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의 현판을 둘러싸고 기존의 ‘한자’ 현판이냐, ‘한글’ 현판으로 갈아야 하나, 아니면 ‘한글 및 한자’ 현판을 병용(倂用)하는 것이 좋으냐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31일 광화문 광장 인근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에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의견 수렴을 위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발제 2건과 지정토론 5건, 방청객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대표는 “광화문에 ‘국가 정체성’을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자‘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 대표가 강조한 것은 ”대한민국의 으뜸 마루지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면서 ”문화 유산이라는 범주 안에서 원형 보존은 기본 원칙이겠지만,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그보다 더 크고 넓은 ’국가 정체성‘의 범주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형‘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무엇보다도 ’원형과 현대성, 옛 가치와 새 가치의 공존이 가능하다“면서 한글 현판을 추가해, 기존의 한자 현판과 병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기존의 한자 현판과 한글 현판 함께 달수 있어야
그는 복원 다음으로 문화유산의 관리에서 ‘원형 보존’만이 철칙이 아니라면서 문화 강국들에서는 단순한 원형 보존을 넘어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사례로 들었다.
이건범 대표는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을 사례로 꼽았다. 1682년에 베르사유로 궁전을 이전하기 전까지 왕실 궁전으로 사용됐다. 그 뒤 일부가 박물관으로 사용되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대적 박물관으로 거듭났다며, 루블 앞 광장에 21.6미터 높이의 유리 피라미드와 지하 출입구를 설치, 3개의 전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냈다. 프랑스 상징물 앞에 엉뚱하게도 이집트 유물 피라미드를 게우냐며 반대와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1989년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며,
광화문도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글 현판이 바람직하다고 주창했다. 한글 경복궁 안에서 태어났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또 프랑스의 팡테웅은 원래 교회였으나,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프랑스 위인들의 유해를 안장하는 곳으로 지정, 교회의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고, 십자가 등 교회의 상징물을 제거, 팡테웅 전면에 ”조국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비문을 새겼다. 물온 이곳은 왕정복고에 따라 세속적인 상징물이 제거되고 십자가가 복원되는 등 정권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다가 공화국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는 사원으로 세속화가 확장되기도 했다.
이건범 대표는 또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을 예로 들었다. 폐허와 보강이 공존한 곳이 바로 콜로새움이라는 것이다. 나무판에 모래를 깔고, 검투장으로 사용하던 1층 바닥을 복원하지 않았다. 지하공간은 예전 무대 아래 있던 복잡한 기계장치와 구조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콜로세움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며, 옛 가치와 새 가치의 공존을 주장했다.

* 한글이 바로 국가 정체성
* 광화문 현판에 한글이 돼야 하는 이유 3가지
그러면서 이 대표는 ‘국가 정체성’을 광화문에서 보여주는 인류 공영에 앞장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글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기본인데, 국가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이 없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건범 대표는 ”한글이 국가의 정체성“인데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지난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 아래와 같은 판결문을 소개했다.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수도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도 국명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확정하고 국가 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할 것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애민 사상의 결과여서 자랑스러운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고 이 대표는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3가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우리가 ‘한자 사용 국가’라는 국제적 오해를 없애고, 130년 동안 형성된 문자 측면의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국가 상징 공간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듯이 광화문 현판에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둘째, 우리 민족이 애민 사상, 오늘날의 인본 사상을 중시하고, 우러든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좌표가 애민 정신의 산물인 한글로 광화문에 표현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역사적 준비이다. 한글이 태어난 곳이 경복궁인 만큼 태생 글꼴인 ‘훈민정음체’로 광화문 현판을 달면. 그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인류의 문화사적 가치 차원에서, 한글은 민주주의를 향한 인류의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을 향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인류에게 꼭 알려야 할 존재이다. 인본주의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광화문이 시류에 흔들리게 하지 말아야“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최 전 소장은 광화문의 한글 현판은 1968년 철근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복원했을 당시에 사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에서 비롯됐다면서, 그 이후 경복궁 복원 계획에 따라 2006년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을 철거하고, 2010년 전통 목조로 광화문을 복원하고, 현판을 다시 다는 과정에서 한글 현판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고 소개했다.

