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 집 냉면 맛있는 집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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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집 냉면 맛있는 집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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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집이 냉면 맛있는 집 맞제”
“전에 맛 있던데…”

아들 녀석이 내 눈치를 보다 말꼬리를 돌린다. 등기소 앞 3대 함흥냉면집 간판이 눈앞에 있다. “야 먹고가자” 해야 할 순간이지만 수중에 만원짜리는 커녕 천원짜리 한장없는 빈털털이다.

“진일아 여기보다 맛있는 집 있는데 주말에 엄마랑 누나랑 동생이랑 같이가자”고 했다.
"아빠 그 집이 어딘데."
“이집은 아들이 하는 거고, 장승포 삼촌 다니는 수협근처에 할머니가 하는 진짜 함흥냉면집 있다. 육수가 억수로 맛있다”.
"아빠 그집 억수로 오래된 나무집 아이가 맞제."
“니가 우찌아노”.
"저번에 한 번 무로 갔다 아이가."

먹는 것에 일가견 있는 아들녀석은 용하게도 몇년이 지났을 그 집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지난 주일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생긴 일이다. 아침에 아내에게 별 기대없이 “5만원이 필요한데”라고 했더니 이게 웬일 선심쓰듯 준다. 이 돈으로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냉면을 먹을 참이다.

냉면은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인연도 남다르다. 대학 1학년때 처음으로 냉면을 만났다. 당시 나는 매달 12만원을 집에서 오는 향토장학금으로 받았는데(믿거나 말거나) 방값(3만원)과 20일분 밥값(식권 60장)을 제하고 남은 3만원이 한달 용돈이었다.

용돈이 모자라면 라면 한 박스를 사고 식권을 반으로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정말 자취 시절 라면 한 개에 얽힌 친구와의 일화가 있긴 한데, 다음에 털어놓기로 하고 어떻튼 그해 여름 자취집 앞 중국집에서 냉면이란 놈과 처음 마주 앉았다.

종업원에게 냉면 달라고 했더니 ‘함흥식’요 ‘평양식’요 했다. 촌놈 티 내기싫어 점 잖게 ‘평양식 주세요’라고 했다. 탁자에 놓인 냉면을 이모양 저모양으로 살펴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릇 한쪽에 난생 처음보는 파란 고추장 같은게 매미처럼 착 달라 붙어있는게 아닌가.

모르면 따라 하라고 했던가. 옆자리에 중년신사가 않았는데 그 신사도 다행히 냉면을 시켰다. 곁눈질해 살짝 보니 젓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는게 아닌가. 성급하게도 나는 나머지 절차와 상관없이 상황종료하고 말았다.

아 냉면을 먹기전에 저놈부터 먹어야 하는구나 생각하고 그릇에 붙어있던 고추냉이를 한입에 넣었다. 석유냄새도 아니고 역한 것이… 그날은 정말 촌 놈 티내지 않을려고 끝까지 참고 참으며 그 냉면을 다 먹었다.

그 후 나는 냉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간혹 중국집에서 냉면을 시키는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물었다 “야 맛있나”자장면이나 우동을 먹으면서 나는 친구들을 희안한 별종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냉면과 담을 쌓고 지냈던 나에게 89년 쯤인가 사건이 터졌다. 이북이 고향인, 자리하기 참 어려웠던 한 어르신과 부산 어느 냉면집에 들렸다. 기억에 부산극장 뒷편 할매냉면이었던 것같다. 어쩔수 없이 “물 냉면을 달라”고 했더니 어르신은 “자네는 냉면을 모르는 군”하며 비빔냉면을 권했다.

냉면이 나왔다. 상황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그 파란 고추장이 보이지 않았다. 종업원이 “짤라 드릴까요” 물어 “예”라고 했더니 어르신은 손사래를 치며 가위로 면을 자르려는 종업원을 막았다.

냉면 초보를 알아본 어르신은 물 냉면과 비빔냉면의 차이, 고추냉이는 적당량 면과 비빈 후에 먹는다는 것, 그리고 냉면은 자르지 않고 끊어먹지 말며 씹는 듯 마시는 듯 먹어야 제맛이라고 했다. 또 “제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뜨거운 육수를 곁들여야 냉면맛을 제대로 느낄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말 나는 냉면의 진 맛을 보게됐다. 냉면의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된 나는 그날 이후로 비빔냉면이 아니면 거의 먹지 않는다. 틀니 때문에 자르지 않고 끊지 않고 씹는 듯 마시는 듯 하며 느겼던 포만감은 느낄수 없게 됐지만.

나는 주말 그 어르신이 가르침대로 아이들에게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선택은 아이들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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