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학에서 실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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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에서 실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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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을 바탕으로 체득한 실사구시의 선구자

교유(交遊)를 일삼지 않고 전랑(銓郞)이 된 사람은 수광 뿐이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며, 여색과 이욕에 담담하여 벼슬살이 44년 동안 출처와 언행에 조금도 흠결이 없었으니,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인조실록 6년 “이조판서 이수광 졸기(卒記)” 중에서 -

조선왕조실록은 신하의 사멸 후 남아있던 그의 평을 기록해두었다. 이른바 졸기이다. 공직자는 “내 한 몸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역사가 보여준다. 1628년 지봉 이수광은 66세의 일기로 죽었다. 그는 여러 차례 변란을 겪었으나, “대쪽(책)으로 번뇌를 다스리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다스린다(簡以制煩 靜以制動).”는 여덟 글자를 좌우명삼아 평생을 살았다.

지봉은 붕당을 멀리 뒀지만, 이례적으로 침류대(枕流臺)의 시회(詩會)에는 즐겨 참석한 것 같다. 침류대는 창덕궁 서쪽 담 옆 계곡에 돌아앉은 반석이었다. 시인들은 바위를 베개 삼아 누워 냇물에 떠내려 온 도화 꽃잎을 읊으며 즐겼다. 조선 초기 창덕궁은 경복궁의 이궁(離宮)이었으나 왜란에 모두 소실된 후, 먼저 창덕궁이 재건되어 당시 법궁(法宮)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침류대는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 1545-1636)의 개인 거처였다. 유희경은 화담 서경덕의 문인에게서 배운바 예학에 뛰어났고, 왜란 때 의거하여 관군을 도운 공로로 천민신분에서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시문을 즐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손님대접이 뛰어났다. 그가 베푼 시회에는 동서당파 양반은 물론 중인, 서얼 등도 신분구별 없이 모여들었다. 도심의 라이브 카페였다.

17세기 초 서양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타고 중세에서 근세로의 분수령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역시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오히려 중세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상징적인 장소와 인물이 바로 성시산림(城市山林)의 침류대이며, 계급타파의 유희경이다. 즉 자유와 평등이 바탕 되는 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묘판에서 지봉은 개혁의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이수광의 주저 지봉유설은 국법의 범위 내에서 “백성이 임금 위에 하늘”임을 최대로 내세운 실학예비 서적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唐詩)의 절구나 딴 습작수준에 불과한 문장에 대해서도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었다. 또 조선을 중국과 대등하게 두었고, 세계 50여개 국가를 소개하면서 일본을 대국으로 평가했다. 그밖에 책을 통해 처음으로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소개했다.

그 후 지봉은 경세(經世)를 위한 심학(心學)에 몰두하였다. 관념과 사변이 아닌 체득과 실천이 그의 과제였다. 그는 기본이 성리(性理) 학자이다. 성리학이 그에게 성학(聖學)으로 실학(實學)이라면, 불가와 도가의 학풍은 이단(異端)으로 허학(虛學)이었다. 불가는 공(空)에, 도가는 정(靜)에 빠짐이 지나쳤다고 보았고, 도(道)는 중용(中庸)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이단에 대한 그의 진취적 자세이다. 오늘날 펀더멘털리즘 도그마가 폼 잡는 배타적 보수주의와는 뚜렷이 차이난다. 즉 불가와 도가에서도 장점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을 외식으로 별미를 취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또 그때 주자학의 대체이론이었던 양명학(陽明學) 역시 그는 배척했지만, 선(禪)의 맛만 뺀다면 엄함이 뛰어난다고 높이 평가했다.

좁은 의미에서 심학은 양명학을 지칭했지만, 퇴계에 의하여 심층으로 파고든 조선의 성리학도 결국 심학으로 모아졌었다. 수련의 측면에서 본다면 불가와 도가도 심학이다. 지금은 개인주의의 확립에 따라 자기 영혼의 구원이 관심사이지만, 그때는 지행일치(知行一致)에 집중되어 있었다.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심지로서 단심(丹心)이 있었고, 심학이 그 역할을 뒤받쳤다.

마음은 동서고금 통틀어 골치 아픈 문제이다. 여전히 인류의 영원한 과제로 대물림될지 모른다. 마음-몸, 정신-육체, 영혼-물질, 의식-두뇌, 생명-에너지, 리(理)-기(氣), 성(性)-정(情), 혼(魂)-백(魄) 등의 이분법 대립 쌍에서 먼저 제시된 용어 여덟 개는 모두 마음과 직접 관련된다. 초끈이론 설명에 11차원 기하가 필요하다면, 마음이론에는 모두 몇 차원이 요구될 건가?

적어도 11차원까지 가야 심도(心圖)가 나올지 모른다. 그러니 이수광이 택한 타협적 현실은 심학에서 끝장 보려않고 슬쩍 실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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