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밥 먹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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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밥 먹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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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129>이규배 '海棠花(해당화) 붉은 꽃잎'

복숭아빛 네 젖꼭지 위에 붉은 꽃잎 하나 얹어놓고
세상의 마지막 밥을 먹고 하늘 가는 날을 생각해 봤다.
젊은 날 사랑한 만큼 진물 흐르는 몸뚱아리의 상처를 핥아주며
서로의 눈 안에 자라나는 아들 딸의 앞날을 염려하였다.

세월은 흘러서,
가지 않는 괘종시계의 녹슬은 태엽과 같이 힘겨운 나날들.
흐벅지고 푹푹한 붉은 꽃 그대 골반에도 하얀 서리가 내리고
물기 마른 김장 배춧속처럼 푸스스 말라 이 세상 떠나갈 즈음,
나는 흰 나비떼 흰 나비떼
시린 눈발로 그대 이마 위에 사뿐 날아가 내려
密生(밀생)한 가시에 찔려 가며 꽃 피우며
지새던 하많은 밤들 아릿아릿 향기로웠다고......

네 가슴에 덮어둔 마른 꽃이파리의 자죽을
파르스레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죽어가고 싶었다.

 

 
   
  ^^^▲ 해질 무렵
ⓒ 이종찬 ^^^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서로 모르는 이성이 만나 지어미와 지아비, 자아비와 지어미가 되어 한평생 살을 섞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우기 이 세상살이가 우리들 생각처럼 그리도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던가요. 그 힘겨운 틈바구니 속에서도 행여 자리가 좀 잡힌다 싶으면 이내 흔들리고, 또 그렇게 흔들리며 아둥바둥거리다 보면 이내 이마에는 굵은 도랑이 겹겹이 패이고 귀 밑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부부가 그렇게 늙어가는 동안, 아니, 부부가 젊음의 자리를 비껴서는 동안 이내 그 자리에는 자식들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나에게는, 우리 부부에게는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던 그 세월이, 어느새 훌쩍 흘러가, 또 한 세대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이미 부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리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때, 나는 나와 평생 숨쉬기를 맞추며 온갖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할 것입니까.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 밥을 먹는 그날이 다가오면 나는 그대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남길 수 있을까요. 시인처럼 흰 나비떼가 되어 "그대 이마 위에 사뿐 날아가 내려"가 "파르스레한 손가락으로" 그대를 "가리키며 죽어"갈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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