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불신시대! 잉꼬부부(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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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비자금의 사회학을 알아본다

가정에서 경제권과 교육권을 아내에게 빼앗긴 가장들일수록 비자금이 그립다.

지갑이 얇은 남성은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외롭다.그러나 거리의 욕망은 여전히 그들을 유혹한다.

대한민국 기혼 남성들은 ‘비자금’이 필요하다. 설사 비자금 통장을 갖고 있지 못한 남편들도 상시적으로 비자금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부 100명 중 85명이 가정경제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도 다섯 명 중 네 명이 경제권을 쥐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1996년 연세대 조사보다 10%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가정경제의 운용 주체에서 남편들이 사실상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가정에서는 경제권과 교육권이 아내한테 넘어가면서 아버지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40, 50대 가장은 아버지 자리에 대한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에서 家長이라는 멍에

가정에서의 위치와 달리 남성의 사회적 활동영역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남성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각종 경조사비를 챙기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친구와 지인을 도와야 한다. 특히 아내와 상의 없이 친가 쪽 식구들을 음양으로 도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가정 내에서의 경제적 위치가 흔들릴수록 비자금의 필요는 더욱 커진다. 결코 허가를 내주지 않는 가정금고에의 접근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개하지 않으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잠실지점장 신 모씨는 “비자금의 필요에 대한 남성의 욕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아내 몰래 주식투자를 하는 샐러리맨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출받은 돈으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식으로 대출이자 10%를 넘는 수익을 거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단기간에 몇 백만 원 정도의 차익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빚을 지기도 한다.”

남성 비자금의 속성은 남성들의 음주와 외도 습관과도 무관하지 않다. 돈이 없어도 잠깐의 로맨스를 즐길수 있었던 ‘낭만의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 “유능한 기혼남은 연인이 있다”는 도착된 세태가 힘을 얻는 상황에서 비자금 통장은 외도의 필수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돈 없는 남자와는 상대하지 말라”는 ‘작업의 정석’과 함께 화려한 식사를 하고, 때마다 선물을 주는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취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가정의 성윤리가 크게 무너지면서 부부가 경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세태도 만연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우리나라 가족의 전통적 관습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남성 비자금 조성의 텃밭이다. 출산율 저하와 평균수명 증가로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 비율이 높아지고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효(孝)’나 장남의 부모 부양의무 같은 관습이나 개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직접 봉양하지 못하면 금전적으로라도 부양해야 하는데 그 액수나 방법에 있어서 부부 간의 시각차가 크다.

조성남(사회학)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고령인구에 대한 부양 및 보호의 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통적 인식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접점 속에서 남성의 비자금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부장으로 연봉 8,000만 원 이상을 받는 김진호(가명·48) 씨도 최근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서울 변두리 작은 빌라에 기거하는 부모에게 한 달에 80만 원씩의 생활비를 보내 드린다. 최근 다리를 다친 어머니가 노인상해보험 이야기를 해서 무심코 가입해 드렸는데, 이것이 아내와 큰 다툼이 됐다. 3만5,000원씩의 추가 부담이 생기자 아내는 대뜸 ‘당신 동생들은 대체 무엇을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 장남으로서 가정을 챙기려면 적어도 몇 백만 원 정도의 비자금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남성 보상심리의 발현

한국의 고령자 층은 대부분 자신이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무상으로 물려주는 대신 자녀에게 노후를 의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효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 일부 젊은이들은 부모에게서 집과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당연시하면서도 노인들의 복지는 국가가 책임질 일이지 개인 단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비자금은 이 같은 세태를 최소한의 차원에서 보상하려는 남성 심리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상당수의 남편들이 부모의 경제적 부양 문제와 관련, 아내와 100% 의기투합하는 경우가 드물다. 최근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부모와 별거를 시작한 샐러리맨 최 모(40·중소기업 과장) 씨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에게 전셋집을 마련해드리는 과정에서 1,000만 원 정도의 비자금을 챙겼다. 아내가 뭐라고 하든 이 돈으로 애초 책정한 생활비와 용돈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부모의 필요와 아내의 계산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갭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 비자금의 비애 속에는 과도한 경조사비 지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아내는 남성의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체면’보다 ‘실질’을 숭상하는 여자의 속성이 작용하는 경우다. 경조사는 종종 술자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가정경제에 주름을 드리우는 주범이기도 하다.

