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탄생 200주년, 진화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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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탄생 200주년, 진화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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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의 멸종원인은 인간

 
   
  ^^^▲ 찰스 로버트 다윈^^^  
 

올해는 진화론의 거두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각국의 학계는 물론하고 한국 내에서도 다윈 200주년 기념논문을 공모하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의 회원게시판을 통해서이다.

1.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원인은 인간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라는 학설은 코메디.

이 학설의 진원지는 프랑스 파리 국립 과학연구센터(Centre Nationale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이다. 이 센터의 팀장인 페르난도 로찌(Fernando Rozzi)가 프랑스 남서부 레 로이스(Les Rois)에서 석기시대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토대로 세운 학설의 내용이다.

진화론계의 주장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지구상에 30만 년 전에 출현하여 그동안 몇 번의 빙하기도 이겨냈지만 3만년 경 전에 멸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시기에 대해 진화론은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한 시기로 주장한다.

로찌는 "3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며 "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동물처럼 동굴로 들여와 잡아 먹었으며, 두개골과 이빨들은 일종의 트로피처럼 목걸이나 장식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식인관습에 대해 "오랫동안 우리는 인간의 식인 증거를 숨겨왔으나 식인관습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찌의 주장에 대해 프랑스 보르도 선사시대 연구소의 프란체스코 데리코(Francesco d'Errico)는 "한 장소에서 발견된 턱뼈 만으로 현생인류의 네안데르탈인 식인설을 일반화 할 수는 없다" 며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뼈나 이빨을 목걸이 만으로 사용한 것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런던 역사박물관의 크라이스트 스트링거(Christ Stringer) 박사는 "우리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시점, 같은 장소에서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며 이 당시에 두 종은 충분히 적대적이었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번 발견들이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조직적으로 멸종시켰다든가 언제나 식용으로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며 "그러나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관여했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는 추가적인 증거는 될 수 있다"고 밝혔다.(서울신문, 2009.05.18일자 인터넷 판)

위의 보도에 대해 네티즌은 코메디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인류가 원숭이를 잡아먹기는 했지만 원숭이가 주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이 압권이다. 인간은 사실 먹을 것이 없을 때나 어쩔 수 없이 원숭이를 잡아먹었다.

원숭이는 인간이 가장 기피하는 먹을 거리였을 뿐이다. 원숭이는 인간의 어린아이와 같이 생겼다. 원숭이가 가축이 되지 못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잡아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몽땅 가축화했다. 심지어 날아다니는 새인 닭까지도 우리에 가두고 가축화시켰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을 인간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주장 따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2. 진화론에 대한 반박

1) 바벨탑 사건과 민족기원론

현존하는 4대 문명 발생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론은 바벨탑 사건 이후의 민족 기원론이다. 이 이론은 언어학 측면에서 접근되어 문명의 발생까지를 추적하는 이론으로 그 기원을 바벨탑 사건에서부터 찾고 있다. 각 민족의 어원을 추적하면 민족과 민족의 발생 기원이 나온다. 발생기원을 추적하면 반드시 바벨탑 사건과 만나게 되어 있어 있다.

그래야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바벨탑 사건을 제외하면 인간의 언어에 따른 민족기원설은 성립될 수가 없다. 그 원인은 인간은 모여서 살도록 되어 있고 타민족의 언어를 배우기란 죽을 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바벨탑 사건에서 더 나가면 창조론과 만나게 되어 있다. 창조론과 만나야 인간 기원설이 풀린다.

인간의 위대함은 우주의 핵심이며 중심이라는 것과 우주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는 간단히 미생물에서부터 출발하여 고등동물로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인류가 발생했다는 진화론의 근간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창조주의 세밀한 계획 하에서 인류가 탄생했다고 보는 창조론은 과학과 상식을 벗어난 막연한 추상이 아니다. 인간은 우주를 포함한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그 존재의 실존적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

종교적으로 들어가 보면, 성경 상에 기록되어 있는 인류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맞설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와가 그러했고 가인이 그러했고 라멕도 그러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나 있는 동안에는 스스로 하나님의 대적이 될 만한 수준으로 하나님과 맞선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사건으로 특정된 홍수로 해결해야 했다.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 106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명령은 노아와 노아의 후손들에게 온 지면에 흩어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인류에게 주셨으나 노아의 후손들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하늘까지 닿는 대를 세워 흩어짐을 면하자는 독립적인 제안을 내놓고 대역사를 시작했다.

