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白馬)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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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白馬)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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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연재 2 (글 이재환)

지금으로부터 2071년 전(:서기전 69년), 말을 탄 사람들이 대흥안령 산맥에서 몽골 동남부까지 펼쳐진 초원에서 출발해 동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흉노(:훈)와 한(漢)을 피해 달아나는 오환(烏桓/烏丸)족 무리였다.

이들은 9∼ 10년전 흉노가 몇몇 세력권으로 갈라져 서로 싸울 때 '조상'인 동호(東胡 : 퉁구스)족의 원수를 갚으려고 흉노를 쳤다가 도리어 흉노에게 당했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한(漢)이 배신해 ― 흉노가 물러난 뒤 ― 많은 구성원이 한군(漢軍)에 죽임을 당한 뼈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살아남은 오환족은 대부분 본거지에 남았지만, 몇몇 족장은 ― 무리를 이끌고 ―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고 그 가운데 한 거수(:군주)는 초원지대 대신 고향에서 더 멀리 떨어진 땅까지 내려갔다. 그는 자신과 일족(一族)이 살 새 땅을 찾아 달아난 것이다.

북(北)만주는 산 하나 없는 평야지대여서 흉노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부여족이 강한 왕국을 세워 다스리고 있었다. 요동반도는 한(漢) 군현과 가까웠고 (지금의) 요서지방에는 한(漢)의 군현이 들어서 있었다. 아무르강(:흑룡강) 동북부는 동부여 한가운데를 '꿰뚫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길림성(省)은 달랐다. 숲이 우거져 기마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고 산골짜기여서 숨기에 좋았다. 더 중요한 것은 길림성은 부여와 흉노, 한(漢)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오환족의 거수가 이끄는 무리가 동(東)부여의 서쪽 국경을 넘은 뒤 길림성으로 간 일은 ― 넓은 풀밭을 찾아다니는 유목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짓이었지만 ―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싸움에 져서 달아나는 무리였고 수가 적었으며 우선 살고 보는 일이 가장 급했기 때문이다.(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점은 석탈해와 김알지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이들이 고른 첫 망명지인 진(辰)은 피난민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진왕(辰王)은 거수에게 진의 서쪽 땅을 나눠주었다. 재미있게도 오환족 무리처럼 침략을 피해 고향을 떠나 달아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변경지대였다. 그곳은 40여년 전(서기전 109년 이전) 위만조선의 벼슬아치 역계경이 위만조선을 떠나 동쪽으로 달아날 때 그를 따라온 고조선 사람 1만명이 산골짜기에 흩어져 여섯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위만조선은 물론 위만조선과 친하게 지내는 어떤 나라와도 관계를 맺지 않았고 위만조선이 있던 곳에 들어선 한(漢) 군현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위만조선이 망한 뒤에도 촌장을 지도자로 모시며 ― 아울러 진왕(辰王)의 다스림을 받으며 ― 살아갔지만 여섯 마을을 함께 이끌 수 있는 강한 군주가 없었고 기껏해야 한 마을이 혼자 풀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여섯 촌장이 한데 모여 의논하고 (나머지 마을이) 문제가 생긴 마을을 도와주는 정도였다.

이렇게 통제되지 않은 조직이었는데다가 원래 피난민으로 이루어진 난민촌이었던 6촌은 영향력을 넓히려는 이웃 낙랑국(國)의 침공에 자주 시달렸고, 이웃의 침공에서 지켜줘야 할 진왕(辰王)은 좀처럼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6촌에 대한 지배권은 유지하려고 든) 진(辰)에 대한 6촌장의 실망은 나날이 깊어 갔다.

그들은 보다 강한 조직,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고 더 강하게 욱죄어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배자를 구하려 했고 때마침 이 때 거수가 이끄는 오환족 무리가 지친 몸을 이끌고 6마을 가운데 하나인 양산(楊山) 마을에 나타난다.

6촌장은 ― 처음에는 낯선 무리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 곧 오환족을 거리낌없이 새 지배자로 맞아들였고 고허(高墟) 마을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는 거수를 자기 마을로 불러들여 살 곳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의 유민(고조선의 원주민)과 오환족이 하나로 뭉친 것이다.(이들은 둘 다 한漢과 사이가 나빴으며, 피난민이라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보다 쉽게 뭉칠 수 있었을 것이다)

얼핏 보면 난민촌이 '보잘것없는' 도망자를 받아들인 일은 ― 그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 혁거세거서간이 죽은 뒤 40년 동안 계속될 남하(南下)의 시작이었고, - 길림성과 강원도·충청북도·경상북도에서 펼쳐질 -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였다.

13년 후 이들은 결국 나라를 세웠으며 나라를 세운 지 3년도 안돼 새로운 귀순자를 받아들여 힘을 키웠고 결국 기존 세력인 진(辰)을 몰아내고 예·맥의 피난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나중에 더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秦韓)인과 고조선 원주민, 석(昔)씨족이 세운 신라(사라, 사로)가 자리잡고 있던 경상북도를 점령하게 된다.

나라의 이름은 서나벌(徐那伐)이었고 오환족 무리는 훗날 ― 박혁거세(朴赫居世) 거서간(居西干)을 시조로 삼는 ― '박(朴)씨족'이라고 불리게 되는 집단이었다. 이들이 진(辰)에 의탁한 뒤 그들과 같은 처지인 위만조선의 유민들과 힘을 합침으로써 992년 동안 이어질 한 나라의 역사가 열린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망명한 거수의 아들이자 기록상으로는 서나벌의 시조인 불구내(弗矩內 : 박혁거세) 거슬한(거서간) ― 자칭 알지거서간 ― 이 거수 자리를 물려받은 뒤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정해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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