정부 투자 공기업의 팀장(부장급)으로 근무하는 김 모(46) 씨는 지난 5월 한 달에만 부조금으로 무려 60만원을 지출했다. 직장 상사의 딸 결혼식과 후배 직원의 집들이에 부조했고, 직장 동료나 상사, 지인들의 부모상 등 상가는 다섯 곳이나 찾아 다녔다. 팀 내 여직원의 아이 돌잔치에도 부조했고, 유학을 떠나는 죽마고우의 아들에게 쓸 만한 만년필을 하나 선물하는 데도 10만 원을 썼다.

5월은 예외로 볼 수 있지만 평상시 그가 매월 지출하는 각종 경조사 부조금은 40만 원에 육박한다. 매년 500만 원에 달하는 부조금 지출은 그가 받는 연봉의 10%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연히 아내가 반발했고, 그는 지출하는 부조금의 절반 정도를 자신의 비자금으로 충당한다. 자신에게 일이 닥쳤을 때에 대비한 ‘경조사용 보험’인 동시에 ‘인간관계 유지 보험’이므로 아내가 투덜거린다고 해서 무작정 규모를 축소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음료회사 영업팀장인 이 모(38) 씨 역시 경조사비 부담 때문에 비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한 경우다. 그가 지출하는 경조사비는 회사 업무와 관련한 거래선이나 로비 대상자를 챙기는 수단이다. 축의금이나 부의금 규모가 상대방에 대한 예우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업 실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봉급생활자 가장에게는 ‘비자금’이 필요악인 시대가 됐다. 춤추는 경조사비도 한몫

그러다 보니 정작 본인이 현직에서 은퇴한 후 자녀가 결혼하거나 상을 당하면 부조를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일가 친척이나 이웃은 어느 때든 큰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주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부조를 했던 대상은 막상 내가 경조사를 당하면 신문에 난 부고를 보고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 한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하기가 민망하다.

남성 특유의 소비 욕구도 비자금 통장의 존재 이유에 큰 몫을 차지한다. 자동차·컴퓨터 등 정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한 고가품에 대한 소비는 아내의 반대에 부닥치기 십상이다. 먼저 비자금을 모아 저지르고 난 후 추인 받는 형식을 선호한다. 최근 ‘아반떼’를 몰다 중형차로 바꾼 한 중소기업 사원은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7년 된 차를 바꾸고 싶었지만 아내는 10년을 채우자고 했다. 8개월에 걸쳐 500만 원을 몰래 모아 신차 인수 대금을 마련했다. 어느 날 새 차가 아파트에 도착하자 아내의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그 돈을 모았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일부 부유층은 아내 몰래 부동산을 사는 등 ‘거액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요식업을 하거나 억대 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부자들이 그런 부류다. 5년 전 부동산 갑부의 딸을 아내로 맞은 하 모(34) 씨는 처가의 도움으로 물류회사와 음식점을 경영했다.

그는 최근 아내 모르게 조성한 돈으로 주식투자에 올인해 수억 원대의 비자금 조성에 성공했다. 그는 그렇게 조성한 돈으로 최근 지방 신도시에 오피스텔을 구입했고, 매월 70만 원씩의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돈이 고스란히 그의 비자금 통장으로 흘러드는 것은 물론이다.

“항상 처가 덕에 산다는 중압감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아직은 내가 만든 돈을 아내에게 공개할 수 없다. 장차 더 많은 돈을 모아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인간이며, 설령 처가의 도움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다.”

주식과 로또, 그리고 일확천금의 꿈

최근에는 비자금 조성을 위한 각종 통장과 이를 관리하는 정교한 기법들이 남성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자동이체와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으로 각광받는 종금사의 CMA 통장이 대표적이다. 남성들은 회사 보너스로 받은 여유자금 등을 예치해 다른 금융상품에 재투자하거나 긴급자금으로 활용한다.