2) 바벨탑

'혼잡' 혹은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벨탑(Babel)의 유적지는 현재 바그다드 남쪽 50km, 힐라 북쪽 8km 지점에 있으며 890ha에 걸쳐 있다. 이 유적지 북쪽에는 바빌 언덕, 중앙에는 카츠르 언덕, 남쪽에는 메르케스, 암란 이븐 알리찬 언덕 및 호메라 언덕들이 있다. 살아 있는 역사유적지이다. (두산백과, '바벨탑' 항목, 네이버.)

이 탑의 크기와 규모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의 여러 고증을 토대로 하면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 언덕 위에 세운 바벨탑은 1층이 길이 90m에 너비가 90m로 정사각형의 형태로 높이는 33m에 달했다. 2층은 길이 78m에 너비는 78m이고 높이는 18m로 1층 보다 줄여서 지었다. 3층은 길이 60m에 너비 60m이며 높이 6m이다.

4층은 길이 51m에 너비가 51m이며 높이는 6m이다. 5층은 길이 42m에 너비는 42m이고 높이는 6m이다. 6층은 길이 33m에 너비가 33m이며 높이는 6m이다. 7층은 길이 24m에 너비는 24m이고 높이는 15m로 알려져 있다. 높이만 90M이다. 현대식 건축 양식으로 계산해 보자. 1층의 높이를 2M로 계산해도 벌써 45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이다. 고대인이 45층이나 되는 고층빌딩을 건축했다면 이는 어설픈 진화론으로 설명을 해서 풀어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좀 더 들어가 보자.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몇 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 개의 벽돌이 사용됐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1만여 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되었으나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바벨탑 사건에 대해 성경에서 연대를 추출하여 계산한 결과에 의하면 노아의 대홍수 사건은 BC 2348년에 끝나고 방주에서 모두 8명이 나왔다. 100년 후인 BC 2247년에 벨렉이 태어났고 5년 뒤 BC 2242년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54년이 흐른 BC 2188년에 이집트 문명이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약 100년 후인 BC 2089년에 그리스문명이 탄생했다.(출처:창조과학회)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8명의 인류는 106년이 지난 어느 날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 높이의 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 고작 8명의 인류가 얼마나 번성하였기에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수십 년이 걸릴 건축물을 축조할 수 있었을까.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면 진화론적인 지식이나 상식에 의한 선입관을 버려야 비로소 접근된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의한 지식과 상식으로 볼 때 인간은 열등한 미생물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생물에서 고등한 인간이 되고 그 인간들이 모여서 문명을 창출해 내려면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년대는 불과 8명의 인류가 106년이 지난 후에 바벨탑을 건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바벨탑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을 짓다가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바벨탑 짓기를 중단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민족의 기원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는 가짜라는 말이다. 진화론을 과학의 기본으로 채택한 지식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의 기록이 잘 못 되었거나 혹은 허위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며, 성경의 기록을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지식인들은 진화론이 허구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에 일단의 선입견을 뒤로 물려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을 주목해 보라.

3. 인류의 기원

1) 초기의 인류는 성을 축조한 문화인

사실상 성경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아들 가인이 벌써 자신의 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의 이름은 아들인 에녹의 이름을 딴 에녹성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라멕도 자신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당대의 족장들은 자신의 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으며 주변과의 경계점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적으로 발전을 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평균 연령이 700살을 넘게 살았으며 무려 10대 이상의 후손을 보았다. 그렇다면 가인의 성에는 가인을 중심하여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을 족장으로 하는 가족들의 수가 최소 수백에서 수천 명을 넘었을 터이다. 이를 가문이라고 하자.

