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무엇을 의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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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무엇을 의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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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흐름을 바로보기 위한 토론회' 이상돈 교수 발제문

 
   
  ▲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9월 4일(월) 프레스센터 오후 3시~5시, 사단법인 사회정의실현 시민연합(사실련) 주최, 시대흐름을 바로보기 위한 토론회 ´한국사회에서의 보수주의´에 대한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의 발제문.

1. ‘보수주의’

요즘 한국 사회는 극심한 이념 대립을 겪고 있다. 한동안 금기처럼 여겨졌던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파를 흔히 ‘보수’(conservatives)라고 부르고 좌파는 흔히 ‘진보’(liberals)라고 부른다.

한동안은 ‘진보’가 굉장히 좋은 단어이고 ‘보수’는 음흉한 권력과 부패를 대변하는 단어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진보’는 기피하는 단어가 되었고, ‘보수’는 애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쓰이고 있다.

보수주의의 사상적 원조로 18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를 뽑는 것이 보통이다. 1776년 미국 독립을 옹호했던 버크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보고는 경악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이란 책을 1790년에 발표했다. 이 책은 많은 비판을 들었고, 심지어 토머스 제퍼슨마저 버크를 비난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 후 피를 피로 씻는 대유혈극으로 발전하자 버크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졌는데, 존 아담스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버크는 20세기에 들어서도 많은 지지자를 확보했다. 윈스턴 처칠,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칼 포퍼 등이 버크를 지지하고 버크를 발전시켰다.

보수주의의 또 다른 흐름은 자유주의(libertarianism)이다. 자유주의는 진보주의(liberalism)와 어원을 같이 하고 있지만 이제는 오히려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생명, 자유, 재산은 신성한 것이며, 비록 다수의 독재로도 이것을 박탈할 수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정부 구조와 법은 다수의 독재(dictatorship of majority)를 예방할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알렉시스 토그빌과 존 스튜어트 밀에서 시작된 이런 생각은 하이예크, 폰 미제스, 밀턴 프리드만 같은 경제학자를 거쳐 레이건과 대처의 정책으로 꽃을 피웠다.

현대적 의미의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기점은 1950년에 윌리엄 버클리가 예일대의 무신론적 진보주의를 비판한 ‘예일의 신과 인간’(God and Man at Yale)을 출판하고, 국무성 고위관료이던 앨저 히스에 대한 재판 중 소련 간첩에서 전향한 휘태커 챔버스가 검찰측에 증인으로 나선 사건을 뽑는다.

챔버스는 그러한 자기의 경험은 ‘증언’(Witness)라는 책으로 펴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훗날 자서전에서 챔버스의 증언은 자기의 인생에 큰 계기였다고 술회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된 후 챔버스에 대하여 민간인에 대한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윌리엄 버클리는 ‘내셔날 리뷰’(National Review)지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미국 보수주의의 정신적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는 기독교 신자, 자영업자 및 농장주, 월가의 금융기업인, 월스트리트 저널, 폭스 뉴스, 라디오 토크 쇼, 레그너리 출판사 등 보수서적 전문 출판사 등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미국 사회는 1968년을 기점으로 진보좌파로 흘렀다가 2000년에 들어서 비로소 보수가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 ‘진보주의’

오늘날 진보주의라고 부르는 좌파의 근대적 뿌리도 존 스튜어트 밀이라고 볼 수 있다. 밀은 흔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정부가 경제사회 생활에 개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흐름은 영국에서는 자유당의 흐름이 되었고, 케인스와 존 듀이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 같은 진보주의는 1929년 미국에서의 대공황의 시작과 루스벨트의 뉴딜에 의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걸브레이스, 군나르 미르달, 존 롤스 등에 의해 이런 흐름이 발전되어 왔다.

진보좌파의 또 다른 흐름은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가 노정한 빈부격차 등 사회경제 문제에 대해 칼 마르크는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혁명을 주장한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태동한 아나키즘은 계급과 국가를 아예 해체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를 이용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점에서 그 수단부터가 달랐다. 공산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20세기를 붉게 물들였으며, 서구 국가에 깊숙이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미국은 공산주의를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치안법, 방첩법 등을 통해 공산당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조직원들을 검거했기 때문에 공산당원들은 지하로 잠적해 버렸다. 1950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6․25 전쟁을 통해 미국 정부와 미국민은 국제공산주의가 자유세계에 대한 큰 위협임을 알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는 붕괴하고 말았고, 쿠바와 북한의 1인독재 체제로서 남아 있을 따름이다. 서구의 공산당은 점차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 대체되었고, 이들 좌파 정당은 대의민주주의를 인정하되 경제사회 정책에서 좌파적 성향을 견지하고 있다.

