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잎이 떨어지는 모습
스크롤 이동 상태바
누런잎이 떨어지는 모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조락의 순간

어느 듯 여름이 물러가기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도서관에서 창문을 다 떼어내고, 책받침을 종일토록 부채처럼 부쳐가며 여름을 나던 도서관 안에는 탄성이 나온다.

“야! 가을이다. 이젠 살만하겠다.”

그래 가을이 성큼 찾아온 것이다. 세상의 변함없는 진리중 하나가 계절이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길고 어쩌면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도, 언젠가는 가을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고야 만다. 그토록 지루하던 여름 뒤에 어느듯 가을이 성큼 다가오듯이, 세상의 모든 강성한 것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약자들이 숨을 쉬는 그런 세월이 다가오는 법이다.

무더운 여름에 짓눌려 자리가 듬성듬성 비던 도서관에 다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않기 시작하면, 나는 책을 들고 비좁은 도서관을 피해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한다. 가을은 방랑의 계절이다. 나는 책을 들고 이 벤치 저 벤치를 옮겨 다니며 내 몫의 방랑을 시작한다.

때로는 아직은 남아있는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가을이 좀더 깊어지면 나뭇잎이 물들어 가는 형형색색의 색깔을 쫒아 이 나무 저 나무 근처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가을이 완전히 교정을 뒤덮을 무렵엔 바짝 말라버린 잔디위에 엎드려서 책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기는 역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무렵. 즉 ‘만추’였다. 노랗게 말라버린 잎들이 힘없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깊은 정감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벤치에 않아 책을 보던 나를 지나가는 바람이 슬슬 차가운 기운을 더해가서, 결국은 내 몸에 보다 두터운 잠바를 입히기 시작할 바로 그 즈음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심장부였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친구들이 가을구경을 하러 산과 들로 돌아다닐 때, 나도 그 틈에 묻어서 가을 구경을 다니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만족스럽지 못했었다. 나는 항상 아직은 다가오지 않은 가을의 다른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도서관으로 다시 몰려 들어가고, 거리는 다시 한산해지기 시작하는 기말고사 즈음이 내가 진정으로 기다리던 가을이었다.

그 눈부신 가을의 마지막 순간에 시험이라는 긴장에 내 입술이 바짝 말라갈 무렵, 잎은 또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자유로운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뭇잎의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짧은 순간의 비행을 준비하며, 잎은 자신의 속에 깃든 마지막 수액을 거두고 노랗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랬다. 가을은 따듯하고 풍요롭게 보이는 그 가슴 안 어딘가에 그렇게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한 해를 보내곤 했었다. 노랗게 물든 가을 잎들이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마침내 일제히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그 찬란한 비행의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그래서 마침내 가을의 마지막에, 하늘이 온통 노란 잎들로 물드는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조락의 순간을.

그리고 나는 하얀 침묵의 계절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