않고 서로 매달려 얼키고 설킨 상태가 너무도 견고하여 그 위로 뗏목이 아니라 배도 지나갈 만큼 견고하게 뒤얽힌 것이다. 혹은 그 얽힌 상태 자체가 심지어 하나의 우주가 될 수도 있다.
이 아이디어는 돌고 돌아 순환적이며 스스로를 속이게(cheating) 된다고 정초주의자(foundationist,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기반 위에 인간의 지식을 올려놓으려는 주의)적 경향이 있는 이들은 비판한다. 우리의 관찰과 무관한 독립적인 현실이란 실제로 없을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만일 현실(실재)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걸 알 수 있을까?
* 아는 것은 알고자 하는 주체와 알아야 할 대상이 있음을 전재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만일 주체가 대상과 같다거나, 대상에 속성이 전혀 없어서 객체라고 볼 수가 없다면? 찾고 있는 것이 찾을 수 없는 것이라거나, 혹은 주체도 대상도 아니라면? 공자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이렇게 비유한다. ‘적연부동 감이수 통천하지고((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 고요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문뜩 천하의 연고가 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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