가문의 단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장되어 수만 명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을 것이며 잠시 후에는 수백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또 가문별로 수천 명이 넘는 한 가문이 거주하는 공간이라면 부부 단위의 주거지가 필요하고 각 주거지가 차지하는 면적도 상당했을 것이다. 따라서 가문과 가문의 경계점이 있어야 했고 이 경계점은 성을 쌓는 것으로서 해결되었다. 독립적인 성이 축조되었다면 성을 중심한 문화권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가인은 에녹을 낳았을 때 자신의 가문을 위해 성(城)을 쌓고 독자적인 부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부족문화이지 실상 성을 축조할 수 있는 정도라면 국가로 보던지 아니면 하나의 문명으로 보아도 충분하다. 이들은 이미 철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각종 악기를 만들었으며 문하생을 두고 음악을 전수할 정도의 문화를 영위한 문화인들이었다. 두발가은은 각종 동과 철을 사용하여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지경에 도달했다.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음악을 즐겼으며 수금과 퉁소를 널리 보급했다. 현악기와 관악기의 출현이다. 이 시기는 아담과 가인이 함께 살아 있던 인류기원의 시기였다. 인류기원의 시기에 이미 완전한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인해 초기 인류가 궤멸되었다. 이후 노아와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후손들이 번창했고 번창한 이후의 인류역사와 현대 인류의 기원 사이에는 바벨탑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가 복잡해지자 노아의 후손들이 셈(동양인), 함(흑인), 야벳(서구인)으로 갈라지고 가족단위로 헤쳐 모여 인류를 번성시켜 문화를 세웠기 때문이다. 가족단위와 인종단위로 헤쳐 모인 이유는 언어권이 같은 족속들과의 연합 때문이었다. 인류는 이렇듯 바벨탑 사건 이후로 현대의 인종과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권이 세워졌다.

2) 인류기원론에 대한 진화론의 비상식적 논리에 대한 반박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는 4대 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나의 횡선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이동한 경로는 어느 한 정점에서 시작하여 좌우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까지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명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문명(B.C 7000~6000)이며 그 다음으로 나일문명(B.C 6000~ ) 그 다음으로 황하 문명 (B.C 5000년 ∼ 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 마지막으로 인더스 문명 (B.C 3000~2000)이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인류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여 성을 쌓은 문명을 벗어나 좌우로 퍼졌을까? 인간은 구박을 받아도 인간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고 사회성이 강하다. 더구나 새로운 환경에는 두려움과 공포까지 느끼게 되어 있는 지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인류가 좌우로 퍼져 4대 문명을 이루었다는 결과에 도달하기에는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왜 이들이 퍼져 동토의 땅 러시아까지 갔고 알레스카까지 가서 에스키모가 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진화론은 현재까지 설득력이 있는 이론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의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현재의 인간기원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절충한 형태의 사회적 진화론으로 바뀌고 있다. 생태적 진화론으로는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는 사회적 구조로 진화되었다는 이론으로 바꿔 내놓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 인간의 기원을 풀지 못하는 진화론의 절대한계는 이미 설득력을 상실했다. 영국은 국영방송인 BBC를 통해 진화론을 확산시켜 왔다. 하지만 수많은 진화론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기원은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양분되어 논란 중에 있다.

인류가 번성하여 문명을 발생시키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4대 문명의 사이에는 최소 1000년이라는 시간대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1000년을 사이에 두고 인류가 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이동한 곳에서 번성하여 문명이 발생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최초의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인류가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지진인가 아니면 화산폭발인가?

진화론에서는 인류초기에 수많은 화산 폭발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인류가 어쩔 수 없이 이동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만약에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환경적 요인이 인류를 흩어지게 만든 원인이라면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류가 그 엄청난 자연의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세계를 4등분하는 4대강 유역에 거대한 문명을 1000년 단위로 4개나 세울 수는 없다. 천재지변을 피해 언제 번성하고 언제 문명을 세울 것인가? 따라서 이런 빈약한 이론 말고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

BBC 인터넷 판은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인류의 새 이동 경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영국과 리비아 과학자들은 한때 사하라 사막 중심부의 분수령으로부터 지중해를 향해 흘렀던 강들이 현재의 리비아를 지나면서 '물의 회랑'을 형성했으며 이 길을 따라 고대인들이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현재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 살고 있는 인류는 7만~6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 동부에서 출발한 이민 선구자들의 후예임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BBC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바벨 만답 해협에서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를 건넜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008-10-15 11:38)