1960년대 들어 서구와 미국에선 신좌파(New Left)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붉은 사상이 태동했다. 헝거리 민중 봉기 등으로 공산주의의 잔학상이 만천하에 알려 진 상황에서 기댈 곳이 없어져 가던 좌파는 문화적 코드로서 좌파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 주도한 이 흐름은 월남전 반대와 프리 섹스와 마약 등 반문화(counterculture) 반체제(anti-establishment) 운동으로 발전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 헤게모니 이론을 실천에 옮겨 미디어, 영화 등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의 신좌파 운동은 웨더맨과 블랙팬더의 폭력사태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연방검찰은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고, 조직원들은 지하로 스며들었다. 이들 중 많은 숫자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당시 입학생 증가로 교수를 많이 뽑던 추세에 무임승차해서 인문사회계 교수가 되어 아카데미에 진출했다.

앤젤라 데이비스 등이 대표적 경우이다. 오늘날 이들은 민주당의 좌파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폭력 이미지가 강한 신좌파라고 부르지 않고 단순히 ‘진보’(liberals)라고 부른다. 오늘날 미국에서 진보좌파는 대학의 인문학, 뉴욕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등 주요 신문, CBS 등 네트워크 TV, 할리우드 등 대중문화, 흑인인권단체, 여성단체, 환경단체, 조지 소로스 같은 이념에 기운 거부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3. 한국의 보수주의

우리나라에서 ‘보수’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물론 좌파 그 자체가 범죄로 단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친북 좌파 세력은 대학과 급진적 노동계에 보이지 않게 세력을 넓혀 갔다.

그러나 좌파 세력도 그들이 좌파라고 말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민주화 세력이라고 불렀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는 전교조가 합법화되었고, 그러자 자신을 좌파라고 지칭하는 교수들이 등장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기존의 보수층을 수구세력, 기득권 세력 등으로 불렀다.

불과 10년 만에 한국 사회의 주도권은 진보좌파로 넘어 가게 되었고, 도덕과 윤리에 흠집이 난 보수세력은 변방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더럽고 부패한 것으로 매도된 것이고, 어느 누구도 자기가 ´보수´라고 하면서 나서지 않았다. 그런 결과로 한국에는 진보좌파와 양비론(兩非論)을 펴는 중도세력만 존재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처음 제기한 사람은 제네바 주재 대사를 지낸 외교관 박근 씨가 아닌가 한다. 박근 대사는 일찍이 ‘밝고 힘찬 나라’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진보좌파에 대응하는 보수운동을 시작했고, 한국보수주의에 대한 책을 펴냈다.

노무현 정권의 한미 동맹을 파괴하고 인권을 빙자해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는 등 좌익 성격을 분명히 하자 보수는 ´애국 세력´으로 다시 등장했다. 새로이 등장한 보수 세력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한국의 보수운동은 노무현 정권 퇴진과 김정일 정권 척결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 보수 운동의 타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어려운 문제는 노무현 정권 이후가 될 것이다. 만일에 보수 세력이 노무현 정권을 대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어떠한 이념과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나가야 할 방향

그렇다면 과연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

한국사회에서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원칙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근본규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폭력과 계급투쟁을 주창하는 공산주의, 개인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부정하는 아나키즘 등은 보수주의에 대한 적(敵)임은 물론이고, 보수주의가 서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보수주의가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열린 사회’ 그 자체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악(惡)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본다.

보수주의는 또한 20세기의 거악(巨惡)인 공산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에선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는 그것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라는 엄연한 위험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한다. 따라서 보수는 ‘반공(反共)’을 폄하하는 어떠한 세력도 단호하게 배척해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는 대중을 현혹하는 균등주의적 유토피아(egalitarian utopia)를 배척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 ‘서민이 잘 사는 세상’ 등 막연한 유토피아를 내세우는 사회주의는 결국에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20세기의 거악(巨惡)인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가 유토피아를 내걸고 인간성을 말살했던 것이다. 걸핏하면 남북통일을 ‘꿈’으로 그리거나, ‘빈부차이가 없는 살맛 나는 사회’ ‘온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 등을 건설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본다. 따라서 ‘참여’라는 이름을 내건 포퓰리즘 정치는 보수의 적(敵)이다. 유토피아를 내거는 소수 집단들이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것을 보수가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 ‘평화’ ‘다양성’ 등등을 내세우는 시민운동은 정작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을 파괴하고 사회의 기본가치와 질서, 즉 정체성을 와해시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수는 대의민주주의가 항상 현명하지는 않다고 본다. 때문에 보수는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대법원와 헌법재판소 같은 사법기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관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보수는 주민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정치 제도와 위원회를 양산하는 정치 행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는 법원이 헌법과 법률을 해석 적용하는데서 벗어나서 섣부른 시대정신을 반영하려는 데 반대한다.