* 광화문의 변천 과정
- 1592년 선조 25년 조선 개국 200년 되는 해,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탔다. 전쟁 후 경복궁은 폐허로 방치,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구, 왕조의 궁궐로 사용.
- 1865년 고종 2년 흥선대원군이 왕실 권위 복원 명분으로 경복궁 중건.
-1868년 고종 5년 임금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전하면서 일단락.
-1927년 일본에 나라 빼앗겨, 270년 이상 중건된 경복궁의 영광은 얼룩졌다.
- 1926년 일본이 경복국 홍례문과 금천교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한반도 지배 총본산으로 삼아 한국 말살 일삼아.
- 1927년 일본은 조선총독부 앞 광화문을 헐어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쪽 궁장으로 이전.
- 1968년 한국전쟁 때 불타고 남아 있던 광화문 홍예 석축을 옮겨 그 위에 광하문 문루 복원, 그러나 위치, 구조, 현판 모두 옛 조선의 것과 달랐다.
- 1990년 경복궁 복원 계획 시작
- 1995년 옛 조선총독부 철거
- 2006년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 철거
- 2010년 조선시대 원래의 위치에 전통 목구조로 광화문 복원
- 2023년 광화문 월대 복원

* 광화문 현판 변천사
조선시대 궁궐의 현판은 주로 문관 중에서 서예에 탁월한 사람을 ‘서사관’을 지정, 글씨를 쓰게 했으나, 광화문 현판은 무관인 훈련대장 ‘임태영’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궁궐의 문은 궁궐을 지키는 무관을 ‘서사관’으로 임명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경복궁의 건춘문(동쪽문), 영추문(서쪽문), 신무문(북쪽문) 모두 무관이 현판 글씨를 썼다.
이후 1968년 12월 11일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 복원 준공 개막식에서 드러난 현판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이었다. 갑작스럽게 한글 현판이 등장한 배경에는 박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두었던 ”한글 전용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본인의 글씨체가 마음에 안든다며 한 번 글씨체를 바꿨다고 한다.
이루 2010년 원래의 자리에 돌아 온 전통 목조구조의 광화문 현판은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현판을 걸었으나, 3개월 되지 않아 새로 만든 현판이 균열이 발생한 데다, 처음 제작한 희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아니라 검은 바탕에 금박 글씨라는 기록이 발견되어 새로 현판을 제작해 다시 걸었다.
최종덕 전 소장은 ”없었던 과거를 창조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에 개입하고, 옛 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앞에 우리는 겸손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에 개입하지 말고 과거가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글 현판 찬반 열띤 토론
* 토론 일반 참석자 : 광화문은 물론 서울 4대문도 한글 현판으로 바꿔야
2건의 발제가 있은 후 5건의 토론이 이뤄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김권정의 ”광화문 공간의 역사성과 상징성‘, 한글학회 회장 김주원의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하는 이유”, 한국예술종합확교 이강민의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관환 토론회”, 서일대학교 건축과 홍석주 교수의 “광화문은 왜 우리에게 돌아왔나?’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 감형우의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설치, ‘K-컬처 성지’ 완성을 위한 창조적 선용‘의 순으로 이어졌다.
한글 현판 찬성 측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광화문 현판 문제를 단순한 복원 기술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봤다.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으뜸 상징 공간이므로 한글 현판을 달아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면서, 지금의 한자 현판 역시 희미한 사진과 제한된 기록을 토대로 복원된 만큼 절대적인 원형으로 보기 어렵다. 노트르담 성당 첨탑처럼 문화유산도 어느 시점의 진정성을 선택해 복원하는 창조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경복궁 복원의 일관성과 국가유산의 보존 원칙을 앞세우며, 경복궁을 고종 중건기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며, 2023년에도 고증에 따라 현판의 바탕색과 글자 색을 바로잡았다면서, 고증에 없는 한글 현판을 더하는 순간 복원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며, 문화유산이 현재의 취향과 정치적 메시지에 따라 변형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정토론에서는 찬반을 떠나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광화문이 조선의 육조거리에서 오늘의 정치·행정 중심지로 이어져 온 상징적인 공간이라며, 전통과 현대, 국가와 시민, 엄숙함과 유희가 겹친 ’혼종적 공간‘이라고 설명했고,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광화문이 이미 세계인이 찾는 한국 문화의 상징 공간이 된 만큼, 한글 현판 추가 설치가 '한글의 탄생지'라는 서사를 보강하고 관광 콘텐츠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하재풍 이사
이날 토론회에 참석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세종대왕 사가독서기념사업회‘ 하재풍 이사는 ”태극기는 나라의 혼이고, 한글은 나라의 정신(정체성)이며,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면서 한글 현판 달기에 적극 찬성을 표했다.
그러면서 하 이사는 ”2010년 11월 2일 오전 10시 37분에서 39분 사이, 광화문 현판을 촬영하던 중 光(광) 자에 균열이 발생한 사실을 최초로 발견, 즉시 언론에 제보, 11월 3일 연합뉴스를 통해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면서 ”이후 한 달 가까이 신문, 방송, 라디오 등 전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고 소개하고, 틀린 것은 고쳐야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하재풍 이사는 이번 기회에 동쪽 문인 흥인지문 (興仁之門, 동대문), 서문 돈의문 (敦義門, 서대문), 남문 숭례문 (崇禮門, 남대문), 북문 숙정문 (肅靖門, 북대문)도 모두 ’한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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