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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 중용 제4편 “지성(至誠)” 중에서 -
중국 남쪽에 자리 잡은 무이산(武夷山), 어쩐지 느낌이 으스스하다. 무림(武林)의 한 고수가 숨어 있다가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 무이산은 복건성 북쪽에서 서남 방향으로 내려뻗어 강서성과 경계를 짓는다. 이렇게 무이산맥은 물을 동서로 나누며 다른 하수(河水)를 이룬다. 그 후 동쪽 물은 복건성을 가로지나 바다에, 서쪽 물은 강서성의 파양호에 다다른다.
무이산은 곳곳에 숨은 절경을 자랑하며,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12세기에는 문림(文林)의 한 고수가 이 산 계곡에 정사(精舍)를 지어 은둔하였고, 여기서 그는 마음껏 책을 썼다. 그는 칠십 평생 백여 권의 저작을 남겼다. 폭포 같다 할까, 그 방대한 분량부터 일단 기죽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내용까지 주변의 풍광 못지않게 당시로는 참신했고 압권이었다.
그가 누구냐, “태산에 공자 무이산에 주자”라는 뒷말을 남긴 주희(朱熹 1130-1200)이다. 에이,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쓴 사람? 칙칙한 사당 냄새가 풀풀 나잖아! 그래서였을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한때 주목을 끌었던 책제목이다. 그러자, 공자가 살아야 중국이 산다, 여기에 딴죽을 건 책이 또 나왔다. 어차피 공자를 죽일 수 없다면, 대신 주자라도 죽여야 할까.
송나라는 무약문강(武弱文强)이 특징이며, 유학(儒學)이 훈고학에서 맴돌다 점점 불교에 파묻히고 있었다. 이때 주희는 주돈이(周敦頤)의 태극(太極), 정호(程顥)의 천리(天理), 그 아우 정이(程)의 성즉리(性卽理), 장재(張載)의 기(氣), 소옹(邵雍)의 상수(象數) 등의 여러 학설을 정리하여 새롭게 유학의 체계를 세웠다.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을 신유학이라 부른다.
주희는 한때 도가와 불가의 가르침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그런 바탕이 오히려 중용(中庸)에서 새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서 허학(虛學)과 실학(實學)의 판별이 명확해졌던 것이다. 중용은 영어로 "Good Sense"로 번역되는 심론(心論)이며, 저자는 공자의 친손자 자사(子思)로 알려졌다. 자사는 이 공로로 공자-증자-자사-맹자로 연결된 도통(道統)의 맥을 이었다.
주자는 신유도종장(新儒道宗匠)으로 인정받는다. 성리학은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양 날개로 인설(仁說)을 펼치며, 수미달통(首尾達通)하는 우주론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내용은 크게 태극설(太極說), 이기설(理氣說), 심성론(心性論), 성경론(誠敬論)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일단 논어에서 아쉬웠던 형이상학(形而上學)과 심성(心性)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 처음 도입된 주자의 책은 1290년 안향(安珦 1243-1306)의 필사본이다. 이로부터 동방(東方)의 도통은 안향-정몽주-김종직으로, 이어서 조광조-김인후-이황으로, 다시 이이-김장생-송시열로 종사(宗嗣)되었다. 소수서원은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붙여준 서원이다. 원래 문성공 안향을 배향(配享)한 백운동서원(1543)이었는데, 이는 주희의 백록동서원을 본 딴 것이다.
주희는 복건성 우계(尤溪) 출신으로 호는 회암(晦庵)이며. 은거할 때 둔옹(遯翁)을 썼다. 안향의 호 회헌(晦軒), 송시열의 호 우암(尤庵), 김장생을 배향한 돈(둔)암서원(遯巖書院) 등의 명칭은 모두 주자를 흠모하여 지은 것이다. 둔옹은 심산계곡이 굽이치는 곳마다 시를 붙였는데, 이것이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이다. 서곡(序曲)까지 열편의 연시(聯詩)가 전해지고 있다.
율곡은 틈나면 수양산기슭 석담(石潭)에 들어갔다. 그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역시 열편의 연시조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제5곡 은병(隱屛)이다.
오곡(五曲)은 어디인가 은병(隱屛)이 보기 좋고
수변정사(水邊精舍)는 소쇄(瀟灑)함도 끝없다.
이 중에 강학(講學)도 하려니와 영월음풍 하리라.
굽을 곡(曲)과 골짜기 곡(谷)은 다르다. 둔옹이나 율곡은 물결이 굽이치는 곳(creek)에서 바람 쐬며 시원하게 발상(paradigm)을 전환(shift)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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