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그늘 아래 다시 탄생하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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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그늘 아래 다시 탄생하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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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부활합니다.” 호프 잔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앉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척 궁금했다. 급속하게 해체되어 가고 있는 지역이 어떻게 다시 부활한다는 말인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러나 그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었다. 지역은 부활한다고. 게다가 그는 ‘반드시’라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그가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부활한다는 것인지 더 이상 물어보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것이 그토록 열정에 쌓여있는 그에게 실례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가지고 있는 지역의 부활에 대한 바람이 혹 깨어질까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약 5년 전인 그때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아마도 그 지역에 빼곡히 들어차서 살아가던 빈민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갈 뿐이고, 그래서 그들에게 소중한 도움이 되었던 복지자원들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관악구의 한 사회복지단체에서 알게 되었다. 같은 사회복지단체의 운영위원들이었던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나면, 인근 호프집 같은 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뒷풀이의 자리를 가지곤 했었다. 그러던 중 평소에 사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던 그 교수님과 우연히 나눈 이야기였다.

오랜 동안 소외의 대명사격이었던 난곡지역이 드디어 재개발을 시작한 것이었다. 오래된 사연과 오랜 고통의 삶을 담고 있던 낡은 집들을 뜯어내고, 순차적으로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다른 모든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 중 일부는 새로 들어서는 임대아파트에 그대로 남을 수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서 흩어져 가야하는 그런 시기였다.

난곡은 그곳에 모여 사는 이들의 가난과 고통만큼이나, 그들의 힘든 삶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공부방, 쉼터. 빈민 교회, 각종 사회복지관, 자활지원센터, 푸드 뱅크 같은 지원단체들이 함께 포진해서 그들의 삶의 벗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역’이란 빈곤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기 위해 그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복합적으로 지칭하는 뜻이었다.

난곡이 재개발되면 그곳에 모여서 삶을 꾸려가던 빈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또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 것이다.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동안 이루어 놓았던 공동체적 자원들을 버리고 이곳저곳으로 흩어져가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지역이 부활되어야 한다고 말한 의미는, 그저 사람들을 흩어놓기만 하는 식의 재개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이 난곡이란 지역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기까지에는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든, 노동력의 상실 등의 근본적인 이유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은 난곡만큼 어려운 이들이 모여살기 좋은 곳도 사실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난곡을 떠날 준비가 되기 전에, 그들을 도와서 함께 가난을 버텨나갈 버팀목이 되어줄 소중한 자원들이 모여 있는 지역공동체가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의 가슴 아픈 탄식은 나에겐 또 다른 의미로 느껴졌었다. 당시 지역은 확실히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난곡이라는 특정한 빈곤과 그들을 돕기 위한 자원만 해체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화란 도도한 물결 속에서, 지역이나 공동체란 개념은 이미 낙후된 개념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가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지역의 해체는 난곡이라는 한 특정한 지역만 아니라, 국가라는 공동체의 해체이기도 했었다. 난곡이 어려운 이들을 감싸주듯이, 자국의 빈약한 산업이나 농어민을 도와주던 국가라는 틀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바로 그 세계화의 물결이 나은 결과를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난곡이란 한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던 역할을, 우리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세계화의 이름 하에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명목으로 사회적 지지기능도 없는 망망한 벌판으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만이 옳은 일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업연금이 아니라 일자리이고, 가시적인 경제규모의 성장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체질을 갖추는 것이다. 자리에서 쫒겨 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의료혜택과 기본적인 보장을 해주는 것이다.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격변이라는 모진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라는 큰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수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우리는, 세계화란 것의 정체를 점차 명료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화가 남긴 아픈 그늘 속에서, 다시 새로운 지역들이 탄생하는 것을 아픔으로 보아야 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끝없이 늘어나는 실업자와 노숙자의 대열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을 만들어 내었다. 이런 파괴된 자들의 지역이 아니라, 좀더 긍정적인 의미의 능동적인 지역은 만들 수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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