보수주의는 가정,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가 갖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 따라서 가정이나 국가의 해체를 가져 올 수 있는 급격한 변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보수는 인간사회는 자체가 생명을 갖고 있는 유기체 같은 것으로, 급격한 혁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는 국가, 지역사회, 가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수호하는 군, 경찰, 소방대 같은 기관과 그런 기관에 봉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을 특히 존중한다.

자유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각오와 자세를 갖고 있는 사회만이 향유할 수 있음을 인식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군사력과 경찰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국가라는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해선 필요한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을 존중하며, 그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반대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정부가 작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때 후생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과도한 사회복지와 분배정책에 반대한다. 과도한 복지와 분배정책은 개인의 자율성, 창의성, 그리고 책임성을 저해해서 결국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사회복귀를 불가능하게 하는 역기능을 발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보수는 정부가 새로운 기구를 세우고 예산을 투입하려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조세를 통해 부(富)를 재분배 하겠다거나,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서 개인의 의욕을 꺾는 것을 부당하게 본다. 공기업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정부의 영역으로 생각해 왔던 공공서비스도 민영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는 가정이 모든 사회적 가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며, 따라서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육아수당을 지급하면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는 것으로 보는 사회주의적 발상을 단호하게 배척한다.

보수는 사회정책의 근간이 인간의 윤리와 책임에 근거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범죄가 범죄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고 보는 진보적 접근이 범죄를 양산했다고 본다.

아동을 성폭행했던 사람이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아이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막연한 동정이 빚어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는 각종 범죄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할 것을 주장하며, 작은 범죄를 엄격히 다루어야 사회를 보다 큰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의 정체성 파괴를 경계한다.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아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를 마치 정상적 인간관계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보수는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의 위선을 배척한다. 낙태로 없어지는 생명은 무고한 것인데 비해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은 남의 생명을 해한 자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교육제도가 자율적이어야 하면 경쟁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율과 경쟁에 입각한 교육제도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기본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환경과 보건 정책이 사회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환경과 보건 정책은 건전한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막연한 이상향을 내세우면서 지구의 종말이 곧 닥쳐 올 것처럼 떠드는 환경주의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5. 한국 보수의 현황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反北-反金-反盧 운동은 있지만 보수주의가 존재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한나라당이 1997년과 2002년에 내세운 대선공약을 보면 대북정책과 그린벨트 및 수도 이전 문제를 빼고는 김대중 노무현 후보측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지금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을 두고도 정확한 입장이 없으니 보수정당으로 부를 수도 없는 실정이다.

현재 반북-반김-반노 활동을 벌이는 정통 안보세력은 우선 당면 문제가 급하기 때문에 경제사회 정책 전반에 대한 보수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한편 학자와 시민운동가를 중심으로 한 단체들은 선진화, 공동체 자유주의 등 애매한 중도철학을 내세우면서 친북세력과 반북세력을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한편 진보좌파 세력은 전교조, 민주노총, 방송 등 미디어, 거대시민단체 등에 확고한 거점을 확보해 놓고 있다. 정권을 5년 10년 잃어 버려도 흔들리지 않을 체력을 이미 구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보수주의가 실종되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노동당과 중도 보수당이 정권을 돌아가면서 맡으면서 40년 세월을 보내다가 나라를 완전히 들어먹을 뻔했다. 보수당이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고 당내 우파인 대처를 당대표로 내세워서 1979년 총선에 승리했기 때문에 영국이 되살아 난 것이다.

그런 대처도 문화적 다양주의(multiculturism)에 대해선 안이하게 생각했다. 바로 그런 탓에 오늘날 영국은 이슬람 과격주의의 온상이 되 버린 것이고, 또 그런 이유에서 문화적 다양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레이건 대통령이 돋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세력은 이런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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