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게 묻는다:한국의 역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vs 김일성(김성주)·김대중·김영삼이란 사실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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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게 묻는다:한국의 역사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vs 김일성(김성주)·김대중·김영삼이란 사실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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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이승만 정부의 전쟁복구와 산업화 위한 처절한 노력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향한 구원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수
전두환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개발국가를 전수하여 마침내 산업화 완성
2차 대전 이후 군사혁명을 선택했던 100여 개 국가 중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

한국은 한반도에 드리워진 숙명에 도전한 나라였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의 도전은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출국마저 금지된 상태에서 귀국을 위해 친구였던맥아더 장군에게 편지를 쓰게 되어 군비행기로 귀국을 할 수 있었고, 이미 한반도는 절대빈곤과 문맹 위에 분단과 내전, 공산주의와 테러가 횡행하고 있었다. 

70이 된 노구를 이끌고 이승만의 건국운동은 유엔조사단을 회유하고 미군정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단독정부를 수립한다. 

"최선은 차선의 최악의 적"이란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단독정부의 출범 자체는 기적적이었으나 공산전체주의와의 투쟁은 중국의 공산혁명으로 일변했다. 토지개혁의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미군철수를 단행한 제헌국회에 다급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나토식 집단안보와 미국의 방어선을 요구했으나 미국(트루먼 행정부)은 대만과 함께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하는 에치슨 라인을 발표한다. 

마침내 6.25가 발발하자 맥아더 장군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요구됐다. 전쟁 직후 맥아더 장군은 현지를 방문해 피난민의 행렬과 용감한 소년병을 목격하고 전격적으로 미군(미8군)을 급파한다. 그러나 무기와 인적 불리로 개전 불과 한 달여만에 국토의 80%가 적군에 유린당한다. 여기에 워커장군(Gen. Walton H. Walker) 사령관의 낙동강 전선의 기적이 시작된다. 1, 2차대전의 영웅 워커장군은 절대적 열세를 전환시키기위해  장병들 앞에 "자신은 한국을 목숨걸고 사수하겠다(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death)"는 연설과 함께 "Stand or Die(결사수호)"란 최후명령을 내린다. 또한 한국의 지형, 도시를 감안하여 남북 150km, 동서 90km의 낙동강 라인과 진지전(미육군, 국군)과 기동전(미공군, 미해병대)을 결합시킨다. 

한 달반여의 결사항전은 마침내 대승리로 이어졌고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도를 탈환하게 된다. 38선을 확보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주저없이 북진을 강요하고 맥아더 장군은 수용한다. 하지만 6.25 개전당시 참전을 요구했던 중공군의 전격 개입이 시작되고 기나긴 소모전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휴전이 본격화되자 국가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처절한 외교투쟁 끝에 미국의 유일한 불평등조약인 한미동맹이 출범한다. 

전후 이승만 정부의 전쟁복구와 산업화를 위한 처절한 노력은 될성부른 나라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향한 구원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수된다. 불과 4,500의 혁명군을 이끈 젊은 장군 박정희는 기적의 성공을 하게 되고, 그의 꿈인 민족중흥이 시작되니 미국의 냉대와 정책실패로 인한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일국교정상화(1965)와 월남전 참전으로 비로소 산업화가 가시화된다. 

국가경영의 천재 박정희 대통령은 어렵게 형성된 민족자본을 토대로 수많은  관료, 과학자, 기업인들과 함께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남북대치에서 경제기적을 이루어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듣게 되고, 전두환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개발국가를 전수하여 마침내 산업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군사혁명을 선택했던 100여 개 국가가 있었으나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는 불과 30년만(1960-1980년대)에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의 성공을 '20세기의 경이'라고 격찬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민주화를 내세우며 반역과 함께 북한과 결탁하는 불순한 세력들이 배태되고 있었다. 

남침전쟁이 실패하고 중공군의 철수가 임박하자, 김일성은 남로당 세력 뿐아니라 친중세력도 제거하고 스탈린식 일인지배체제를 수립한다. 북한은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일제시대 전쟁경제로 인한 가용자원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나 시장경제와 배치되는 사회주의경제체제(명령경제)로 점차 쇠퇴하고 마침내 동구권사회주의 붕괴로 절대빈곤에 처해진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대장정으로 부강한 나라를 우선 건설하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근대화를 끝내 폄하한 김영삼은 오직 민주화에 갇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해 온 인물이었고, 소위 보수대연합(3당합당)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3,000억 비자금이 터지자 야권(김대중)과 연합하여 광주사태 등 역사왜곡에 앞장선다. 

김영삼에 뒤이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1960년대부터 김일성의 막대한 비자금을 바탕으로 반역활동을 해 온 '트로이의 목마'였다. 소위 햇볕정책으로 압축되는 김대중의 여적정책은 천문학적 대북지원을, 인권탄압과 함께 개혁을 거부하는 북한정권에 한다는 점에서 동독의 개혁, 개방을 지원한 동방정책과 대비된다. 김대중은 민주화의 미명 속에 부정부패(미국내 13억불 비자금)와 반역(햇볕정책), 친일(한일어업협정)을 감행해 온 반국가(반역) 인사였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남긴 폐해는 단순히 일시적이나 일부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율과 규율, 권리와 책임 등 전혀 상이한 요소가 창조적으로 결합되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이 본질적으로 위협당하고, 역사를 왜곡해 국민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민주화 30년이 경과한 대한민국은 이미 사회규범이 파괴되고 이념대립과 사회갈등이 내전에 준하는 상태인 것이다. 예컨대 도덕성, 관습, 법으로 대표되는 사회규범(sicial norms)은 이념공방과 정치우위에 의해 본질적으로 위협 받는 것이다. 

결국 한국이 과거 성장과 질서가 함께하는 우량국가였다면, 민주화 이후 한국은 침체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불량국가인 것이다. 또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말한 "국민을 파괴하는 가장 효율적 방법은 역사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이란 좋은 사례이다. 

역사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인간은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민주화 이후 침체와 혼란의 사회상을 보여온 한국인이 새겨야 할 말이다. 역사 더우기 처절했던 공산주의와 전쟁으로 시작되었고, 아직도 기아와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북한과 국경을 맞댄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책임과 의식이 없다면 지도자의 자질이 결여된 것이다. 결국 한국의 경우 국가지도자에게 비전, 카리스마, 국정운영능력 바탕에는 처절했던 역사와 심각한 내분상황에 대한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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