한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도 인기다. 사실상 빚통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식투자, 아르바이트, 아내가 모르는 성과급 등으로 메워 나간다. 신한은행·우리은행 등이 제공하는 ‘계좌 감춤’ 서비스도 비자금 관리에는 매우 유용하다. 인터넷 뱅킹에 로그인할 때 다른 사람에게 계좌가 노출되는 것을 막는 서비스다. 인터넷 뱅킹 부가 서비스를 클릭해 ‘계좌 감추기’ 기능에 등록하면 된다. 자신이 지정한 비자금 계좌를 통해 거래하고 다시 계좌 감추기를 선택한 뒤 인터넷 뱅킹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물론 입·출금, 잔액조회, 계좌이체가 모두 가능하다.

남성 비자금은 반드시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 불신의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큰 불화를 막는 윤활유로도 작용한다. 문제는 비자금의 활용이 장기화할 경우다. 특히 불륜·도박이나 상습적 음주를 위해 조성되는 비자금은 가정파탄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다.

비자금의 추억! 세무사 조정민(가명) 씨 “비자금 없이 가장 노릇 할 수 있나?”

세무사 시장은 매우 냉혹하다. 세무사끼리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대형 세무법인의 파워와 시장 점유가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들에게도 세무사 자격증이 부여되는 현실 속에서 2년제 세무대학을 나온 영세 세무사의 경쟁력은 유약할 수밖에 없다.

개인 세무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나는 늘 비자금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여의치 못한 사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나는 내 비자금의 용처가 특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영업을 위해 뛰다 보면 술을 사야 할 때가 가끔 있다. 손님의 성격에 따라서는 좀 고급 술집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비의 전체를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다. 그것은 아내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데, 기독교 신자인 아내는 남자들의 술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매우 박약하다.

내게는 돈벌이가 시원찮은 여동생이 하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잡지 못해 용돈이 궁하다. 내년 봄 동생이 결혼하기 전까지는 용돈과 생활비 일부를 보내줘야 할 처지다. 동생과 아내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못한 것도 내가 비자금을 축적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의 비자금 규모는 300만~500만 원 선이다. 300만 원 이하로 내려가면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활비가 바닥나기 시작할 때 모든 아내는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않는가? 영업상 경조사에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사실인데 아내는 나의 부조금 행태가 과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엄정하게 가려서 꼭 해야 할 사람에게만 하자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다. 그래서 나의 비자금은 지인들의 경조사 비용에 상당부분이 할애된다.

처제가 내 사무실의 경리를 맡고 있는 것도 내게는 엄청난 핸디캡이다. 사무실 수입이 아내에게 훤하게 노출되는 구조다. 아내가 일일이 점검하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처제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자금을 모으기 위해 나는 별도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무사가 비자금을 모으는 현실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남자들의 비자금을 죄악시하는 여자들의 생각도 잘못이다. 사실 비자금의 상당부분은 가족을 위해 쓴다. 아이들 특별 용돈도 주고, 가끔 선물도 사준다. 외식비도 결국 비자금 통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가난한 샐러리맨인 내 친구가 얼마 전 술을 마시다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연로한 부모님의 금강산 관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비자금을 모았는데 그 통장을 아내에게 발각당했다는 것이다.

“내가 시부모 여행시켜 드리는 것을 언제 반대했어? 그것을 숨기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이렇게 말하는 아내가 미웠다고 했다. 뻔히 사정을 아는 처지에 갑자기 효부가 된 아내의 그 교활한 표정이란….

따지고 보면 내 비자금에 그 어떤 비도덕성이 내재돼 있는가? 도박을 하거나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가끔 마시는 술도 결국 가정의 번영을 위한 일종의 투자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복잡한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거침없이 고백하고 투명하게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망설이고 있다. 그 울분과 망설임과 원망의 묘한 언저리 어디에 비자금의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 그 실체는 곧 나와 아내의 관계이기도 한데, 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곧 비자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성 비자금의 역설이다.

출처. 한기홍 월간중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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