두산백과에 소개되어 있는 진화론에 대한 해설에 의하면, 현대인의 조상은 호모사피엔스로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Epoch) 중기인 15만~25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급에 해당하는 유골을 통해 인류과학자들이 내린 이론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후 4만~5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후기 구석기문화(舊石器文化)를 발달시킨 존재로서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 지역 기원설이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15만 년 전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이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근거로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는 이론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 5만~10만 년 전부터 중동, 아시아, 유럽 등으로 이동하여 각 지역에 살고 있던 기존의 인류를 대체하여 오늘날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었으나, 최근에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서로 다른 종(種)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이 다시 유력해지고 있다. (두산 백과, '인류학' 항목, 네이버.)

그러나 이것뿐이다. 상식에 접근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론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인류의 행적을 추적한 노력도 찾아 볼 수 없다.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여 최소 15만 년 전에 출현했다는 현대인의 조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호모사피엔스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수만 년씩이나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서두에 지적한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집트 문명이 세워지는데 불과 1000년 밖에 안 걸렸다. 인류는 불과 1만 년 사이라는 어간에 4대 문명을 발생시키고, 아폴로 13호를 보내 마침내 달에 인류의 족적을 찍을 수 있는 정도로 위대한 존재들이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가는 기간이 무려 수만 년이 걸렸다는 진화론의 이론은 이미 논리적인 한계를 떠난 망상가들의 허상일 뿐이다. 이런 논리나 이론으로는 우리를 설득할 수 없다.

4. 다윈의 그늘에서 진화를 외치고 있는 한심한 한국과학자들

학술진흥재단의 게시판에 올린 다윈 200주년 기념 논문 공모를 읽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한국의 과학자들은 멀었다.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과연 대한민국에는 200년 전 사람인 다윈의 학설을 뒤집을 수 있는 위대한 과학자는 없는가? 대한민국의 과학자들은 자존심도 없는가?

실상 다윈의 진화론은 정설이 아니라 가설에 불과하다. 그 원인은 과학이란 수치상으로 도식화 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과학이기 때문이다. 논리로도 입증을 할 수 없다면 이는 다만 가설에 불과하다. 모든 이론은 상식과 논리의 범주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상식과 논리를 벗어나는 순간 비과학적인 궤변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모든 이론은 설득과 동의를 얻어내야 비로소 학설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론이 발표되면 그 이론에 대해 찬반이 갈리게 되고 중요한 도전이 시작된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론을 보호하기 위해 완벽한 논리와 이론 체계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 동안 진화론자들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논리에 대해서는 수억 년 대의 시간대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라는 말로 말장난을 해왔다. 진화론에서 수십 억년 혹은 수억 년이라는 엄청난 시간대를 설정해 놓으니 진화론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설명되지 못하는 이론을 스스로의 상상력까지 동원하면서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했다. 그러나 관련 고고학적인 유물들이 계속 출토되면서 진화론의 기본입장까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존재가치를 미생물로 비하시킴으로 우주 안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로 만드는데 악마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구석기 시대는 기원전 7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로 소급되고 있다. 반면 신석기 시대는 기원 전 1만 년 전부터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연대를 잡을 일이 아니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먼저는 7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를 구석기 시대로 잡은 것 자체가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데 70만년이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을 돌만 주물러 댔겠느냐. 또 구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가는 기간은 불과 1만 년도 걸리지 않는 7000년에 불과하다. 여기에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데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00년 정도의 시간 밖에 안 걸렸다.

그렇다면 진화론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는다고 해도 인간은 현대와 가까워질수록 지식과 지혜가 발전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200년 전 사람인 다윈은 어떠한가? 현대로 갈수록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보다 더 우월한 이론이 나와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지금에 와서는 진화론이 허구라는 증명을 해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한국의 과학자들은 다윈의 그늘에 안주하며 과학을 말하고 있다. 200년 전 사람보다 심히 우둔하다는 증명을 하면서 말이다. 만약 다윈이 천재였다고 해도 200년이라는 세월은 다윈의 천재성을 뛰어 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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